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금 스코틀랜드의 한 한적한 어촌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지난 인생은 결코 한적하지 않았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과거는 그녀의 범죄소설 내용보다도 훨씬 더 섬뜩하다.
그녀의 지금 이름은 앤 페리지만 옛 이름은 줄리엣 헐미였다. 그녀는 소녀시절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녔다. 줄리엣의 원래 고향은 영국 런던이다. 그러나 기관지가 안좋아 계속 고생을 하자 엄마는 그녀를 공기가 맑은 뉴질랜드로 보냈다. 이때 줄리엣의 나이는 열 살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장로교회 목사의 딸이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유명한 수학자였다. 사회활동으로 바빴는지 그녀는 다른 나라에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를 외롭게 보내고 있는 딸에게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녀는 줄리엣이 뉴질랜드에 있었던 5년 동안 단 한 번도 딸아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줄리엣에게는 엄마의 품을 대신할 친구가 필요했다. 열세 살 때 줄리엣이 다니던 크리스천 여학교에서 나중에 둘도 없는 사이가 된 폴린 파커라는 친구를 만났다. 두 소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손을 잡고 다녔다.
두 소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먼저 감지한 측은 당연히 딸과 함께 사는 폴린의 부모였다. 폴린의 엄마는 두 소녀의 교제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둘을 떼 놓으려고 애를 썼다.
폴린 엄마의 방해 때문에 그들은 자주 못만났다. 그러자 두 소녀는 거의 미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때를 맞춰 영국에 있던 줄리엣의 부모가 이혼을 했다. 줄리엣은 그래서 할 수 없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줄리엣과 폴린은 크게 낙심을 했다. “결코 헤어질 수 없다”며 배수의 진을 친 두 소녀는 영국으로 함께 가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야만 지긋지긋한 폴린 엄마의 방해 공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것만이 자신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영국 탈출 계획은 폴린의 엄마에게 미리 감지됨으로써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화가 머리까치 치민 두 소녀는 폴린의 엄마를 죽이기로 결정을 했다. 존속살인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폴린의 엄마를 한적한 공원으로 유인한 사람은 줄리엣이었다. 자신의 엄마가 유인장소에 오자 폴린은 숨기고 있던 곤봉으로 엄마의 머리를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
범행은 너무나 끔찍했고 참혹했다. 열다섯 살 소녀는 엄마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곤봉을 휘둘렀다. 줄리엣 역시 친구를 적극 도왔다. 두 소녀의 옷은 폴린 엄마의 피로 흠뻑 젖었다.
▲ 앤 페리 | ||
‘오늘은 기쁜 행사가 있는 날이다. 나는 어제 저녁 너무나 신이 났었으며 크리스마스 전날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금 아주 내 감정을 잘 조절하고 있으며 기쁜 행사는 내일 정오에 시작될 것이다. 다음 일기를 쓸 때는 아마 우리 엄마가 죽고 난 뒤일 것이다.’
일기장으로 인해 살인 혐의가 입증된 두 소녀들은 각기 다른 감옥으로 보내졌다. 줄리엣은 오클랜드 마운트 에덴이라는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녀가 세상 빛을 다시 본 것은 스물한 살 때인 1959년이었다.
5년 반을 감옥에 있었던 그녀는 그러나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인생을 걷게 된다. 먼저 줄리엣 헐미라는 이름을 버리고 앤 페리로 개명을 했다. 스물한 살의 처녀가 된 앤 페리는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후 다시 미국의 LA로 이사를 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 수많은 일을 했는데 그것은 다 궂은 일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의 길에 들어섰으나 처음 시도했던 역사소설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범죄소설을 쓰면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다. 살의를 지닌 범인들의 묘사를 그녀처럼 실감나게 표현하는 작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무서운 과거를 아는 사람은 아주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으며 내가 한 짓에 대한 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거는 과거대로 치워 놓고 새로운 길을 가야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과거는 1994년 7월의 어느 오후 그녀의 비서인 메그 데이비스로부터 전화가 오기까지는 비밀로 묻혀 있었다. 무려 35년 동안 그녀는 줄리엣이 아닌 앤으로 살아왔다. 줄리엣이라는 이름에는 피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앤이라는 이름에는 부와 명예의 훈훈한 기운이 가득했다.
영원히 숨겨 두고 싶었던 그녀의 과거는 그러나 전혀 엉뚱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비서로부터 그런 영화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는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거의 모두 사실이었고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나였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앤의 충격은 무척이나 컸다. “나는 문제의 영화 때문에 내 인생과 성취가 다 파괴되는 줄 알았다. 심지어 내 어머니까지도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향한 독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마해보려는 변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살인을 한 것은 친구 폴린의 협박뿐만이 아니라 내가 복용했던 마약의 영향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마약으로 인해서 나는 결핵까지 걸리게 됐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