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다툼’에 뿔난 민심 찍을 맛 안나네
▲ 3월 27일 통합민주당 손학규대표가 종로 구민회관 앞에서 유권자들에게 연설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4·9 총선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여론조사’라는 산술적인 수치를 가지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결국 총선 당일까지 남은 시간 동안 여론의 흐름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슈를 장악하는 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선은 대선보다 좀 더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다. 전체 득표율에서 앞서면 되는 대선과 달리 총선은 각 지역별로 다른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과연 이번 총선에서 각 당은 목표 의석수를 얻을 수 있을까. 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총선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은 적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총선 전망과 남은 기간 총선정국을 강타할 이슈는 무엇이 될지 들어봤다.
대선이 끝난 이후 4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정가는 총선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각 당은 대선 이전부터 총선을 준비해 왔지만 총선 정국에서도 별다른 정책적 이슈는 내놓지 못한 채 여전히 당내 계파 다툼이나 상대 당을 향한 네거티브에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 초반보다도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이례적’ 현상까지 겪고 있다. 5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30%대까지 급락한 수치가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는 여전히 통합민주당에 비해 크게 앞서 있지만 봉합되지 않고 있는 계파 갈등과 금품살포 사건 등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개혁공천을 부르짖었던 통합민주당의 지지도 역시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공천 후유증을 겪고 있는 데다 한나라당을 공격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전략이 없는 상황이다.
한길리서치의 홍형식 대표는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정당 지지도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이탈 지지도가 통합민주당으로 옮겨가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서치플러스 임상열 대표는 “통합민주당 지지층은 굉장히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같은 지역에서도 조사마다 제각각이고 순위까지 바뀔 정도다. 남은 기간 동안 지지층의 결집력이 어느 정도 단단해지는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과연 각 당은 이번 총선에서 몇 석이나 얻을 수 있을까. 대선 직후 한나라당 내에서는 개헌선인 원내 3분의 2 이상, 즉 200석도 가능하다는 ‘호언장담’이 나왔으나 요즘은 “과반수만 넘어도 좋겠다”는 ‘엄살’까지 들려온다.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 밝힌 목표의석수는 전체 299석 중 165~170석. 이방호 사무총장은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168석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최소한 본회의 의결 과반수인 150석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망은 한나라당의 ‘목표치’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팀장은 “공천 후유증, 돈 선거 등으로 얼룩진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 현 구도가 총선까지 그대로 간다면 한나라당의 목표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배 팀장이 예상하고 있는 의석수는 150~155석 내외로 과반을 겨우 넘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반수 달성도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었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대표는 “현재 분위기로는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수 확보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넘으려면 수도권의 111석 중 70~75석 정도를 차지해야 할 것으로 분석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 홍 대표는 “특히 수도권에서 비한나라당 현역(의원) 후보에게 한나라당의 비현역 후보가 대부분 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은 공천을 통과한 이 대통령 측근들이 나선 지역구가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민주당 현역의원과 맞붙고 있는 한나라당 신진 인사들이 고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이들이 수도권에서 총선 의석수를 어느 정도 차지하느냐가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리서치 플러스의 임상열 대표는 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이 예상외의 높은 의석수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임 대표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통합민주당 지지자들에 비해 적극적 투표 의사층이 더 높아지고 있다. 노인층의 투표 의사도 높아진다. 여기에 예상 전체 투표율은 낮아지고 있다. 이는 선거 당일 투표에 나서는 한나라당 지지층이 통합민주당에 비해 더 많을 것임을 의미한다. 민주당이 결정적인 콘텐츠를 내놓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이 생각 외로 많은 표를 가져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한나라당이 160석 이상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합민주당의 경우 한나라당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는 게 고민이다. 그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체적인 이슈가 부족하고 여전히 네거티브 전략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을 꼽는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비판으로 한나라당을 공격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통합민주당이 주도할 수 있는 이슈가 부족하다는 것.
▲ 3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비례대표 후보자 국민과의 언약식에서 강재섭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통합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체 투표율, 특히 20~30대 젊은 유권자층의 표를 끌어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리서치 플러스 임상열 대표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요동치고 있다. 이 때문에 선거 당일 민주당 득표는 생각보다 많을 수도, 훨씬 적을 수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로 답한 부동층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얘기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층이 20~30% 선으로 나오는데 실제 무응답층은 5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50% 초반의 예상 투표율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또 다른 변수다. 민주당으로서는 부동층을 흡수해 선거 당일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의 경우엔 비례대표를 포함해 각각 50석과 20석이 목표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선 각기 다른 전망이 나온다. 충청권 24석 중 20~22석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로 충청권 공략을 노리고 있는 자유선진당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자유선진당보다 친박연대가 이번 총선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길리서치의 홍형식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가 있는 당이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이회창 총재는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자유선진당의 ‘한계’를 설명했다. 리서치 플러스의 임상열 대표는 “충남에서는 이회창, 심대평 두 인물의 활약으로 10석 이상 가능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충청지역 목표치인 22석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견제세력으로 급부상한 친박연대가 과연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친박연대의 목표 의석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석이다. 리서치 플러스 임상열 대표는 “표는 좀 얻을 수 있겠지만 실제 당선되는 의석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의 위기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한나라당 지지자들 중 박근혜 전 대표를 정서적으로 지원해도 실제 표를 던지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인 것. 임 대표는 “현재로서는 10석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친박연대가 그 자체로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길리서치의 홍형식 대표는 “친박연대의 등장으로 비한나라당 전선이 극대화되었다. 그 성과가 친박연대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총선 이후’로 시선이 이어지는 대목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총선이라는 정치적 게임만을 놓고 보았을 때 강 대표의 ‘복당 불허’ 발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이미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며 이를 복당시키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친박연대를 견제하고자 하는 강 대표의 맞불 발언이 오히려 친박연대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총선 득표율을 떠나 친박연대라는 브랜드만으로 한나라당에게 타격을 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친박연대’라는 당명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박근혜’라는 이름을 이용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친박연대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보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공천이 부당했다’는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들 탈당파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기간 동안 한나라당은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한나라당의 위기 돌파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대통령의 직접적인 제스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동시에 당내에서는 ‘친박 달래기’에 힘써야 한다는 분석이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당내 갈등뿐 아니라 정권 초반에 빚어진 여러 잡음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며 “또한 이것은 ‘대통령의 입’으로 해야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배 팀장은 “당내에서는 박근혜 측 인사들의 복당문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일단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대표 역시 ‘청와대 변수’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홍 대표는 “통합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인사 잡음 문제, 대운하 논란을 끝까지 이슈로 끌고 갈 것이다. 대운하 문제는 한나라당이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총선공약에서 대운하를 배제한 것은 실수였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먼저 했어야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가 남은 기간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여론은 이번 총선에서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할까. 끝으로 한길리서치 홍형식 대표는 “요즘의 여론은 과거 ‘3김 시대’와는 달리 지역주의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새로운 정보에 의해 솔직하고 똑똑한 판단을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아직도 여론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오만한 자세를 보일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