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려 치면 왜 이해하지 못할까. 그녀의 아버지는 조선시대 그 어느 왕도 누리지 못한 절대 권력을 누렸다. 그녀는 그 아버지가 유일하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딸, 막강공주였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부하는 있었겠으나 그 경호의 벽을 넘어 마음을 터놓고 정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녀가 어떻게 우정을 배우고 신뢰 주는 법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살 수 있었을까.
그녀는 아직도 탑 속의 공주 같다. 누리기만 할 뿐 책임질 줄은 모르는 공주! 정윤회 문건 파동 때도,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대한민국이 피눈물의 바다를 이룰 때도, 그리고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책임지는 대통령은 없었다. 그녀는 정말 그녀에게 책임이 없다고, 그냥 엮인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녀가 책임전가의 대마왕인 건 대통령이 아니라 공주이기 때문이다. 예쁘게 꾸미고 의전이나 하는 공주!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어디를 가나 홀로 빛나야 하는 공주의 의존성과 그 공주의 탑을 혼자 관리하면서 이익을 독식하려 했던 최순실의 탐욕은 한 짝이다. 탑 속에 갇혀 관리되었던 공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뽑지도 않은 그림자 대통령을 보고 경악했다. 대통령이 추천하고 최순실이 낙점했다고 한다. 최순실이 결정하면 정책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의존성이 권력을 사사로이 이양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공적인 힘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 이외에 관심이 없는 ‘권력의 거머리’에게.
아직도 엮인 거라고, 나는 사익을 추구해본 일이 아예 없었다고 믿는 그녀는 헌재에 무더기 사실 조회요청서를 내고, 무더기 증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주권자 국민이 나오라는 데 며칠 더 감옥 같은 청와대에서 살겠다고 수를 쓰는 일, 정말 구차하지 않은지. 억울한 것 한두 가지를 들어 전체를 억울하다 하지 말고, 마지막만이라도 대통령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나라가 대통령으로 인해 정말 어지럽다. 이런 때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촛불을 들고 나온 국민들에게 큰절을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나 때문에 나라가 조용한 날 없이 되는 일이 없으니 하야하겠다, 나라를 시끄럽게 한 나를 체포하라, 그리고 하루바삐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 시간을 살자.”고 하는 것이. 70년대 유신권력으로 그녀가 책임전가하는 법을 배웠듯 이제는 촛불의 도움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숨길수록 드러난다. 고백하지 않으면 폭로된다. 내려놓지 못하면 빼앗긴다. 그렇게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탑 밖으로 걸어 나와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