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문정서 강한 광주 경선서 승산”…안보·경제 ‘우클릭 행보’로 차별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돌풍을 이어나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요신문 DB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2월 2주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반 전 총장 불출마 선언 이후 안 지사 지지율은 9%p 상승한 19%를 기록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5%대였지만 단숨에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29%를 기록한 문재인 전 대표가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독주했지만 안 지사의 상승세가 주목을 받았다(이번 조사는 2월 7~9일 3일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이며, 응답률은 20%였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그러자 정치권의 시선은 일제히 안 지사에게로 쏠렸다. 안 지사 측은 민주당 경선 최대 격전지로 통하는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켜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광주 기적을 재현한다는 각오다. 안 지사의 한 측근 인사는 “광주에서 반노 정서가 강하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반문 정서다. 안 지사에겐 호의적인 분위기가 역력하다. 호남을 얻지 못하면 대선 승리도 어려운 것 아닌가. 아마 이런 점이 감안되면 경선 투표에서 안 지사에게로 표가 쏠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인제 대세론’을 깨뜨릴 수 있었던 동력은 호남에서 비롯됐다. 2002년 3월 경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은 1~2%를 오르내렸다. 반면, 이인제 후보는 가장 유력한 주자로 꼽혔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노 전 대통령은 1위를 차지하며 ‘이변’을 일으켰고, 이를 시작으로 결국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 지사가 그리는 시나리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의 안 지사 측근은 “오히려 2002년 노무현 때보다 상황이 좋다. 지지율이 두 자리 아니냐”면서 “광주에서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 같은 친노계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 결이 다소 다르다. 이미 2016년 4·13 총선 때부터 민주당 내부에선 친노 진영이 친문계와 친안계로 세분화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바 있다. 안희정 캠프엔 참여정부 출신인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원조 친노계가 대거 합류했다. 이 전 실장은 참여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비롯해 홍보수석, 정무특보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호남 출신이다. 윤 전 대변인의 경우 한때 문 전 대표 캠프에서 활동했으나 안 지사 측 요청으로 옮겨 갔다. 이를 두고 문 전 대표가 크게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안 지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좌희정·우광재’로 불렸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도 외곽에서 안 지사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일했던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도 올 초부터 합류했다. 현직 의원 중에선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백재현 의원과 ‘안희정 키즈’인 김종민 정재호 조승래 박완주 의원이 캠프에 몸담았다. 당 내에선 박 시장의 지지 세력인 기동민 박홍근 의원 등이 안 지사 측과 가깝다는 점에서 캠프 합류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주류 인사 영입에 힘을 쏟고 있다. 일요신문 DB
문 전 대표 측은 친노계 핵심 인사들이 속속 안 지사 캠프로 합류하자 긴장 기류가 감돈다는 전언이다. 한 친문 의원은 사석에서 “당초 안희정 지사는 ‘페이스 메이커’ 정도로 생각했다. 다들 안 지사가 문 전 대표 뒤를 이어 차차기에 도전할 것이라고 보지 않았느냐. 그런데 안 지사가 물밑에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안희정 캠프로 간 몇몇 인사들에 대해선 상당히 서운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 측은 비주류 영입 등 외연 확장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친문 패권주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지사는 상승세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안보 및 경제 문제에 대해 ‘우클릭’ 스탠스를 취하는 등 문 전 대표와의 차별화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안 지사는 2월 8일 한반도미래재단 초청 토론회에서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현실은 유감스럽지만 중국 지도자들이 (사드 배치를) 존중해줬으면 한다. 결정 과정은 잘못됐지만 이미 군사동맹 간 합의가 된 것을 얼른 뒤집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에 대해 “한미 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걸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었다.
안 지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서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1월 19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 아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늘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 것이 법치의 엄격성과 법치의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정”이라며 “이것으로 특검의 수사가 위축돼선 안 된다. 필요하다면 더 엄정한 보강수사를 거쳐서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안 지사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도 문 전 대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안 지사는 최근 김 전 대표와 몇 차례 회동을 갖고 “집권 후 경제 정책 전권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김 전 대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진 않고 있지만 조만간 안희정 캠프에 합류할 것이란 전망이 파다하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민주당 내에서 문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인물로, 사실상 비문 진영의 ‘좌장’격이다.
안희정 캠프 홍보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종민 의원은 “안 지사의 예선 통과 가능성을 70% 이상이라고 본다. 지지율은 20%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안 지사의 강점은 일관성 있고 철학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또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는다. 철저한 국민의 상식에 충성하는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다. 20%가 넘으면 새로운 변곡점이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중도 확장 노선으로 보이는 문 후보와의 차별화 시도가 선거 전술이 아니라 본인의 소신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면서 “정치권 공동책임론이 대두될 경우엔 문 후보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문 후보가 탄핵 압박에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안 지사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문재인 캠프에 총괄본부장으로 합류한 송영길 의원은 2월 9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꺾일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이후로 수많은 공격과 비판을 받으며 견뎌내고 여기까지 왔다. 지금 있는 후보 가운데 이렇게 장기간 언론에 노출돼서 비판을 받고 검증을 받고 하자 없이 꿋꿋하게 버텨온 경우는 아마 문 후보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당 내 경선이라는 특성상 문 후보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탈한 뒤 안 지지로 돌아서야 한다. 안 지사의 중도 확장 모드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 있다. 중도 보수 진영의 지지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실질적인 투표 참여로 이어져야 하는데 문 후보에 비해 안 후보 지지자의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라고 조언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