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선 “괜찮다” 대사관 말 믿다 불법체류자로…멕시코에선 “일단 서명부터” 결국 감옥행
직장인 이 아무개 씨(여·26)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여행을 하고 출국을 하려던 도중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붙잡혔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3일 장기간 여행을 위해 두바이에 입국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기존까지 두바이에서 30일 체류할 경우 무비자로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씨는 30일이 넘는 여정을 계획하게 됐다. 지난해 9월 한국과 UAE 정부가 제71차 유엔 총회를 개최하며 진행됐던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과 UAE 간 비자면제 MOU를 체결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 두바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웹페이지에는 ‘MOU 발효(UAE 현지시간 2016.9.21. 23:00경) 이후 UAE를 입국하는 우리 국민은 잔여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인 여권 소지시 UAE 내에서 비자 없이 최대 90일간 체류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 발효 이전 UAE를 입국한 우리 국민은 기존과 동일하게 30일 비자 면제를 적용받게 됩니다’라는 글이 게시됐다.
주 두바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웹페이지 내 MOU 발효를 알리는 글.
이 씨는 이 글을 보고 두 달 이상의 여정을 계획했던 것이고 다른 나라로 또 다시 여행을 가기 위해 출국 과정을 밟던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UAE 측에서 이 씨가 불법체류자라며 출국을 막았던 것이다. UAE는 “이 씨가 무비자 시스템이 시작되기 전에 입국했으니 무비자 협정이 시작된 기간에 체류했어도 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체류에 해당한다”고 통보했다. 이 씨는 바로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총영사관에서는 “MOU 발효 이후에도 시스템 변경 등으로 UAE 측에서 한 달 정도의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웹페이지에 공지했다”며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총영사관에서는 당시 MOU 발효 관련 공지 글에 ‘다만, UAE 정부는 UAE 측 시스템 변경 등 사전준비에 약 1개월이 소요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는 문장을 붙여놓았다.
이에 이 씨는 “괄호 안에 적혀 있던 글이어서 중요한 내용인지 몰랐다. 그러나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비자에 대해 가장 많이 신경을 썼고 아랍에미리트 총영사관 게시물을 읽고 긴가민가해 대사관에도 확인을 했지만 괜찮다는 답변을 수차례 들었다”며 “불법체류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고 외국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에 공포감이 커졌다. 불법체류에 대한 벌금을 내야 했고 결국 여행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기하는 동안에도 경찰에게 붙잡혀 불법체류자로 감옥에 갈까봐 심적으로 매우 불안했다. 무비자 협정에 대한 공지가 미흡해 이런 상황을 유발했다. 여행자들, 체류자들을 위해 좀 더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게시글은 ‘2016년 9월 21일 이후 MOU가 발효됐고, 발효 이후 비자 없이 여권을 소지한 경우에 체류가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시스템 준비 등 사전 준비에 1개월이 소요된다’고 돼 있어 충분히 혼동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이 씨의 불법체류 사건 이후 주 두바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다시 게시한 글.
이 씨는 2700디르함(원화로 90여 만 원)을 벌금을 내고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바이 총영사관에서는 이 씨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야 다시 웹페이지에 ‘한-UAE 비자면제 MOU 관련 공지’라는 제목으로 “UAE 정부에서는 시스템 정비에 1개월가량이 소요될 것이라며 즉각적인 시행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했다”며 “따라서 2016년 10월 UAE에 입국하신 한국인은 본인의 무비자 체류가능기간을 직접 확인해 출국시 불법체류로 인한 벌금납부 등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했다.
