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늘고 수주 건재한데 구조조정 추진…노동계 “지배구조 강화에 악용 소지”
지난 2월 22일 주당 15만 7000원으로 마감한 현대중공업의 시총은 11조 9300억 원을 기록했다. 넉 달 전과 비교해 약 9000억 원이 빠졌지만 여전히 현대중공업 주식은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 조선산업이 해운업황 침체와 저유가 흐름 등으로 불황을 겪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차곡차곡 신규 발주를 유치하며 주가 견인에 성공했다.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6월 가동중단 방침을 밝힌 가운데 지역사회가 강력히 반발하며 군산조선소 존치를 촉구했다. 군산시 제공.
지난 2월 20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수주잔량은 69척(334만 2000CGT, CGT는 표준화물선 환산t수)으로 세계 3위를 차지했다. 현대중공업과 순환출자 구조로 엮인 현대삼호중공업(44척, 174만 5000CGT), 현대미포조선(75척, 167만 9000CGT)도 각각 CGT 기준 7, 8위를 기록했다. 수주잔량 세계 10대 업체 가운데 현대중공업 계열이 무려 3곳이나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현대중공업의 실제 수주잔량은 매달 줄고 있다. “선박의 공급 과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규 발주가 끊겼다는 것”이 해운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물론 ‘수주절벽’이 일부 과장된 것이란 주장도 있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 선박 발주량은 60만CGT(31척)로 2016년 1월 대비 4만CGT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신규 발주 감소도 문제지만 선박대금 지급이 선박 인도 시점에서야 이뤄지는 까닭에 조선사들의 금융 비용 부담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은 구조조정 자구안을 주채권은행에 제출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고 있다. 유휴 부동산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인력과 설비를 감축해 고정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또 현대중공업은 조선 부문과 비(非)조선 부문으로 회사를 쪼개고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대중공업은 오는 4월 1일을 분할기일로 정하고 현대중공업을 인적분할해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건설장비(현대건설기계) ▲로봇(현대로보틱스) 사업부를 분사시킨다는 계획을 밝혔다.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은 조선 사업을 맡는다. 오는 2월 27일 주주총회에서 현대중공업 인적분할과 관련한 안건이 통과되면 분사된 3개 회사는 차례로 증권시장에 상장될 예정이다. 인적분할을 추진 중인 다른 중견기업 관계자는 “인적분할을 하면 각 사업부의 실적이 제고되고 연결재무제표상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를 떼어낼 수 있다”며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인적분할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현대중공업이 추진 중인 인적분할이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3세 경영 승계와 지배구조 강화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백형록) 관계자는 “(우리의)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라며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가 될 현대로보틱스만 지배하면 현대중공업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자유한국당 의원.
현재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만약 현대중공업이 인적분할하면 현대로보틱스가 지주사 역할을 맡고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의 지배 고리가 완성된다. 이 경우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7.98%)은 매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은 자사주 13.37%를 현대로보틱스로 넘기고, 그룹 ‘캐시카우’인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3%도 이전한다. 여기서 핵심은 현대로보틱스가 보유할 ‘자사주’다.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현대로보틱스로 주식이 넘어가면 의결권이 발생한다. 현대로보틱스를 소유한 대주주는 지분 매입 없이 넘겨받은 자사주만큼 타 법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 발휘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 정몽준 전 의원은 인적분할 후 자동으로 현대로보틱스의 대주주(10.15%)가 된다. 또 현대중공업 주식 13.37%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 지주사 설립 요건(자회사 지분 20% 이상 취득)을 갖추기 위해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 주식 6.6% 이상을 추가 매입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7.98%)을 현대로보틱스가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인적분할은 지배구조 강화 및 경영권 승계와 전혀 무관하다”며 “추가 지분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 분할 시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면 ‘자사주의 마법’ 효과를 더는 볼 수 없다. 현대중공업 측도 “해당 법안 통과 시 인적분할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선 현대중공업이 ‘자사주 제한법’ 통과 전 인적분할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울산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현대중공업 분사 후 이른바 ‘탈울산’이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중공업 측은 “핵심 사업장은 그대로 울산에 존속할 예정이며 이번 인적분할과 ‘자사주 제한법’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