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황금상권’ 토종기업 내보내고 일본기업 유치해 갈등 더욱 확산
명동에 위치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회관. 박정훈 기자
[일요신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자신의 회관 상가 임차인을 상대로 일방적인 명도 요구와 손해배상소송 등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네스코 측은 불법전대 등 임차계약상의 문제를 이유로 기존 임차인들에게 회관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상가 임차인들은 유네스코가 계약만료 전에 다른 임차인과 계약을 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회관에서 내쫓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자 유네스코는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공방으로 기존 임차인에 맞서고 있다. 더구나 새로운 계약임차주가 일본기업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양측의 갈등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유네스코 회관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명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이다. 국내외 기업들의 각축장으로 매출이나 유동인구를 떠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지역이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회관 역시 명동 상권에서도 황금부지로 꼽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회관 인근은 명동예술극장과 중앙로 입구 등 각종 화장품 가게와 업체 대리점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외국관광객들이 붐비는 장소로 유명하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1950년 6·25 전쟁이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활동을 촉진하고 유네스코와 대한민국 정부, 교육·과학·문화 등 관련 분야 전문기관·단체 간의 연계·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설립됐다. 1967년 명동 회관을 준공해 회관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이런 유네스코 회관에서 임대사업을 둘러싼 분쟁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임차인들은 유네스코가 ‘갑질’ 임대사업을 벌인 것이라며 계약만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점유한 채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언뜻 보기엔 일반적인 임대계약 갈등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갈등과 의혹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유네스코 회관에 임차 중인 A 씨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측이 부동산컨설팅 업체를 끼고 기존 임차인들을 쫓아내려고 한 것이 갈등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그는 “계약만료가 되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내용증명을 보내 계약종료를 알리고 명도합의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다”면서 “인테리어공사부터 시작해 상가점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수년간의 시간과 돈들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 씨는 “임대차계약 종료를 앞두고 회관 측과 직접 만난 사실이 없다. 당연히 재계약하는 줄 알고 있었다. 만약 임차료 인상문제였다면, 계속 장사를 하기 위해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유네스코 회관에는 화장품 점포 4곳이 성업 중이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3월경 점포 3곳에 대한 명도소송을 진행했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2016년 1월 31일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가계약 형식으로 2016년 5월말까지 임대차계약이 연장된 상황이었으며, 재계약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불만을 느낀 점포 업주들이 임대차계약을 문제 삼자, 유네스코가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유네스코는 기존 임차인들이 불법 전대와 전전대를 일삼았다는 이유 등으로 명도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1월 말 1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임차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네스코 측의 주장대로 전대로 임차 중이었던 것은 맞지만, 2012년부터 최근까지 전대계약 사실을 유네스코가 알고 있었음에도 임대차 갈등이 빚어지자 문제삼고 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전대계약 사실 여부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전대 사실은 2016년 소송 진행 과정인 3월이나 4월경 알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공익기관이 불법전대를 해 임대사업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나. 기존 임차인들이 간판까지 제멋대로 설치하는 등 정비가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회관 임차점포 4곳 중 2곳이 전대와 전전대 형식의 임대차 계약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상태다. 임차인들은 “명동 등 유명 상권에서는 전대계약은 공공연한 것이다. 문제의 소지를 인지한 사람도 있지만, 명동에서도 황금부지로 불리는 상권을 놓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네스코 측이 불법전대를 운운하며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최초 전대계약 당시에 유네스코 측이 이를 묵인해주었다. 유네스코 관리직원 역시 전대계약 관계 등을 파악한 상태였다. 전대가 문제였다면 기존 점포 영업주들에게 직거래로 재계약 여부를 타진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차인인 B 씨는 “재계약 여부는 둘째치고 임대차 종료 몇 달 전부터 점포 임차인들을 내쫓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유네스코가 계약만료인 2016년 1월보다 4~5개월 전인 2015년 9월, 기존 임차인 계약 기간 중 이미 새로운 업주와 계약을 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전현직 직원 간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전임 직원이 관여했던 임차인들을 모두 물갈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유네스코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기존 개인 부동산업자들의 일처리가 문제됐기 때문에 법인 부동산회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예전부터 전대나 전전대 등 개인들이 엮여 있어 문제가 많았다. 간판설치 문제도 용역보고서를 통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차인들은 “자신들도 법인 부동산회사를 통해 계약을 할 수 있었으며 임대료, 보증금 인상 등도 모두 감안하고 있었다. 결국 계약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 부동산컨설팅 회사와 함께 새로운 임차인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전대는 법적소송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오히려 부동산업체와 또 다른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통상 명동의 주요상권 확보는 부동산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에 웃돈이 오가거나 임대주와 부동산업체 간 수수료 등 거래 특혜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곳은 돈만 있다고 임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새 임차업체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기존 임차인들은 명동 한복판에 한국을 대표하는 공익기관과 관광명소 자리에 국내 토종 중소기업들을 내쫓고 100% 일본기업인 ‘D 기업’ 점포를 불러들인 것은 국가이미지에도 걸맞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유네스코는 일본기업은 맞지만, 전범기업이나 우익단체를 지원하는 기업이 아닌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유네스코는 기존 임차인에게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소송도 진행 중이다. 기관이 대응하는 만큼 소송을 취하하거나 합의를 볼 의사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임대차계약에 대한 조정이나 번복도 불가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반면, 임차인들은 수년간 들어간 시설비와 광고비는 물론 수십억 원대의 배상비까지 큰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B 씨는 “우리나라에서 임차분쟁은 결국 건물 주인이 승리하게 되어 있지 않나. 제일 속상한 점은 우리에게 재계약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공익기관이 이 정도면 다른 임대사업주들은 어떻겠느냐”며 씁쓸해 했다. 이어 “임차인의 생존권이 박탈되는 과정에서 유네스코라는 국가 기관이 힘없는 개인을 길거리로 내몰며 어떠한 얘기도 들으려 하지 않은 채 법적 절차만 계속 진행하고 있어 강제집행을 당해 쫓겨날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의 약자보호 정책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유네스코 회관 상가 임차 소송은 계약이 만료된 기존 임차인의 항소로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다. 명도 합의가 된 업주도 점포를 철수하지 않고 영업 중인 상태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기존 임차인의 피해는 더 불어나게 된다. 특히, 최근 ‘사드 보복’에 따른 중국 관광객 감소로 인한 매출 악화까지 더해져 임차인들의 고통은 심각한 상황이다. 강제집행이 선고되면 이들은 모두 거리로 내쫓기게 된다.
한편, 유네스코와 기존 임차인의 갈등은 관할기관인 교육부와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상황을 파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차인들이 유네스코와 국회에 탄원서 및 민원 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