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생존전략…당도 황도 밑져야 본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사진공동취재단.
인 위원장은 1월 31일 공개적으로 황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요청했다. 인 위원장은 당 비대위 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의 높은 지지율은 우리 당이 대선후보를 내도 된다는 국민의 허락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황 권한대행 카드에 힘을 실어줬다. 정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그 분이 우리 당에 온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황 권한대행이 사실상 대선 행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황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후 신년 기자회견을 갖는가 하면, 서울 남대문의 쪽방촌과 서울 양천구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최근 대선주자들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은 ‘청년과의 대화’도 개최했다. 다른 대선주자들 일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황 권한대행 측은 민생 행보를 대선 일정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황교안 대선 후보’ 카드 띄우기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실제 대선 승리 여부와는 무관한 친박계의 생존 전략일 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 간 이합집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새누리당도 협상카드가 있어야 지분을 얻어낼 것 아닌가”라며 “새누리당이 후보로 낼 수 있는 사람들 중 황 권한대행이 그나마 지지율이 가장 높으니까 띄우기에 나선 것”이라고 폄하했다.
지난 1월 30일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앤리서치(R&R)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황 권한대행은 8.3%의 지지율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7.6%)를 제치고 대선주자 지지율 5위를 차지했다(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성인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1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권의 나머지 주자들은 사실상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 의미 있는 지지율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으로서는 황 권한대행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새누리당 지도부도 황 권한대행의 실제 당선 가능성은 그렇게 높게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경선 분위기를 띄워 보수표를 결집하기 위해서도 황 권한대행의 출마가 필요할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마땅한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면 이번 대선에서 철저하게 소외될 수 있다.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의원들로서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추가 탈당을 막을 동력도 상실하게 된다. 대선 승리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이 이번 대선에서 최소한 경쟁다운 경쟁은 해볼 만한 후보를 내보내야 4당 체제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끝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황 권한대행 대선 출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 전 총장은 귀국하자마자 여러 구설수에 오르더니 급기야 친인척 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본인은 23만 달러 수수설에 휘말렸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반 전 총장이 대선을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다음은 한 정치권 관계자의 분석이다.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 후보로 나서고 황 권한대행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오면 조직력 면에서 이제 갓 창당한 바른정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왜 탄핵이 인용되는 시나리오만 생각하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하면서 남은 재판관 8명 가운데 3명만 반대해도 탄핵이 되지 않는다. 그땐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대행 사퇴 없이 홀가분하게 출마할 수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무리하게 탄핵을 추진했다는 역풍이 불텐데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탄핵 반대층에서 황 권한대행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히 높다. 탄핵을 반대해왔던 보수 지지층의 표가 황 권한대행에게 결집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서 떨어지더라도 문재인 전 대표의 사례처럼 당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을 추슬러 다음 총선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다면 차차기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 권한대행으로선 이번 대선에 출마해 손해 볼 것은 없다는 것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