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복’ 단체로 맞춰라” “새터 불참비 내라” 갑질 기막혀
가톨릭관동대학교 학생들이 군복을 탈의한 채 군가를 부르고 있는 사진이 온라인 상에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일요신문] 대학 내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이른바 ‘군기 문화’ 문제는 대학가에서 끊이지 않고 회자되는 단골손님이다. 특히 새로운 시작을 앞둔 3월을 전후로 대학 내 문제가 더욱 자주 불거진다. 일부 대학 새내기들은 본격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선배들로부터 이 같은 악습을 경험하기도 한다.
화제가 됐던 대학 내 군기 잡기 문화는 가톨릭관동대학교가 있다. 지난 2015년 3월 가톨릭관동대 학생들은 늦은 밤 길거리에서 군복을 탈의한 채 군가를 부르고 있는 사진이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관련 영상이 TV 뉴스로 전파를 타며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화제에 올랐다.
올해 2월에는 위덕대학교 항공관광학과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재학생들은 입학예정인 학생들에게 “등록금 납부기간이 끝났으니 이제 진짜 17학번”이라며 신입생이 지켜야 할 ‘학과 규칙’을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입학 이전 선배와 후배가 만나는 자리인 ‘대면식’이 있음을 알리며 이 자리에도 ‘준정장과 이에 어울리는 화장과 헤어스타일’을 강요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 학과 규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규칙은 여름에도 검정 스타킹을 신어야 하고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등 복장 통제가 심했고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메이크업을 강요하는 내용이었다. 신입생들은 학과 내 상황이 공개되자 “선배들이 ‘입단속’에 나서 더욱 두렵다”며 제보를 이어갔다.
대학 내 군기 잡기 문화는 지난 2014년을 기준으로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떠올랐다. 이는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발달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서 ‘OO대학교 대나무 숲’으로 불리는 페이지를 통해 각 학과의 내밀한 문화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 이들 페이지는 익명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중에게 전달해준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폭로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악폐습을 이어가는 재학생들이 신입생을 통제하기도 쉬워졌다.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입학조차 하지 않은 신입생들에게 학과 규정이나 지침 등을 전파하기가 용이해졌다. 부조리 내용 등이 외부로 유출이 되더라도 메신저를 통한 제보자 색출, 2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한때 이 같은 대학 내 부조리는 ‘일부 지방대만의 문화’라고 치부되기도 했지만 서울 소재의 대학들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올해 오리엔테이션 성격의 새터(새로배움터)를 앞두고 ‘토복’이라 불리는 술을 마실 때 구토를 대비한 옷을 단체로 맞출 것을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연세대학교는 지난해 말 금품 갈취와 관련된 폭로가 터져 나왔다. 선배들에게 졸업 반지를 선물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돈을 모으는 데 과도한 금액을 모으고 돈의 사용처도 불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제보를 한 학생은 “세미나비, 회식비 등 학생회비를 제외하고도 걷어 가는 돈이 너무 많다. 영수증 내역을 공개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도 신입생들에게 새터 참여를 강요하며 불참하는 인원으로부터 불참비를 걷으려 해 논란이 일었다.
이화여자대학교도 ‘군기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이대 체육학과 ‘지침’은 후배가 나이가 많더라도 선배에게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등 선후배간의 예절을 강조하고 있었다. 언니 앞에 이름을 붙여 부를 때도 ‘OO이 언니’가 아닌 ‘OO 언니’라고만 불러야하는 규정도 존재했다.
인하대학교도 선배가 후배들에게 과도하게 권위를 내세우는 문화가 폭로됐다. 인하대 연극영화과 16학번 학생은 “과 안에 부조리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 고발하고자 한다”며 “선배들이 ‘집합’을 시켰고 불참자 한 명이 도착할 때까지 엎드려뻗쳐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인하대 연영과 합격한 MC그리가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개그맨 김구라 아들로도 유명한 래퍼 MC그리(김동현)는 폭로에 앞서 인하대 연영과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서울 소재 대학 한 체육학과에서 진행된 하계 훈련.
A 씨는 체대만의 문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권 체대는 ‘락카 미팅’이라는 문화가 있다”면서 “체육과 전용 탈의실이나 샤워실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원산폭격’ 등 얼차려를 준다. 학생회나 총장의 노력으로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신입생 때는 하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방학 때 일주일 정도 합숙을 하는데 제식훈련을 하고 관등성명을 대게 하는 등 군대 문화처럼 진행된다. 훈련에는 학과 출신 교수도 참여한다”고 덧붙였다.
대학 ‘군기 문화’와 관련된 폭로가 계속되고 있지만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강원대학교 총학생회는 ‘군기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 동국대학교에서는 인권 팔찌 프로젝트를 추진해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학생들이 술자리에서 차도록 했다. 학생들도 이를 ‘절대 팔찌’라고 부르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동국대학교는 인권 팔찌 프로젝트 추진해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학생들이 술자리에서 차도록 했다. 동국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캡처.
경찰청에서는 지난 2월 13일부터 오는 3월 31일까지 ‘신학기 불법행위 단속기간’으로 설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7주간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하고 전국 대학 소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에 ‘대학 내 불법행위 수사팀’을 지정해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성폭력 문제도 불안 “짐승 같은 선배 있으면 어쩌나” 대학 내 군기뿐만 아니라 재학생이 신입생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문제도 터져 나오며 신입생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건국대학교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준비 중에 재학생 사이에서 성추행이 일어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이를 알리려 했지만 학생회 차원의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커졌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강대에서는 지난해 있었던 ‘단톡방 성희롱’의 가해자가 신입생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신입생 카페는 학생회 승인을 거쳐 가입이 가능하기에 학생회를 향한 지적도 이어졌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