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가 1조~1조 5000억 수준…실질적 대주주 골드만삭스 높은 매각가 고집이 최대변수
대어급 매물로 나온 대성산업가스를 인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홈페이지 캡처.
2001년 창업주인 고 김수근 명예회장이 타계한 뒤 3개 회사로 쪼개진 대성그룹은 선친의 유언대로 장남 김영대 회장이 대성산업(대성합동지주)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차남 김영민 회장과 삼남 김영훈 회장은 각각 서울도시가스(SCG)와 대구도시가스를 물려받아 독립했다. 공정위는 지분 관계상 이들 세 회사를 하나의 그룹으로 보고 대기업 집단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김영대 회장이 경영하는 대성산업은 2011년 의욕을 갖고 추진한 용인 기흥역세권 개발이 난항을 겪고, 세운상가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PF(프로젝트파이낸싱) 상환 압박에 직면했다. 대성산업은 그동안 디큐브오피스와 가산디폴리스 아파트형 공장을 팔고, 용인 기흥역세권 개발 부지와 디큐브호텔 등을 잇달아 매각했지만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대성산업의 지주사인 대성합동지주의 연결재무제표상 ‘법인세 차감 전 순손실’은 2014년 1394억여 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979억여 원, 2016년에는 3분기까지 누적 637억여 원의 손실을 나타냈다. 금융비용으로는 2014년 965억여 원, 2015년 748억여 원, 2016년 3분기 482억여 원을 지출했다.
대성산업가스 양산공장. 홈페이지 캡처.
유동성 위기 우려 속에 대성산업은 그룹 내 알짜 회사로 평가받는 대성산업가스를 매각하고 재무 구조를 대폭 개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국기업평가가 매긴 회사 신용등급에서 2014년 이후 BBB+를 넘지 못한 대성산업은 이번 ‘딜’로 부채비율을 대폭 줄이는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용등급 상승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완화를 꾀하고 있다. 대성산업 관계자는 “그간 (고리의) 금융비용으로 고생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대성산업가스 인수전의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와 가스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성산업가스는 반도체 혹은 석유화학 제품 생산라인에 산업용 가스를 공급하는 B2B(기업 간 거래) 업체다. 주요 매출처로는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GS칼텍스, 고려아연,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이 있으며 이들 회사에서 전체 매출의 39%를 올리고 있다. 2015년 기준 시장점유율은 업계 2위(24.6%)고, 같은 해 581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내수 비중이 5048억 원으로 절대적이다. 2016년 상반기에도 2565억 원의 매출 가운데 2201억 원을 국내에서 올렸다.
대성산업가스는 매출 구성이 국내에 편중돼 있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시장 수요와 업계 후발주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장점 덕분에 투자은행(IB)업계로부터 큰 기대를 받아왔다. 특히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달리 대성산업가스는 2014년부터 꾸준히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을 실현하며 수익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14년에는 22억여 원, 2015년에는 276억여 원, 2016년에도 반기 기준 134억여 원의 수익을 올렸다. 대성산업은 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3월 이내 대성산업가스 지분을 매각해 최소 4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대성산업가스의 실질적 대주주인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높은 매각가를 고집할 경우 대성산업의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골드만삭스는 자금난을 겪던 대성산업으로부터 2014년 8월 대성산업가스 지분 48.45%를 취득했다. 앞서 매각자 측에 인수 의향을 표했던 일부 사모펀드는 골드만삭스가 높은 희망가를 제시하자 예비입찰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IB업계가 추정하고 있는 대성산업가스의 매각가는 1조~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대성산업가스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MBK파트너스. 홈페이지 캡처.
국내에선 전략적투자자(SI)로 꼽혀온 SK그룹과 효성그룹이 사실상 이번 인수전에서 배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각각 대성산업가스 예비입찰에 참여했지만 2월 본입찰에 참가할 적격인수후보(쇼트리스트)로 연락받지 못했다고 공시했다. SK와 효성 역시 골드만삭스 측과 가격 협상에서 큰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밝힐 수 없지만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두 기업은 쇼트리스트로 선정된 사모펀드(PEF)가 입찰을 포기할 경우 본입찰을 노려볼 수 있다.
현재 대성산업가스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TPG)과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각각 40억 달러(약 4조 6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한 상황이라 1조 원 이상의 투자처를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MBK파트너스는 기존 투자처인 홈플러스, 코웨이, ING생명 등에서 기대했던 이익을 올리지 못하며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또 TPG는 아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지 거의 10년 만에 한국기업 ‘사냥’에 나섰다. 이를 위해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아들이자 모간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PE) 한국대표를 역임한 이상훈 총괄을 영입했다.
두 PEF 모두 ‘투자의 귀재’로 평가받는 곳들이라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결국 매각 측과 인수 측의 줄다리기에 따라 대성산업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 간의 과열 경쟁이 기업의 시장가치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