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께, 피바람이 와 이짝으로 분다요
▲ 기계적인 물갈이 방침에 박상천 대표 측 등 중진들이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왼쪽). 박재승 위원장은 호남 중진들을 포함, 간판급 인사들에게 수도권 출마를 독려하고 있다. | ||
“쇄신 후퇴하면 총선 희망은 없다”
민주당 공천 심사를 주도하고 있는 박재승 위원장이 던진 일성이다. 박 위원장은 ‘공포의 외인부대’로 통하는 공심위원들과 함께 공천 혁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호남 30% 물갈이 방침에 이어 공천 심사 최대 뇌관인 부정·비리 전력자에 대한 공천 배제 기준도 엄격하게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심위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개인비리와 정치자금은 구분해야 한다’는 유화론에 쐐기를 박고 부정비리 전력자는 예외 없이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심위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경우 각종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상당수 중진급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할 수 밖에 없어 당사자들의 반발과 함께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공심위의 내부 방침을 적용할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과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 신계륜 사무총장, 김민석 이호웅 전 의원 등이 줄줄이 공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박 위원장은 또 당내 간판급 인사들의 수도권 출마를 요구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모 라디오에 출연한 박 위원장은 “당원들은 쇄신의 대상이 되는데 자기는 편하게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 나라면 그렇게 하겠다”며 손학규 박상천 대표, 정동영 전 장관, 강금실 최고위원 등은 물론 호남 중진들까지 수도권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심위 박경철 홍보간사도 28일 “두 대표와 그에 준하는 정도의 대표성, 책임성이 있는 당의 중진들은 사즉생의 각오로 수도권에 출마해 당을 구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박 위원장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공심위의 개혁 공천 칼날이 성공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호남권 의원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고 공천 심사 기준을 둘러싼 내홍도 심화될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진들의 수도권 징발론과 관련해서는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극심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공심위가 29일 전체회의를 통해 최대 뇌관인 ‘공천 심사 제외 기준’을 확정하지 못한 것도 복잡한 당내 계파간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경철 간사는 29일 “원래 민주적 절차라는 것은 투표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오늘 나온 다양한 대안의 바탕 위에서 다음 차수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공심위는 이날 공천 심사 기준을 마련해 공표한 뒤 기준에 못 미치는 공천신청자를 사전 배제한다는 방침이었으나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향후 공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중진들의 수도권 징발론을 둘러싼 잡음도 심상치 않다. 수도권 징발 대상으로 지목된 박상천 대표 측은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박 대표를 수도권에 출마하라는 것은 구민주계를 몰아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호남권의 또다른 중진은 “공심위는 공천 신청자를 공정하게 심사하는 게 주 역할이고 지역구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라며 “수도권 징발론 배경에 호남권 중진들을 퇴출시키기 위한 모종의 음모론이 자리잡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반발했다.
공심위의 ‘호남권 30% 물갈이’ 방침을 둘러싼 내홍도 깊어지고 있다. 호남지역 중진인 정균환 최고위원은 기계적인 물갈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29일 모 라디오에 출연한 정 위원은 “교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인물로 대체시키냐도 대단히 중요하다”며 “도덕성이나 자질, 당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지역민의 신뢰를 받는 인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선 도전에 나선 장영달 의원(전북 전주완산갑)도 “미국에서는 18선 의원도 있다”며 호남 물갈이론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부 호남권 의원들 사이에서는 공심위의 공천 심사를 지켜본 뒤 여차하면 탈당 등 조직적으로 반발할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전남지역 의원 10여 명이 27일 밤 서울에서 비공개 모임을 가진 것도 이러한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모임을 주선한 신중식 의원(전남 고흥보성)은 “서로 회포도 풀 겸 모임을 가졌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호남 물갈이론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정치권 물갈이’가 아닌 유독 ‘호남권 물갈이’로 몰아가는 게 부당하다는 게 신 의원의 논리다.
민주당 일각에선 ‘호남 현역 물갈이’와 맞물려 공심위가 이미 살생부를 만들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어 호남 의원들의 불안감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 호남 의원들은 공심위의 공천 심사 결과를 지켜본 뒤 정치적 결단도 불사한다는데 의기투합하고 있어 민주당 공천 후폭풍은 범야권 세력 재편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