미르·K스포츠 등 논현동 일대 답사…우병우 가족회사-특검 사무실 등 3~4차 예정
영하 10도 안팎의 매서운 한파가 이어진 지난 22일 주말 아침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빌딩 앞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작가 한종수 씨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한 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 씨가 직접 올라가서 볼 수 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이내 우르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난 22일 ‘그네순실로드’ 현장 투어에 나선 한 참가자가 ‘김영재 성형외과’가 표시된 문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추운 날씨의 일요일 아침 서울 강남 한복판에 모인 이유는 한가지다. 바로 국정농단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날 강남 논현동 일대에서는 ‘그네순실로드-논현동 편’이 진행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현장 곳곳을 찾아 걸으며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해 질문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SNS를 통해 사전 신청을 받은 참가자들 15명이 이날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행사는 지난 8일 진행된 ‘그네순실로드-압구정·청담동 편’에 이은 2탄으로 김영재 성형외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테스타로사, 박근혜 대통령 사저 등 총 12곳을 답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네순실로드’는 <강남의 탄생> 저자로 알려진 작가 한 씨의 제안으로 기획됐다. 한 씨는 “국정농단의 현장들이 대부분 강남에 있고 지도를 보고 연결해보니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정농단이 자행된 곳이 안가나 요정, 룸살롱 같은 곳이 아닌 평범한 주택가, 빌딩이란 점에서 이런 것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현장답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김영재 성형외과로 이는 7호선 강남구청역 인근 빌딩 7층에 위치해 있다. 같은 빌딩 6층에는 김 씨의 처남이 운영하는 화장품 판매 업체 존제이콥스가 위치해 있다. 한 참가자는 “전 직장이 이쪽(강남구청역) 근처라서 자주 다니던 길인데 이런 곳에 뉴스에서 보던 곳이 있다니 새삼 놀랍다”고 말했다.
김영재 성형외과에서 나와 코너를 돌아 비탈길을 올라가자 과거 임선이, 최순실 모녀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옛 정수아파트(현 논현동 라폴리움)가 나왔다. 이어 참가자들이 방문한 곳은 K스포츠재단이었다. 이날은 건물 출입문이 열려 있어 사무실 앞까지 가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여기가 바로 국정농단 현장”이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들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미르재단과 아프리카픽쳐스 등이다. 특히 K스포츠재단을 포함한 이 세 곳은 모두 대로변이 아닌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 서로 도보 10분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참가자 강현용(65) 씨는 “참 비밀스러운 동네다. 하나같이 가까운 곳에 다 모여 있는 느낌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만한 조용한 주택가에서 국정농단이 자행됐다는 게 참 놀라우면서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10분 정도를 걸어 찾은 곳은 최 씨와 국정농단 주역들의 비밀 아지트 테스타로사 카페가 있던 곳이다. 상호는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씨는 “저기 2층에 삼각형으로 된 곳, 저곳이 다락방인데 저기서 측근들을 모아놓고 국정농단 했던 결정을 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 아프리카픽쳐스, 더플레이그라운드 등 주요 국정농단 현장은 주택가에서 각각 10분 이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후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사저와 그곳에서 5분 이내 거리에 위치한 최순득 소유 승유빌딩, 최순실 소유 더블루K와 계약을 맺은 그랜드레저코리아 방문을 끝으로 이날 기행을 마무리했다. 한 참가자는 “어제는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고 오늘은 아침부터 국정농단의 주 현장을 방문하러 강남까지 왔다”며 “이 나라를 이 지경까지 만든 국정농단 주범들이 우리가 오늘 다녔던 길에 똑같이 발자취를 남겼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행사를 기획한 순실로드기획위원회는 “앞으로 3차, 4차도 예정돼 있다. 3차는 강남·역삼 편으로 우병우 가족회사 정강, 특검사무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4차는 서초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