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스타일에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지만 비용 상승 직결돼 골머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기사를 인용하며 트위터에 올린 글. “고마워요, 삼성! 함께하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다. 사진=트럼프 트위터 캡처
트럼프에게 외교나 사전 협의, 비즈니스포럼처럼 복잡한 절차는 필요 없다. 이 단 한 줄의 글에 삼성이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맞다’, ‘아니다’ 답하기 어려운 처지다. 트럼프는 이런 방식으로 도요다·포드·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를 줄줄이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이에 최근 언론에는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내부 결정을 내렸다는 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삼성전자는 이미 내부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 등 미국에 새 공장을 짓는 방안이 나오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검토 단계”라며 “정책과 경영계획 등이 수립되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사업부와 형태다. 삼성전자의 사업부를 크게 반도체·스마트폰·가전으로 나눌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미국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반도체·스마트폰의 경우 ‘수원-기흥-화성’ 라인에 대규모 생산단지를 두고 조달과 생산을 일원화시켰다.
반도체는 웨이퍼 제작부터 회로설계, 산화, 삭각, 증착, 절단, 성형, 마킹 등 복잡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도 디자인과 상품기획 등의 작업이 함께 이뤄진다. 부품 조달과 생산 공정까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도록 꾸린 셈이다.
높은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된 1~2차 협력사를 두고 있다. 마치 독립된 회사처럼 서초동 본사와는 별도의 마케팅·영업 조직도 갖추고 있는 등 이미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 게다가 최근 화성캠퍼스에 대규모 연구동을 3개나 올렸고, 평택에 최대 규모의 생산단지 건설이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문제 발생 가능성이 낮은 생활가전이나 연구·개발(R&D) 센터의 신설, 이전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R&D 투자가 많은 의약 분야의 이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앨라배마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이 후보지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선 인건비 문제가 가장 걸린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21.84달러로 중국에서 시급이 가장 높은 베이징(약 2.74달러)의 8배에 달한다. 인건비 문제로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멕시코(2~3달러)는 물론 한국(16.58달러)보다도 높다.
삼성전자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인건비 격차를 감수하고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부담스러운 실정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지난해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애플 등을 상대로 한 납품량도 늘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삼성을 압박할 명분이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트럼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다고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1~3차 협력사가 같이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협력사가 함께 옮기는 경우라도 협력사의 인건비 부담을 상쇄해줘야 해 납품단가를 올려줘야 한다. 단순히 인건비 문제가 아니라 부품 조달비용이 대폭 오를 수 있다.
여기에 물류·전기·용수 등 미국의 유틸리티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기술 유출 가능성도 공장을 이전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기엔 수많은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
또 최근 거론되는 R&D센터를 이전한다고 해도 인력 수급이 원활할 것이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정부는 무슬림과 테러위험 국가들의 이민제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란, 이라크 등 중동 6개국에 대한 전문직 출신 이민이 불허될 경우 미국의 과학·기술 산업 전체적으로 전문직 구인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압박을 이대로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가전시장 점유율 3위인 LG전자는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 상반기 중에 미국 가전공장 투자계획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후보지로 테네시주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토목·건설·철강·에너지 등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트럼프의 압박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정부 정책의 방향에 따라 현지 내수 시장을 공략하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공과대학 교수는 “미국 행정부의 항목별 예산 증감과 정책적으로 밀고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 협력하는 한편 기술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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