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건강 회복하면 명예회복 문제 없다”
문제는 박병호(31·미네소타 트윈스)와 강정호(30·피츠버그 파이어리츠)다. 올 시즌 마이너리거로 신분이 하락한 박병호는 일단 초청 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캠프를 소화, 여기서 인정을 받고 살아남아야 빅리그 개막전 로스터에 진입할 수 있다. 강정호는 음주운전 재판으로 아직 취업 비자도 받지 못한 상태라 팀에서 공식적으로 강정호의 스프링캠프 합류가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4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강정호와 박병호는 2015년과 2016년 각각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2017 시즌은 두 선수에게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2월 초, <일요신문>은 미국 애리조나 니혼햄 파이터스 스프링캠프 훈련장에서 박병호, 강정호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앨런 네로 씨(옥타곤 베이스볼 대표이사)를 만났다. 앨런 네로 씨는 오타니 쇼헤이를 직접 보기 위해 니혼햄 훈련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박병호의 마이너리그행과 강정호의 음주운전과 재판 등이 불거진 상황이라 에이전트가 이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다음은 앨런 네로 씨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에이전시 앨런 네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박병호와 강정호의 활약을 자신했다.
―박병호가 웨이버 통과가 되면서 마이너리그 신분이 됐다. 물론 메이저리그 개막전 로스터 진입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형식상의 절차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을 뿐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할 것이고, 스프링캠프 로스터 룰 때문에 마이너리그에 이름을 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로스터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건 늘 있는 일이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훈련을 시작할 것이고, 시즌 개막에 맞춰 메이저리그로 진입할 것이라고 믿는다.”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훈련을 받긴 하겠지만 개막전 로스터 진입은 상당히 어려운 일 아닌가.
“건강이 우선이다. 박병호가 지난 시즌 부상을 당해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을 회복하고, 이전 모습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충분히 빅리그에 올라갈 자격이 된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박병호처럼 빅리그 캠프에서 훈련하며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선수들도 많다. 박병호만 못해서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게 아니란 뜻이다. 스프링캠프에서 반드시 명예 회복할 것으로 믿는다. 건강만 회복한다면 말이다.”
―박병호의 부상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묻겠다. 그동안 재활은 잘 이뤄졌다고 보나.
“그는 이미 준비가 됐다. 내가 기대하는 모습은 시즌 시작할 때 미네소타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1루 선수로 뛰는 것이다.”
―박병호가 한국을 떠날 때 각오가 대단했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전 인터뷰를 통해 올 시즌을 맞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그의 마이너리그행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 팬들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선수도 이런 상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아는데.
“팀을 운영하려면 종종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보내는 건 흔한 일이다. 자동차를 파는 사람이라고 상상을 해보자. 차를 파는 곳의 주차장이 꽉 찼다. 새로운 차를 들여오기 전에 한 대를 팔아야 한다. 한 대 팔고 다른 차를 들여오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다. 건강을 유지하고 문화 적응을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강정호와 관련된 소식을 업데이트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는 현재 음주운전 재판 문제로 출국도 못한 상태다.
“솔직히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게 잘 풀릴 것으로 믿는다. 한국에서 불거진 문제들이 잘 처리되길 바랄 뿐이다. 피츠버그 팀에서도 강정호가 하루 빨리 캠프에 합류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재판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스프링캠프에 늦게 합류하겠지만 시즌을 시작하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재판 결과, 그리고 미국 비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간을 갖고 서로 노력한다면 잘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본다. 그때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
―강정호가 스프링캠프가 끝나기 전, 팀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계획보다는 늦게 플로리다로 향하겠지만 그래도 캠프가 끝나기 전에는 꼭 합류할 것이다.”
―당신은 추신수가 만난 첫 에이전트였다(추신수는 FA를 앞두고 앨런 네로에서 스캇 보라스로 에이전트를 바꿨다. 당시 앨런 네로가 추신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를 비롯해 KBO리그의 선수들이 당신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당신이 선수들을 직접 관리하거나 담당하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회사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에이전트가 있다. 박병호, 강정호 등을 맡고 있는 한국인 에이전트도 있다. (손가락으로 앞에 있는 남성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일본 선수들을 관리하는 옥타곤의 일본인 에이전트다. 모두 유능한 인재들이라 내가 크게 신경 쓰거나 걱정할 일이 없다.”
―혹시 황재균을 알고 있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캠프에 합류하는데.
“내가 그 선수에 대한 얘기를 모를 리가 없지 않나(웃음). 황재균의 계약에 대해선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큰 나머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알고 있다.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살아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첫 해, 부진했던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가 패스트볼에 대해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에 동의하나.
