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공공장소서 보란 듯이…김정남 비호해온 중국 극단적 자극한 셈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 김정은 피습, 결국 중국 겨냥했나?
김정남의 피습으로 가장 당혹스러운 곳은 중국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김정남의 주거지는 중국의 제1급 특별행정자치구역인 마카오다. 오랜 해외 체류생활 속에서도 김정남은 마카오 이외에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주로 중화권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곳을 중심으로 드나들곤 했다. 간혹 유럽을 오갈 때도 김정남은 중국 정부의 신변보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중국 태자당(중국 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2~3세) 인사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의 장남 덩푸방(鄧樸方)과는 의형제로 칭해질 만큼 각별하다. 덩푸방은 현재도 태자당 핵심으로 중국 정권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인사다. 물론 시진핑 중국 주석 역시 태자당 핵심인사다.
이 같은 인적 배경 외에도 중국은 나름대로의 계산 속에서 김정남의 신변을 적극 보호해 왔다. 혹시 모를 한반도 급변사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중국 정부는 훗날 김정남을 요긴하게 쓸 수 있다는 계산을 늘 갖고 있었다. 이러한 훗날의 활용가치 덕에 중국 정부는 늘 김정남의 신변에 각별한 신경을 써온 것이다.
아직 김정남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주범이 명확한 상황은 아니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동남아 국적 여성 두 명이 체포됐지만, 이를 사주한 남성들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북한은 중국의 테두리에서 보호를 받던 김정남을 제거한 것이다. 중국을 극단적으로 자극한 셈이다. 그것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공항 한 가운데서 피습이 이뤄졌다. 마치 대외적으로 보란 듯이 말이다.
현재 중국과 북한은 국제적 대북제재 속에서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을 오가는 재화의 반입출에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한편, 관련된 자국 기업들에게도 적잖은 페널티를 적용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적 지원은 끊긴 지 오래다.
이번 취재에 앞서 필자는 최근 중국 현지에서 양국 간 고위급 비공개 실무회담이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회담의 큰 틀은 김정일 탄생 75돌 행사(2월 16일)의 중국 측 귀빈 참석 여부를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장기화되고 있는 북·중 관계 냉각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양측의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사드 설치가 현실화됨에 따라 중국도 대북제재 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터였다. 회담의 주요 내용을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비공개 회담이 마무리될 즈음 북한은 12일 북극성 2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때 ICBM(장거리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이라 예상했지만, 북한의 선택은 한 단계 아래인 IRBM(중거리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이었다. 그 비거리를 놓고 볼 때, 이번 북극성 2형은 미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닌 한반도 주변을 긴장케 할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사드 설치의 명분을 더해줄 뿐이고, 중국을 자극하는 행태인 셈이다. 앞선 북극성 2형 미사일 발사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쪽은 중국이었다.
김정남의 피습은 북한이 IRBM 북극성 2형 미사일을 통해 중국을 자극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만약 김정남 피습 배후에 북한이 있다면, 이는 북한이 중국에 던지는 초강수 경고성 메시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남을 피습한 말레이시아 현지 용의자들의 cctv 포착사진. 연합뉴스
# 극단적 충성파들의 개입 가능성?
지난 2월 15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미 북한은 지난 2012년부터 김정남을 살해하고자 시도해 왔다”라며 이는 ‘스탠딩 오더’라 설명했다. 스탠딩 오더란 명령권자가 한 번 내린 명령으로 ‘명령 취소’를 언급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을 의미한다.
이어 이 원장은 “2012년 4월경 김정남이 ‘저와 제 가족을 살려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김정은에게 전달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이 원장은 이번 피습 타이밍에 대해 “암살이 이뤄진 타이밍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라며 “김정남의 위협을 계산했다기보다는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 시기 보위부 라인을 통해 김정남의 강제 귀국까지 기획했다고 한다. 다만 배후에 있는 중국의 방해로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는 후문이다.
