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안방’ 내놓고 허허벌판 가라고?
▲ 지난 12일 자유선진당 현판식에 참석한 이회창 총재(오른쪽)와 심대평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치권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대선에 나서기 이전부터 총선에 대비해 온 만큼 그 저력을 가볍게 보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20석 이상을 계산하는가 하면 자유선진당 자체적으로는 100여 석을 공언하는 등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과연 이회창 총재와 자유선진당이 이번 총선을 통해 거대 여당이 될지도 모르는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보수 대안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들의 총선 전략을 들여다봤다.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패배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선 판세가 굳혀질 즈음 정치 분석가들은 이회창 전 총재의 ‘총선 준비’ 전망을 잇달아 내놓았었다. 이 전 총재가 대선 승리보다는 패배를 전제로 하고 정치권으로 돌아왔을 것이란 게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대선에서 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자금을 비축하면서 이러한 전망은 현실화되었다. 그렇다면 이 전 총재가 구상한 총선 구도는 어떤 형태였을까.
이회창 총재가 노리고 있는 총선 주요 공략 거점은 물론 이 총재의 고향이기도 한 충청권이다. 대선 당시부터 국민중심당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해 왔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충청권은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지역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충청지역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이슈를 만들었고 이것이 충청권 표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전국 득표에서는 48.91%를 얻은 노무현 후보에게 불과 2.32% 차로 뒤졌을 뿐이었지만 충북, 충남, 대전에서는 각각 7.53%, 10.93%, 19.27%나 뒤졌다. 또 97년 대선에서도 김대중 후보 승리의 주요인은 DJP 연합으로 충청권 표심을 앗아간 데 있었다. 지역색이 강한 영·호남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점과 더불어 충청권 표심은 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전략적 거점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이회창 총재는 지난 대선에서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중 하나가 ‘반 이명박’ 구도를 만드는 것. 이 총재는 당시 이명박 당선인의 BBK 의혹 등을 집중 공격하며 ‘반한나라’보다는 ‘반이명박’ 노선을 택했다. 자유선진당의 한 관계자는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 중에는 이명박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회창 총재는 대선 뿐 아니라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이들을 최대한 흡수하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하나는 충청권을 자신의 텃밭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는 국민중심당과의 연합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가 타 지역과 달리 충청권에서 눈에 띄는 선전을 했다. 특히 충남 지역에서는 이명박 후보(34.26%)에 불과 1.03% 뒤진 33.23%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총선에 임하는 자유선진당에게는 몇 가지 기회와 몇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기회라면 우선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에서 상당한 기반을 쌓았다는 점이다. 충남에서만 시군구별로 공주·보령·연기·부여·서천·홍성·청양·예산 등 8곳에서 1위를 했다. 이런 추세라면 지역색과 인물론이 우선시 되는 총선에서 선전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자평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한나라당 내 친이 인사와 친박 인사 간의 불화와 치열한 공천 경쟁이다. 이러한 불화와 경쟁이 심각해질 경우 탈당자가 속출할 것이며 이를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세 번째로 더 이상 통합민주당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보는 충청권 통합민주당 인사들의 연이은 입당도 자유선진당을 고무시키고 있다. 통합민주당 표와 대선에서 이 총재가 얻은 표를 합친다면 한나라당을 앞지른다는 것이 자유선진당의 희망적인 계산이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은 자유선진당에 썩 그렇게 유리한 것 같지는 않다. 벌써부터 자유선진당 내에서도 만만치 않을 공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12일 합당과 함께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킨 자유선진당은 20일 공천심사위원회를 만들고 총선준비에 나설 계획이다. 만약 국중당 측 인사들이 기득권을 요구할 경우 교통정리가 힘들어진다. 공천을 앞두고 국중당 일부 인사들은 비례대표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천 신청을 받고 이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길 경우 4월 초 총선 준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이에 대해 자유선진당 내의 전 국민중심당 측 한 관계자는 “의석확보가 중요한 만큼 개별적인 이해관계보다는 당선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공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청권에서의 공천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유선진당이 충청권 지역구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현실적인 판단 기준으로 공천 과정을 해결하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충남 예산·홍성 지역구에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이회창 총재가 출마 지역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도 충청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자유선진당의 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이나 한나라당의 연고지인 영남에서 정면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유선진당 측은 이회창 전 총재의 지역구 결정에 대해 당 전체의 총선 전략과 맞물려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검찰의 2002년 대선자금 관련 수사는 이 총재 측에 휴화산처럼 도사리고 있다. 이 총재가 대선자금 횡령 의혹으로 고발된 사건은 아직 검찰에 계류 중이며 대선 자금 중 일부를 아들인 정연·수연 씨에게 증여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한 주간지와의 고발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검찰 측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선진당은 이러한 수사가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이 총재가 오는 4월 9일 ‘창 바람’을 일으켜줄 수 있을까. 차기 정권에서의 ‘거대야당’을 꿈꾸고 있는 이 총재의 야망의 결과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