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프리킥’ 국민 들었다 놨다
▲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장 조감도를 평가하고 있는 이경숙 위원장과 위원들. 사진공동취재단 | ||
인수위가 분명 5년의 정부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노력에 비해 인수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여러 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런 부정적 평가는 남대문 복원 성금 모집 발언 등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등 새 정권 전반에 대한 지지율의 하락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남겼다. 물론 인수위가 새 정부 출범의 정확한 방향성을 역대 어느 인수위보다 빠른 시간 안에 보여줬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의 역할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나와야 한다는 말도 없지 않다. 활동을 모두 마치고 지난 22일 해산식을 가진 17대 인수위가 어떤 점수를 받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17대 대통령직인수위의 특징은 한마디로 과욕과 혼선이라고 말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성싶다. 10년 만의 우파 정권 출범인 만큼 고쳐야 할 점, 바꿔야 할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이해를 할 수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정권이 출범한 이후 해도 될 일까지 챙기고 있다는 소리도 나왔을 정도다. 더구나 일부에서 터져 나온 불미스런 추태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선 직후 총선이 실시되는 특수성 때문에 총선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이 너도나도 인수위에 전문위원, 자문위원 등으로 이름을 걸쳐 놓으며 일부 인사들이 물을 흐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17대 인수위의 과욕 중 대표적인 예는 휴대폰 요금과 유류세 인하 방안 발표.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전 휴대폰 요금과 유류세를 인하하겠다”고 무작정 발표했고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10조 원 규모의 신용회복기금을 설립해 금융소외자 720만 명의 채무를 탕감하겠다”고 발표했던 신용불량자 사면 정책안도 경제1분과 한 인수위원이 “원금 탕감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뒤집혔다.
17대 인수위의 이 같은 무책임한 정책 남발의 첫 번째 이유로 꼽히는 것은 인수위의 ‘지나친 성과주의’가 꼽힌다. 지난 20일 경제개혁연대 등 10여 개 시민단체 합동으로 열린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 평가 대토론회’에서도 참석자들이 내놓은 대체적인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 홀리데이’를 선언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 당선인의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인수위로 하여금 지나치게 과시적인 성과에 치중하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이러한 평가는 인수위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관계자도 “인수위 안에 과욕과 성과주의가 팽배하다. 이 대통령이 스피드를 강조해서 그런지 인수위 담당자들이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시인하고 있다.
‘독단적’이었다는 평이 따르는 것도 17대 인수위의 특징이다. 외부를 통한 의견수렴 절차가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17대 인수위에서 외부 의견 수렴의 목적으로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었던 것은 지난 1월 30일 영어공교육 완성 실천 방안 공청회 자리 단 한 차례였다. 그러나 당시 인수위는 자신들의 방안에 찬성하는 측만 초청해 “이게 무슨 토론회냐”는 비판을 받았다.
인수위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검증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17대 인수위에 대한 ‘악평’을 초래했다. 사실 정권 인계, 정부조직개편뿐만이 아니라 당선인의 공약 검증 과정을 거치는 것도 인수위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15대 인수위는 “IMF 한파라는 상황을 고려해 당선인의 선거 공약을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김대중 당선인에게 건의해 그의 공약 대부분이 대폭 수정되거나 폐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역시 “노 당선인이 대선과정에서 언급한 1000개 이상의 공약에 총 150조가 소요될 것”이라는 인수위의 부정적 반응을 받아들여 공약을 전면 수정했다.
그러나 17대 인수위에서는 이런 사례가 전무했다는 평이다. 이인규 한국교육연구소 소장은 “선거 당시 공약 내용이 거의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공약을 가지고 보고서를 그대로 만들었을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역대 정권 인수위 중 가장 많은 자문위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인수위 활동 평가에 ‘악재’로 작용했다. 인수위 관계자가 밝힌 자문위원의 수는 무려 558명. 인수위 관계자는 “자문위원들의 역할은 크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명함만 자문위원이지 인수위에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에게 ‘논공행상’격으로 자문위원이란 내밀기 좋은 명함만 줬다는 것이다.
물론 이 대통령의 대운하 등 그의 공약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자문위원들도 상당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조차도 자문위원의 어마어마한 수에 골치가 아프다는 의중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도 “자문위원들이 인수위원회 이름을 걸겠다고 ‘빽’을 써서 들어와서는 사고를 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17대 인수위에는 이렇게 ‘사공’이 많은 탓인지 정권 인수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정권의 도덕성을 해치기까지 했다.
최초에 자문위원 문제가 불거졌던 것은 고종완 씨가 자신의 자문위원 신분을 내걸고 고액의 부동산 컨설팅을 하다가 적발돼 해임되면서다. 또 지난 18일 인천시 강화군에서 200여만 원어치의 식사 접대와 선물을 챙겨 논란을 일으켰던 인사들 중 6명이 자문위원이었다. 인수위 인사들은 “이 대통령이 ‘누구 빽으로 들어온 사람은 꼭 사고를 친다’고 말했던 것이 그대로 적중했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인수위가 ‘독선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다며 ‘이명박스럽다’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책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는 유례가 없는 실패를 했다.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수위는 그것을 경고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17대 인수위의 평가에는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인수위 활동 기한이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한 달여 만에 경제살리기와 사회통합을 국정최대과제로 잡고 한 달여 만에 이명박 정부가 갈 길을 명확히 보여줬다는 것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22일 해단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인수위원들을 치하했고 이경숙 위원장은 “50여 일에 걸친 숨 가빴던 여정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간다”며 나름대로 자평했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인수위 과정 자체가 과도기와 개혁기인 만큼 욕을 안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자위하기도 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