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케이옥션, 갤러리 다 죽이고 옥션만 살아남는 구조 만들어” vs “미술 대중화 기여”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양분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국내 메이저 화랑인 가나아트와 갤러리현대를 ‘모체’로 두고 있다. 서울옥션 홈페이지 캡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구매자를 보호하고 미술품 유통의 기초질서를 확립하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화랑, 감정협회, 경매회사 등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미술전문가 그룹이 정부에 의견을 개진했다. 2016년 12월 정부는 문체부 산하에 미술품 감정기구(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를 설립하고, 미술품 유통업 및 감정업 종사자에 대한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하는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했다. ‘미술시장 발전’을 목적으로 명시한 이 법은 지난 1월 23일까지 이의신청을 받았고, 올 하반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던 화랑·경매 겸업 금지 조항은 최종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술계에 따르면 화랑은 1차 시장, 경매는 2차 시장으로 분류된다. 그림 등 미술품은 1차 시장인 화랑(혹은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거래되지 않은 미술품은 경매업체를 통해 2차 시장에서 거래된다. 두 시장은 상호 보완 또는 경쟁하면서 각 미술품의 적정 시장 가격을 형성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일부 대형 화랑이 갤러리(1차 시장) 운영과 경매(2차 시장)를 겸업하면서 논란이 싹텄다. 화랑이 작가와 콜렉터를 연결시키는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나 경매시장을 장악해 미술품의 가격을 임의 조정하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관련법 초안에서) 화랑·경매 겸업 금지를 검토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굉장히 강한 규제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최종안에선 제외했다”며 “(대형 화랑의) 의견도 일부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양분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모체는 국내 메이저 화랑인 가나아트와 갤러리현대다. 코스닥 상장사이기도 한 서울옥션은 창업주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지분 13.57%를 보유한 대주주고, 장남 이정용 씨가 7.3%, 차남 이정봉 씨가 지분 3.75%를 각각 갖고 있다. 또 이 회장의 친동생인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도 지분 1.66%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옥션은 지분 70.8%를 소유한 티에이어드바이저유한회사가 대주주다. 티에이어드바이저는 국내 미술계 ‘대모’로 불리는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세운 지주회사로 알려져 있으며, 갤러리현대의 대주주이기도하다. 박 회장의 장남 도현순 케이옥션 전무는 티에이어드바이저 설립 전까지 케이옥션 지분 22.7%를 소유한 대주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2000억 원 규모로 미국, 유럽, 일본 시장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2004년 국내 경매시장 규모가 100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0배가 증가했다.
국내 1~2위 업체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실적도 눈에 띄는 성장 곡선을 그렸다. 2014년 237억 원의 매출을 올렸던 서울옥션은 2015년 547억 원의 매출과 15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케이옥션의 매출도 2014년 70억 원에서 2015년 152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케이옥션은 41억~87억 원의 높은 영업이익을 나타냈다. 이들 회사의 모체인 가나아트, 갤러리현대가 거둔 미술품 판매액까지 더하면 관련 수익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두 회사의 ‘독주’는 다른 지표로도 확인된다.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행한 ‘2016년 12월 국내 경매시장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 한 달간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총액은 각각 58억 9000만 원, 148억 9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달 전체 경매시장의 낙찰총액이 229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 낙찰총액의 90%가 두 회사에서 나온 셈이다. 직전 집계인 ‘11월 결산’에서도 204억 원의 낙찰총액 가운데 185억 원(87.7%)을 서울옥션이 책임졌다.
그러나 두 회사의 성장을 바라보는 기존 화랑들의 속내는 편치 못하다. 서울 한 갤러리에서 아트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는 “미술시장은 파이가 크지 않아 작품 콜렉터가 사실상 정해져 있는데 두 회사가 미술품 가격을 좌우하는 측면이 크다”며 “실제 한 작가가 전시에서 작품을 400만 원에 내놓으면 몇 달 못 가 똑같은 작가의 작품을 75만 원에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작가와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다. 반대로 가격을 높게 받고 싶다면 화랑에서 기획전을 열어 작가를 띄운 뒤 곧장 경매를 진행한다. 두 대형 화랑이 기존 갤러리는 다 죽이고 옥션만 살아남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최 아무개 씨는 “요즘 누가 화랑에서 그림을 사냐, 옥션에 가면 반값에 사는데, 이런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 정도로 시장의 신뢰가 떨어졌다”며 “바젤 아트페어와 같은 국제적인 미술계 행사에 이들이 초대받지 못하는 것은 화랑 운영과 경매, 미술품 감정까지 한 회사가 도맡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실제 지난 이우환 위작 파문 때 케이옥션은 경매 직전 위작 여부를 자체 검증했지만 파악하지 못해 논란에 휩싸였다. 또 서울옥션은 서울옥션 임원이 직접 천경자 작품 경매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임원이 써낸 가격은 곧장 경매가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일각에선 경매업체가 미술품 가격에 관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지만 서울옥션 측은 “회사 직원들이 경매에 나올 수 없는 콜렉터를 대신해 ‘대리 응찰’을 하기도 한다”며 “그림을 갖고 싶을 때 우리에게 연락하면 서면이나 전화를 통해 입찰할 수 있다. 누군가 자꾸 음해하는데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반박했다.
감독기관인 문체부는 기존 경매의 몇몇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옥션 관계자가 직접 경매에 참여해 미술품을 낙찰 받고, 매입한 미술품이 국가 공인 ‘보물’로 지정되자 되판 사례도 있다”며 “이 같은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미술품 유통업의 이해충돌 방지 및 상생협약’ ‘공정한 경매실시 의무’ 조약 등을 법안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 조약에 따라 앞으로는 한 옥션에 나온 작품을 옥션 관계자가 매입할 수 없다.
서울옥션 측은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국내 경매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여온 사회적인 기여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일부 감정적인 주장을 하는 화랑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화랑과 경매업의 겸업을 금지한 사례가 없고, 가장 유명한 크리스티도 화랑을 갖고 있다”며 “과도한 규제를 하면 자유 경제 질서에 위배되지 않느냐. 시장이 커지고 있는 단계이니만큼 기존 화랑과 상생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