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에 갇힌 외톨이 ‘길’은 문 밖에 있다
▲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정치권에 발을 디딘 문국현 대표가 총선에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
지난 대선에서 주목을 모았던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는 5.8% 기록하며 4위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후보에 이은 등수였지만 득표율 면에서는 3위인 이회창 후보(15.1%)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문 후보가 기대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득표율을 얻은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창조한국당 내에서는 긍정적인 풀이를 내놓고 있는 분위기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보수성향의 한나라당에 쏠렸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정계에서는 창조한국당의 위기사태에 대해 정작 문국현 대표만이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인으로 승승장구하던 문국현 대표의 정치도전기는 여의도 정가에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왜 그는 제대로 기 한번 펴보지 못하고 나락의 위기로 떨어지고 있는 걸까.
여기엔 비정치권에서 활동해 오던 문국현 대표의 ‘참신함’이 오히려 해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념의 좌우를 넘어서 사고의 보수적 성향이 짙은 정치권에 새 인물이 흡수되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문국현 대표의 ‘현실정치 감각 부족’을 더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창조한국당의 분열은 우선 대선자금의 처리 문제로 표면화됐다. 대선자금 60억여 원의 당 차입금 처리, 대선자금 집행과 관련한 비공개 실사와 그에 따른 후유증 수습 과정에서 문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드러냈다며 당직자들이 반발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기존 정치권에 몸담아왔던 지도부 일부 인사들은 문 대표에게 다른 세력과의 연대를 주장했지만 이와 같은 의견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당세를 확장시킬 수 있는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때에 따라 정치인들이 당적을 옮기고 힘을 합치는 것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해 문 대표의 생각은 올곧은 것을 떠나 순진하기까지 한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들의 불만 중 하나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대해 나름의 소신과 원칙을 가진 문 대표는 인물을 영입하고 다른 세력과 연대하는 것에 지나치게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타 정당 및 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하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된 것이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사당화’다. 비판자들은 “문 대표가 끝내 1인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총선 전략, 특히 통합민주당과의 통합 문제에서 한발도 물러나지 않는 독선이 가장 큰 장애였다고 한다. 문 대표는 통합의 ‘통’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으며 ‘여의도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곪아터지며 선대본부장을 지낸 정범구 전 의원과 이정자 공동대표 등 고위 간부 4명은 지난 14일 “우리들의 정치실험은 실패했다”며 탈당했다. 13일에는 곽광혜 전 대변인, 정상영 공보실장 등 전직 선대위 간부 26명이 당적을 정리했다. 앞서 지난 1월 중순에는 김갑수 대변인 등 10여명의 핵심 당직자들이 떠났고 당의 유일한 ‘원내’인 김영춘 의원은 지난 1월 30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뒤 당사에 발을 끊은 지 오래다.
이에 대해 창조한국당 측은 주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당원들이 대선 이후 대거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다른 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다소 궁색한 설명을 내놓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2월 15일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3만 5000 당원, (대선 때 나를 찍어준) 138만 지지자들은 그분들의 의견과 다르다”며 “총선에서 잘 나가려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일관되게 가야지 다른 당과 통합이나 하려는 사람들과 지지부진하게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창조한국당을 바라보는 이들 대다수가 우려를 하고 있는 가운데 문국현 대표는 총선 도전에 대해 야심찬 각오를 보이고 있다. 지도부의 대거 탈당 사태를 겪은 이후 지난 2월 18일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대표를 본부장으로 하는 총선승리본부 출정식을 가졌다. 그동안 지역구 출마와 전국구 출마를 두고 고심하던 문 대표는 이날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로 출마하기로 했다”는 결심을 밝히기도 했다. 지역구는 정치적 상징성이 큰 종로와 이명박 당선인의 최측근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인 은평 을을 두고 고민해 오다가 종로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창조한국당이 이번 총선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의석수는 30석이라고 한다. 목표 의석수 확보가 가능할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이 크지만 창조한국당은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 갈등이 커질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까지 창조한국당의 모양새는 썩 믿음이 가진 않는다. 지난 1월 30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김영춘 의원의 거취문제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최근 이계안 의원을 특별고문으로 위촉한 것을 두고도 이 의원 측에서 ‘부인’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아직도 원활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선 때보다 더 떨어져 2~3%대까지 내려간 창조한국당의 지지율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과연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정치권에 발을 디딘 문국현 대표가 총선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그의 도전이 한낱 ‘정치실험’으로 끝날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게 될지 곧 판가름이 날 것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