2012년 김정남은 일본 언론인 고미 요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라는 책을 공개한 바 있다. 이메일로 진행된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남은 북한으로서는 반체제에 가까운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한편, 김씨 일가 및 북한 내부의 민감한 정보를 흘리기까지 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더더욱 김정남을 예의 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단순한 스탠딩 오더로 그의 피습을 설명하기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북한 보위부에는 해외에 체류 중인 김 씨 일가를 감시하는 ‘친인척 관리팀’이 존재한다.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 주체코 북한대사 지근거리에도 늘 세 명의 요원이 밀착해 있고, 이는 김정남도 마찬가지다. 물론 중국 측의 신변보호가 있었겠지만, 굳이 김정남을 살해하고자 했다면 기회는 이전에도 많았을 것이다. ‘스탠딩 오더’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때문에 보위부 일부 라인의 극단적 충성파가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씨 일가 인사에 대한 피습은 아무리 ‘스탠딩 오더’라 할지라도 우연찮게 기회를 잡아 시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절대 아니다. 사건의 전말이 일부 밝혀지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특정한 누군가가 특정한 시점에, 특별한 기획 하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론 상당한 위험부담이 동반되는 기획이었기에 극단적 충성파들의 주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 북한 내부 파장은?
일단 북한 당국은 말레이시아 측에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모양새다. 북한 당국은 애초 김정남 시신의 부검을 반대했지만, 말레이시아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검 이후 시신 인도 여부와 그 과정을 두고 마찰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만약 북한 김정은 정권이 주도적으로 김정남 피습을 기획했다면 북한 내부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전 김정일이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의 일부에 따르면, 김정일은 절대 김정남을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유서의 내용은 북한 최고위층 내부에선 어느 정도 공유된 부분이다.
장성택 처형은 물론 군 주요 간부들에 대한 다각적인 숙청 및 처형이 공개된 이후 북한 최고위층의 동요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복형 김정남의 피습에 김정은이 적극 개입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북한 최고위층 내부 여론은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비록 앞서 조명했듯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꺼내든 극단적 카드일 수는 있겠지만, 이로 인해 내치의 양상은 더욱 불안해질 여지가 많다. 오히려 북한 내 일부 동요 세력에게 명분을 제시할 수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건이 북한 내부에 끼칠 파장이 만만찮은 이유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은 누구? 혼외자로 태어나 아홉 살부터 해외 전전 김정남은 출생부터가 남달랐다. 그는 1971년 5월 10일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다. 조부 김일성의 장손이자 아버지 김정일의 장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적자가 아니었다. 친모 성혜림은 아버지 김정일의 정실이 아니었다. 배우 출신 성혜림은 엄연한 유부녀였다. 김정일은 친구 형님의 부인이었던 연상의 유부녀 성혜림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렇게 정남을 낳았다. 당연히 김일성은 성혜림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혼외자식 김정남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김일성은 한동안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부친 김정일은 1974년 정실 김영숙과 혼인한다. 김일성의 주선이었다. 그렇게 정남과는 멀어졌다. 김정남은 고작 아홉 살 되던 해, 북한을 떠나 유럽으로 향한다. 모친 성혜림도 러시아로 망명하면서 김정남은 사실상 김 씨 일가의 곁가지 중 곁가지로 전락한다. 오랜 기간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한 김정남은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정치학을 수학했다. 특히 이 시기 김정남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동갑내기 숙부 김현(김일성과 안마사 제갈 씨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과 친하게 지냈다는 후문이다. 오랜 외국 생활 덕에 김정남은 불어와 영어는 물론 독일어와 일본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흥미로운 점은 오랜 외국생활 및 미디어의 영향 탓인지 김정남은 평양 말씨가 아닌 서울 말씨를 써왔다는 점이다. 오랜 해외생활 속에서 북한 정권 및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김정남은 평양의 조선콤퓨터센터 설립 등 북한 정보화 사업에 관여하는 한편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을 관리하는 당 39호실의 일부 해외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건강 문제와 관련해 프랑스 유수의 의료진들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업무를 진행하기도 했다. 비록 평양을 드나들지는 못했지만, 정남은 평양과 끈을 놓지는 않았던 셈이었다. 중국 정부 및 인사들과의 두터운 친분 관계와 비호 덕에 김정남은 곁가지이면서도 꾸준히 후계자 후보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망신을 당한 후엔 아버지 김정일과 더욱 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2012년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를 출간한 이후엔 운신의 폭을 좁혔다. 이때부터 이복동생 김정은의 살해 위협이 시작됐고, 자신을 후원하는 중국의 신변 보호 속에서 두문불출 지내 왔다. 근거지는 마카오였으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을 떠돌았다. 김정남에게는 본처 신정희 외에 이혜경, 장길선, 서영라 등 다수의 첩이 있다. 자녀로는 첩 이혜경에게서 얻은 장남 김한솔, 장녀 김솔희, 본처 신정희가 낳은 차남 김금솔, 첩 장길선에게서 얻은 3남 김이순 등이 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