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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아 래는 1962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구 출해낸 유대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쉰들러의 생전 모습. | ||
하지만 쉰들러의 미망인이었던 에밀리에 쉰들러에게는 이 모두가 ‘속 빈 강정’이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정작 영화는 성공했지만 가족이었던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쉰들러’라는 이름 석자를 통해 미망인이었던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영화가 히트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잠시 얼굴을 비추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쉰들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분명 존경의 대상이자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록 영화는 성공하고 죽은 남편은 뒤늦게나마 명예를 얻었지만 말년을 아르헨티나에서 외롭게 보냈던 쉰들러 부인은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영화제작사였던 유니버설사가 그녀에게 수익의 일부를 제공한다는 계약서의 내용을 무시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쉰들러와 영화사간에 이루어졌던 계약은 쉰들러가 살아 있었던 지난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쉰들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판권을 MGM사에 넘겼으며, 그 대가로 2만5천달러(약 1억1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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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쉰들러 부인과 로젠버그. | ||
하지만 당시 MGM사는 <닥터 지바고>의 제작에 여념이 없던 터라 비록 계약은 체결했지만 쉰들러의 스토리를 영화화하는 계획은 뒤로 미루고 말았다.
그러다 지난 1982년 유니버설사가 MGM사로부터 쉰들러 이야기의 판권을 사들이면서 영화 제작의 가닥이 새롭게 잡히기 시작했다. 당시 유니버설사의 대변인이었던 아이어빙 글로빈은 에밀리씨에게 재차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시켜 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되었던 1993년만 하더라도 글로빈은 그녀에게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영화 수익의 5%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6년을 묵묵히 기다렸지만 정작 약속한 내용은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았다. 지난 1999년 유니버설사측에서 보내온 팩스의 내용에 의하면 “비록 영화가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영화사측에서 주장하는 적자액은 약 1천1백만달러(약 5백20억원). 영화 제작비나 광고비 등이 워낙 막대했기 때문에 결국 ‘밑진 장사’일 수 밖에 없었으며, 때문에 그녀에게 약속했던 배당금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영화사측의 입장이었다.
반면 쉰들러 부인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서전을 대필했던 상속인인 에리카 로젠버그가 추정한 결과 쉰들러 부인이 영화사로부터 받아야 할 금액은 6백만달러(약 2백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리하게 진행된 치졸한 싸움의 결말을 보지 못한 채 그녀는 결국 94세의 나이로 지난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를 대신해 계속 싸움을 벌이고 있는 로젠버그는 현재 만일 유니버설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을 경우 마지막 방법으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