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홍반장’ 모시기 열올려…슈스케식 원샷 경선 한다면? “흥행 기대”
의외였다.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재판 중이었던 홍준표 경남지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자 그가 속해 있는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바른정당에서도 “만세” 소리가 나왔다.
현재 홍 지사는 송사에 휘말리면 당원권이 정지되는 자유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라 당 소속이긴 하지만 당내 활동은 할 수 없는 상태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이 상고하면서 홍 지사의 대선 출마에 변수가 새로 생겼지만 ‘홍반장’ ‘홍럼프(홍준표+트럼프)’ ‘앵그리홍(앵그리버드+홍)’의 등장에 환호하는 범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2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경상남도 서울본부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바른정당은 정당 지지율과 대선주자 지지율이 모두 하위권에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정당 지지율은 2위 그룹임에도 대선주자 지지율은 ‘제로’에 가까운 수준이다. 홍 지사가 대선의 링에 오른다면 흥행의 불쏘시개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양당의 생각으로 보인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대는 전투력, 경남 지역 일부 언론을 향해 “찌라시”라고 직격하는 거침없는 트러블 메이킹, 하지만 여기에 오버랩되는 ‘모래시계 검사’의 강력한 이미지. 그러면서 ‘홍준표 대 유승민’ 맞대결이라면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범여권의 대선 경선판을 홍반장 대 유사부(유승민 캠프에서는 그를 ‘국민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에 붙여 유사부라 부르고 있다) 대결로 흔들어보자는 얘기다. 앞서의 바른정당 중진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바른정당에도 홍 반장 우호세력이 적지 않다. 우선 친이명박계가 홍 지사와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 지사 지지세력도 영남 전체에 골고루 분포한다. 우리 쪽에서도 그가 대선에 나온다면 알게 모르게 지원할 거다. 물론 자유당(그는 자유한국당을 이렇게 칭했다)도 ‘올인’하겠지.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나오고, 누구보다 탄핵 반대에 열 올리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까지 다 나오면 볼 만한 싸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음 대선은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등 돌린 전통 보수층이 우리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렇다. 현재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창원, 울산 등지에서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홍 지사의 특강정치는 바른정당의 A 의원 등이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원권이 정지돼 홍 지사를 지원해주기 어려운 자유한국당 대신 ‘보수의 적통’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바른정당이 그를 돕고 있는 셈이다. 당장 존재감을 알릴 방법이 없는 홍 지사로서도 특강정치만한 방법이 없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도 대선 출마와 관련한 메시지를 대거 쏟아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승민 의원이 ‘중도+범보수 후보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유 의원의 범보수 단일화 입장에 남경필 경기지사가 연일 딴죽을 걸자 바른정당은 당론으로 자유한국당과의 어떠한 연대도 없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홍 지사의 등장과 동시에 당 지도부(주호영 원내대표)도 유 의원도 다시 단일화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유 의원의 단일화 논리는 예전과 달리 더 뾰족해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축약된 논리가 아니라 그의 풀워딩(full-wording)은 이렇다.
“위기에 처한 보수의 위기 극복은 보수 혁신에 있다. 그리고 새 보수가 중도층과 보수층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서 민주당의 최종 후보와 1 대 1로 승부를 해야만 승산이 있다. 이번 보수 후보 단일화에 보수혁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정략적 연대로만 보면 안 된다. 기존 보수가 추구한 가치 중에 경제성장의 필요성과 굳건한 안보관은 계승하되 낡고 부패한 부분은 과감히 혁신하는 것이 보수혁명이지 않냐. 보수가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국민께 알리고 선택받고자 하는 것이 보수후보 단일화이다.”
국민의당과의 막판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둔 유 의원은 자유한국당과의 단일화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홍 지사와 범여권 결선의 링에 오르게 될 경우엔 많은 스토리를 배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범여권의 여기저기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종합해보면 이렇다.
홍 지사와 유 의원은 사실 정반대의 캐릭터지만 노선은 흡사하다. 홍 지사는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대란(大亂)이 있을 때는 대치(大治)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마초의 리더십, 나아가선 스트롱맨 리더십을 부각시킨다. 반대로 유 의원은 보수주의자이지만 약자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증세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며 복지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 유 의원은 탄핵에 찬성했지만 홍 지사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위헌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둘 다 강력한 안보관을 피력한다. 홍 지사는 사드 배치에서 나아가 핵 무장까지 언급하는 초강력 매파다. 하지만 두 정치인 모두 친박계는 비토한다. 둘 다 ‘보수의 적자’를 두고 싸우고 있는 점도 닮았다. 홍 지사는 경남 창녕 출생이지만 중·고교가 영남중·고로 대구에서 나왔다. 그래서 PK와 TK 인맥에서 고른 강점을 보인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부산에서 특강점이 있다면 홍 지사는 다르다. 대구 출생인 유 의원은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서가 강한 TK에서조차 ‘배신자’ 이미지가 덧씌워져 애를 먹는 중이다.
특히 두 정치인의 한판 대결이 주목되는 것은 2011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7·4전당대회의 ‘버전2’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접전 끝에 홍 지사가 당 대표가 됐고 유 의원이 차점자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둘은 인사에서부터 정책과 노선까지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유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던졌고 원희룡 남경필 등도 동반 사퇴하면서 홍준표 체제가 붕괴됐다. 지휘권을 고수하고자 끝까지 버텼던 홍 지사는 그 이후 유 의원을 거의 원수같이 생각한다고 전해진다. 같은 범여권 아래 묶여 있지만 상대방은 ‘극혐’하는 경쟁자인 셈이다.
게다가 둘의 대결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 한국판 미 대선 스토리를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회자한다. 바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의 대결이 범여권 안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상상이다. 힐러리와의 경선에서 진 샌더스는 민주당 후보였지만 빈부격차 및 소득불평등 해소, 슈퍼리치의 부 재분배, 최저임금 인상, 재벌개혁 등을 내걸었다. 이는 여러모로 사회적경제 등을 내세우는 유 의원의 정책이나 공약과 닮았다. 그래서 유 의원을 두고 ‘유더스’라는 별칭을 붙이는 지지자들도 적지 않다.
범여권에서 선거전문가로 꼽히는 한 인사는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그리고 정운찬 이재오 등 범여 성향의 주자군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탈락자를 결정하는 일명 ‘슈스케(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의 오디션 방식)’ 경선을 펼치면 어떤가 하는 논의가 조금씩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바른정당 내부에서조차 이 같은 ‘원샷 경선’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지난 지방선거의 ‘박원순+박영선’ 단일화 방식으로 홍 지사가 아예 무소속 지대로 물러나 ‘정당+무소속’ 막판 단일화 방식으로 가도 흥행몰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경선 흥행에서부터 참패할 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였던 범여권에 구원의 햇빛이 스며드는 모습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