“단순히 패스트볼 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팀들이 다른 나라에서 뛰던 선수를 데려온 다음엔 빨리 적응해서 ‘슈퍼스타’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선수들도 인간이다. 선수들이 미국에 오면 음식, 언어, 문화, 그리고 이곳 사람들한테도 적응해야 한다. 적응할 기회를 줘야 선수들이 여유를 갖고 이 문화 속으로 들어온다. 반대로 KBO 리그에서 뛰는 미국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KBO 리그 감독들은 외국인 선수가 3개월 안에 적응을 완료하길 바란다. 3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 그렇게 본다면 박병호는 작년보다 올해 더 잘할 것이다. 이미 3개월을 지나 한 시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야구하는 사람들이지만 적응하는 문제는 야구가 아닌 문화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멘탈과의 싸움이지 패스트볼 문제가 박병호를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올해 박병호는 그 모든 우려와 의혹의 눈초리 속에서 멋지게 재기할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차라리 야구 못한다 욕을 하시지…” ‘사인’ 때문에 괴로운 류현진 2월 17일(한국시간) LA 다저스 글렌데일 캐멀백랜치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서 류현진이 순조로운 불펜피칭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이미 양쪽 길에는 선수들의 사인을 받으려고 수많은 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야구카드, 공, 방망이, 사진첩, 유니폼 등 팬들이 사인을 받고자 하는 물건들은 그 종류만큼 다양하다. 류현진은 자연스레 펜을 받아들고 사인을 시작했다. 그 옆에는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가 바쁜 손을 움직였다. 기자가 류현진의 사인 장면을 가까이 다가가서 찍으려고 하자 류현진은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인하는 모습 나가면 또 욕먹어요.” 스치듯이 하는 얘기였지만 류현진이 그동안 감내했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류현진은 지난해 힘든 재활 훈련을 소화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인 거절 논란에 휘말렸다. 야구 커뮤니티를 통해 조금씩 올라오던 소문들이 급기야 포털사이트의 댓글로 확장됐고, 이후 류현진 관련 기사가 뜨면 류현진이 팬들의 사인을 거절하고 도망 다니기 바쁘다며 비난 섞인 댓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붙어 다녔다. 류현진은 지난해 사인 거절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사인 논란은 그의 부침이 거듭되면서 계속 반복됐다. 처음엔 조금 이러다 말겠지 했던 상황은 나중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류현진의 재기를 기다리던 팬들 중 일부는 배신감에 류현진에 대한 ‘악플’을 달기도 했다.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은 아니지만 ‘카더라’가 ‘진짜더라’로 바뀌며 류현진을 공격했다. 급기야 류현진은 포털사이트에 게재하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해명하고 정식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팬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사인을 안 해준 것도 아닌데 팬들의 사인 요청에 급히 뛰어 들어가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류현진의 사인 논란은 가라앉질 않았다. 그동안 류현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취재해왔던 기자는 그런 논란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보다 사인을 열심히 해준 이가 류현진이었고, 야구장이 아닌 미용실, 식당에서, 특히 아이들이 사인요청을 해올 때는 대부분 응해준 이가 그였다. 물론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바쁘게 이동할 때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선 그 자리를 벗어난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현진의 사인 논란은 그의 부침이 거듭되면서 계속 반복됐다. 한 남성 팬의 사진촬영 요구에 응하는 류현진. 올 시즌 완벽한 재기를 노리는 류현진은 또다시 팬들 앞에 섰다. 다저스 훈련장에 나타난 팬들 중 한 남성은 “류,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며 사인볼을 내밀었다. 류현진은 주저 없이 그 공을 받아 사인해서 건네줬다. 아이를 안고 온 남성은 사진 촬영을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류현진은 그 남성이 사진 찍기 편하도록 얼굴이 대줬다. 그러면서도 사인하는 장면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걸 싫어하는 것이다. 류현진의 측근은 다음과 같은 얘기로 류현진의 심경을 대변했다. “사인을 해주면 ‘이젠 사인해준다’며 욕하고, 사인을 못해주면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보니 선수 입장에선 사인 얘기만 나오면 민감해지는 것 같다. 사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십 명, 수백 명이고, 선수는 혼자이다. 선수가 그들이 바라는 모든 사인을 해줄 수는 없다. 야구를 못해서 욕먹는 건 참을 만한데 사인 안 해준다고 비난받는 건 굉장히 힘들다. 아마 평생 들을 욕을 지난 한 해 동안 다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재기에 대한 의지와 오기를 불태웠는지도 모른다.” 한편 17일 불펜피칭을 마친 류현진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다. 류현진의 불펜피칭을 지켜본 릭 허니컷 투수코치도 좋은 피칭을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디 올 시즌에는 건강한 류현진, 좋은 공을 던지는 류현진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