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발목 거는 ‘현대판 연좌제’ 징하다 징해!
대중은 이미 이와 비슷한 논란을 본 적이 있다. 강동원에 앞서 배우 이지아 역시 조상의 친일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고, 문근영을 둘러싼 ‘빨치산 논란’도 뜨거웠다. 한효주는 군장교로 복무하던 동생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입방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연좌제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가족이나 지인의 잘못에 대해 그 사안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주변인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연좌제는 법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 하지만 연예계에는 여론에 의한 단죄가 횡행한다. 소위 ‘국민정서법’에 의거해 가족이나 지인의 잘못으로 인해 고개 숙이는 일이 적잖다.
먼저 강동원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달 28일 한 영화전문사이트에서 ‘3·1절 기획 비켜갔거나 혹은 지켜냈거나’라는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은 강동원, 이지아, 고윤을 친일파의 후손으로 분류하고 배성우, 김지석 등은 독립군의 후손이라 썼다. 이 글에 따르면 강동원의 외증조부인 이종만이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라는 것. 특히 강동원이 2007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외증조부를 거론하며 “예술이었다”라고 말해 외증조부를 미화시켰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 글이 SNS 상에서 화제를 모으자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이 사이트에 게시물 삭제를 요청했고, 해당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한 네티즌은 “3·1 특집 기사 링크한 것뿐인데 명예훼손이래. 원문 작성자 맥스무비한테 항의해야지 나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반박했다.
친일파 후손 논란에 휩싸인 강동원. 영화 ‘마스터’ 홍보 스틸컷.
이에 YG엔터테인먼트 측은 “문제의 게시물의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대리인 자격으로 대응하게 됐다. 그러나 삭제 요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미 성난 대중은 침묵하고 있던 강동원에게 화살을 돌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 매체가 이종만을 친일인명사전에 포함시킨 민족문제연구소 측의 말을 빌려 이종만이 일본군에 전쟁 위문품 등을 보냈고,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었다는 이력을 들추며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다.
결국 강동원은 소속사를 통해 직접 입장을 밝히며 “어린 시절부터 저는 외증조부의 미담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외할머니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외증조부에 대한 미담을 자연스레 받아 들여왔고, 2007년 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그 분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고개 숙였다.
강동원의 빠른 해명이 없었고, 진위 여부를 밝히기 전 게시물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한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으며 외증조부의 친일을 미화하려 했다는 해석은 지나치다. 그가 집안 어른들에게 조상에 대해 배우며 친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강동원은 “이번 일이 혼란스러웠고, 충격도 컸습니다. 더욱이 가족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고, 또 관련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제 외증조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지아 역시 지난 2011년 한 네티즌이 이지아의 조부가 친일파 사전에 등재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이 일었다. 그의 조부인 김순흥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국방헌금을 납부하고 친일단체에서도 활동했다는 것.
이에 대해 이지아의 사촌이라 주장하는 또 다른 네티즌이 “이지아 할아버지, 내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친일파로 몰리게 됐다. 돈은 원래 일제시대 전부터 많이 있었고 일제시대 때에는 일본 정부에 정치 자금을 강제로 추징당한 것뿐인데 일제시대 때 세금 많이 내면 다 친일파가 되나 보다”라는 글을 올린 뒤 이 사건은 조금씩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이렇듯 대중은 잘 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배우가 활동을 시작하면 다시금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한효주는 그의 동생이 지난 2013년 군대 내 가혹행위로 인해 자살한 김 아무개 일병 사건의 관련자라고 지목되며 곤욕을 치렀다. 이에 대해 한효주는 공식적인 사과나 언급을 한 적이 없다. 때문에 한효주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가 공개될 때면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네티즌의 해명 요구가 빗발쳤고 영화 관련 게시물에는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가족이라고 하지만 한효주의 동생은 이미 성인이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한효주가 해명할 이유는 없다. 한효주가 직접 거론하면 숱한 기사들이 쏟아지며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가족들의 일까지 스타에게 일일이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현대판 연좌제”라고 꼬집었다.
2008년에는 문근영이 ‘빨치산 논란’으로 여론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당시 한 군사평론가가 문근영의 조부의 이력을 거론하며 ‘배우 문근영은 빨치산 슬하에서 자랐다’, ‘문근영은 빨치산 선전용’이란 제목의 글을 연이어 썼다. 당시 문근영은 소속사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반박하는 동시에 계속된 선행을 통해 자신의 탄탄한 이미지를 쌓았다.
또 다른 연예계 인사는 “연예인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의혹이 불거졌을 때, 진위 여부를 가리기 전 이미지가 이미 만신창이가 되곤 한다. 결국 정확하고 빠른 대처를 통해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이 순서”라며 “강동원의 경우 이런 대처가 다소 미흡했기 때문에 ‘연좌제는 안된다’는 반응 속에서도 질타를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