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아들이 원비로 성인용품 구입 ‘헐’
일부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뒷돈을 챙기는 등 비리 유형도 천태만상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일요신문 DB
지난해 12월, 경기도교육청이 1년여간 벌여온 경기지역 사립유치원 회계감사 중간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회계감사는 2012년 누리과정(만 3~5세) 재정 지원 이후 벌어진 첫 감사여서 그 결과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 지역 1100여 곳의 사립유치원 가운데 집중 감사 대상은 원아 100인 이상, 한 명의 설립자가 유치원 2개 이상을 운영하는 곳 등 총 60곳이었는데, 사적재산증식, 사적사용, 가장 거래, 교육과정 편법운영 등의 항목에서 지적 사항이 없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원장의 아들이 원비가 담긴 카드로 성인용품을 구입한 사례부터 시작해 일부 유치원은 사적용도로 사용한 원비가 10억 원을 넘는 등 사법처리까지 가능한 수준의 비리혐의가 적발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1월 19일엔 업체와 결탁해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교재 대금을 3배가량 부풀려 뒷돈을 챙긴 수도권‧충청지역 사립유치원‧어린이집 원장 50명과 교재업체 대표가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필요한 개인 자금을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대출 받은 뒤 부풀려진 교재비에서 리베이트를 받아 대출금을 갚았다.
2년간 앞서의 방식으로 빼돌린 금액은 총 102억 원이다. 원아가 총 1만 924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학부모 한 명당 94만 원을 더 낸 셈이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의정부지검은 신종 리베이트 수법으로 교재비를 부풀린 뒤 착복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관행이란 이름으로
문제는 이러한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의 비리·횡령 등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교육청 감사와 검찰‧경찰의 단속을 통해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의 비리가 전국 단위로 적발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와 전‧현직 사립유치원‧어린이집 교사, 원장 등의 말을 종합하면 대표적인 수법은 회계 조작이다. 특히 정부에서 받은 표준보육비를 원래 목적대로 쓰지 않는 수법이 주를 이룬다. 경찰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서울의 한 어린이집 회계장부를 보면, 원장은 남편과 아들 등 가족을 교사로 허위 등록해 정부지원금을 받은 후 그 돈을 원장이 챙겼다. 이러한 방식으로 원장은 2년간 정부지원금 1억 2500만 원을 불법으로 빼돌렸다.
표준보육비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교사 인건비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보육교사를 8시간 근무하는 정직원으로 채용했다고 정부에 등록한 뒤, 실제로는 시간제로 채용하거나 하루 7시간 30분 근무하고 더 낮은 월급을 주겠다는 이면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처우개선비 등 정부보조금을 지원받고 정교사 월급을 선입금 해준 뒤, 이면계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에서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이 교사가 소속된 어린이집의 원장은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마치 불법 사무장병원처럼 원장들이 자격증을 판매해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개설한 뒤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하는 수법도 있다.
정부보조금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돈을 회계조작으로 편취하기도 한다.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이 학부모들에게서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용은 ‘특별활동비’다. 특별활동이란 외부 강사를 초청해 영어, 발레, 구연동화 등을 가르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걷은 돈의 85%는 특별활동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하지만 일부 사립유치원‧어린이집에선 특별활동비를 과다하게 걷거나 국가보조금을 받아 원장이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일이 발생한다. 특별활동 대행업체와 결탁해 여러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조직적으로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도 있다. 통상 업체들은 정상 가격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강사와 특별활동 과정을 제공하는데, 여기서 일부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은 학부모에게 정상 가격을 받고 할인된 가격에서의 차액을 챙긴다.
한 전직 어린이집 원장은 “특별활동 업체가 업체나 대표 명의의 통장을 개설한 후 원장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A 특별활동 업체 대표는 “업체들이 직접 유치원‧어린이집을 돌면서 리베이트 제공을 약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은 입금을 한 후 60~70%를 현금으로 돌려달라고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급·간식비 유용 사례도 잦다. 이 방식은 과거부터 적발 건수가 상당했으며 전‧현직 사립유치원‧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급‧간식비 유용에는 회계조작부터 보육교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경찰에 적발된 한 사례를 보면, 한 어린이집 원장은 원아가 100명이 넘었지만 고등어 2마리로 점심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식빵이나 과일을 잘라서 원아 10명에게 나눠주거나, 우유를 컵이 바닥이 보일 정도로만 따라주는 경우도 있다. 한 전직 어린이집 교사는 “정해진 급‧간식비에 맞춰 식사를 주지 않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녀와서 배고프다고 하면 학부모들은 대개 ‘잘 뛰어 놀고 왔구나’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자주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먹은 게 부실해서일 수도 있으니 꼭 챙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현직 어린이집 교사는 “특히 사립어린이집은 조리사의 인건비를 정부에서 지원받는데, 일부 어린이집이 조리사를 허위 등록해 보조금만 받고 정작 요리는 보육교사에게 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한 교사가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교사가 옆반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 비리 알아도 덮는다
여기서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는 학부모나 교사가 일부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의 비리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쉬쉬하는 경우가 나온다는 점이다. 학부모는 자식을 맡기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불평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 학부모는 “친척이 현직 검사인데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장애원아 허위등록 정황을 발견했을 때 그냥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커지면 당장 수많은 학부모가 내일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지는 게 아니냐”고 했다. 보육교사 역시 피고용인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최근 일부 원장들의 행태로 전체 사립유치원‧어린이집에 문제가 상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업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상당하지만 아이들을 ‘돈’으로 보는 자격 없는 원장들이 종종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한 대형 유치원 비리를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만난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큰 배신감을 표현한다”며 “교육청 등 관련 기관과 협조해 단속 강화를 건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