대만을 여행하던 여대생들 역시 대사관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지난 1992년 대한민국이 대만과 수교를 단절하면서 대만 내 한국 영사관은 없고, 대표부가 영사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여대생 세 명은 대만에서 택시투어를 하던 중 택시기사 잔 아무개 씨(39)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이들은 숙소에 도착해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범죄 사실을 인지하고 주 대만 대한민국 대표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짜증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한국 직원이 전화를 받아 한숨을 쉬면서 “지금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인데 무슨 일로 대표부 긴급전화로 전화를 하셨냐?”며 성폭행 상황 설명을 위한 통역을 요청하니 “상시적 통역은 어려우니 날이 밝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고 그 다음에 연락을 달라”고 답했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현지 교민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대사관이 아닌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사정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인 지난달 18일에서야 대표부는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고, 대만 여행객들에게 택시 투어를 주의하라며 추가 피해자 접수를 공지했다. 그러나 대만 당국에서 가해자가 소속돼 있던 택시회사에 대해 영업금지 처분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름으로 영업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만 대표부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난이 잇따르기도 했다. 대만 교민을 포함한 국민들은 대만 대표부의 초기 대응에 불만을 갖고 민원을 넣기도 했다. 한 국민은 “직원이 외교부를 대표하면서 직무 유기를 했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항의하자 대표부에서는 “엄중한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관련자에 대해서는 경위를 확인했다”며 “통화를 한 당직자와 신고자의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고, ‘친절한 당직전화 접수’를 위하여 철저히 교육했고 향후 주기적으로 재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영사관 측에서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위험에 빠뜨린 경우도 있다. 멕시코판 ‘집으로 가는 길’로 안타까움을 샀던 양 아무개 씨의 이야기다. 노래방 여직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은 양 씨는 아직도 1년 넘게 멕시코에서 수감 중이다. 지난해 1월 양 씨가 멕시코 검찰의 강압 수사를 받을 때 양 씨와 노래방 여직원 일행을 가장 먼저 접촉했던 것은 이 영사였다. 이때 이 영사는 이들에게 멕시코 검찰 측이 요구하는 성매매와 성매매 알선을 인정하는 취지의 1차 진술서에 일단 서명을 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 이 영사가 이들에게 2차 진술서에 말하고 싶은 바를 모두 추가하면 된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들은 하라는 대로 했다. 당연히 영사관이 자국민을 보호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추가 진술이 아닌 감옥행이었다.
심지어 이 영사의 서명이 들어가 있는 진술서에는 ‘본인이 자국 여성들과 면담을 했고 피해자 권리를 설명했다. 여성들 각자가 본인들의 진술을 수정을 거쳐 작성했고 1차 진술서의 모든 내용을 동의한 상태에서 서명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진술서 때문에 양 씨를 기소한 검찰은 항소를 해 아직까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국정감사와 외교부 자체 조사를 통해 이 영사의 책임이 드러났고 더 이상 경찰 영사로서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외공관주재관 임용령에 따르면 주재관은 재외공관에서 3년간 계속하여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영사는 3년의 임기를 못채우고 도중 조기 귀국조치됐고, 다른 영사가 대신해서 근무하는 것이 결정됐다. 재외공무원 복무규정 제13조에 따라 부과된 직무수행에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 등의 경우에는 국내로 소환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영사의 조기 귀임이 결정됐고 파견 역시 종료돼 소속이 외교부에서 원소속인 경찰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도 경찰청이 담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양 씨가 타지에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이 영사는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외근지도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외교부, 외교관 기강 확립 팔 걷어 재외공관 근무자의 일탈 문제는 해마다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달부터 외교부는 재외공관 복무기강 확립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 대사관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재외공관에서 이뤄지는 일부 외교관의 일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지가 논의의 초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민간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에 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했다. 외부에 문제가 된 비위 사례를 알리고 전문가 자문을 통해 재외공관에 대한 ‘맞춤형’ 기강 확립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칠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공공외교를 담당한 박 아무개 참사관은 지난해 현지인 10대 여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12월 말 파면됐다. 중동 지역에 주재하는 한 현직 대사도 대사관 직원을 성희롱한 혐의가 확인돼 같은 시기에 감봉 처분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