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 ‘채 상병 특검’ 카드 등 내밀 듯…의제 없이 자율 대화 ‘빈손’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4월 29일 오후 2시 차담회 형식으로 열린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26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대표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과, 의제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신속하게 만나겠다는 이 대표의 뜻에 따라 합의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영수회담은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이후 4월 19일 오후 3시 30분 이 대표에 직접 전화를 걸어 “다음주 용산에서 만나자”고 먼저 제안하며 시작됐다. 민주당도 “국가적 과제와 민생 어려움이 많아 빠른 시일 내 만나자”고 호응했다.
하지만 영수회담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4월 22일 예정한 준비회동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일방적 통보로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에서는 회담 실무책임자인 정무수석이 한오섭 수석에서 홍철호 전 의원으로 교체되면서 불가피하게 연기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다음날 홍철호 신임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천준호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이 준비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의제와 일정 등에 의견 차이를 보이며 양측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4월 25일 열린 2차 준비회동 역시 사실상 빈손으로 끝이 났다. 대통령실은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의 회담”을 제안했고, 민주당은 “대통령실이 민주당이 제시한 의제에 검토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사전 의제 조율로 실무회동이 평행선을 달리며 약속한 기한 내 영수회담이 이뤄지는 게 어려워지자 이재명 대표가 한 수 양보하며 결단을 내렸다. 이 대표는 4월 26일 최고위에서 “오랜만에 하는 영수회담이라 의제도 좀 정리하고, 미리 사전조율도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녹록지 않은 것 같다”며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 이에 따라 양측이 이날 3차 회동을 갖고, 29일로 영수회담 일정을 확정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많다.
우선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윤 대통령은 5일 만인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요지는 ‘내 국정방향은 옳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국민들이 오해했다’였다. 그런데 불과 3일 만에 입장을 바꿔 야당과 협력하겠다며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그 사이 심각한 반성이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영수회담을 결심한 이유로 야권에서는 국정수행 지지율 급락을 꼽는다. 4월 19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16~18일 실시)를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23%로,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부정평가 역시 68%로 취임 후 최고치였다(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앞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 전화 건 시간을 보면 오후 3시 30분이다. 한국갤럽 결과가 나오고 지지율 폭락 문제가 제기됐을 때다. 이대로 지지율 하락을 지켜보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영수회담 카드를 즉흥적으로 꺼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대통령실 내부에서 벌어진 혼선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과거 청와대에서 근무한 바 있는 야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결정은 마지막 방점이다. 따라서 영수회담같이 중요한 사안은 사전에 물밑에서 야당과 어느 정도 조율을 거친 뒤 발표한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일정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협의 과정에서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의제를 정하지 않은 만남이라 두 사람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특히 민주당이 요구한 의제들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받기 어려운 것들이다. 앞서 민주당은 영수회담 의제로 ‘3+1 카드’를 내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사과’ ‘채 상병 특검 수용’ ‘거부권 행사 자제’ 등 3개 사안과 함께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13조 원 편성 등이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은 윤 대통령에게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정도에 따라 대통령 탄핵까지 갈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어떻게 채 상병 특검을 받겠느냐. 그러니 의제를 올리지도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 지급은 이 대표의 지난 총선 공약이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부정적 방침을 유지해왔다.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며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요구를 수용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연이어 내놨다.
반대로 윤 대통령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이 대표와 신임 국무총리 인선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총리는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이 “후임 총리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 대표와의 회담 결과를 지켜보고 개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총리를 교체하려면 야당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는 주고받는 것이다. 총리 임명동의를 받으려면 윤 대통령도 하나를 내줘야 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채 상병 특검을 카드로 내놓지 않겠느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나서 악수하는 사진에만 의미를 두는 회동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거대 야당’의 수장으로 제22대 국회에서 정부여당을 어떻게 상대할지 보여줄 예고편과 같은 성격이기 때문. 앞서 야권 관계자는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와 제대로 싸우라고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그런데 영수회담에서 의미 없는 대화만 오간다면 국민들이 실망하고 돌아설 수 있다”며 “이 대표 입장에서는 의제가 정해지지 않았어도 윤 대통령을 향해 공세를 펼쳐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