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여성 진술 오락가락, 신빙성 떨어져 불법촬영만 인정…출소한 남성의 무고 고소는 불송치 결정
2019년 11월 경찰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터졌다. 당시 한 경찰이 동료 경찰과의 성관계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했다는 의혹이 돌았는데, 어느 정도 실체가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다. 해당 보도 약 10일 뒤 혐의를 받는 남성 경찰 A 씨를 상대로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피해자이자 동료였던 여성 경찰 B 씨는 ‘A 씨에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강간 및 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B 씨 진술에 따라 기소했고, 1심에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2020년 5월 1심에서 B 씨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징역 3년 6월이 선고됐고, A 씨는 항소했다. 2020년 11월 2심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A 씨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강간, 명예훼손 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최근 A 씨는 B 씨를 상대로 무고죄 고소했고,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려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A 씨는 “내가 잘못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주장하긴 어렵지만, 성관계 동영상을 SNS에 유포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강간은 절대 아니다”라면서 항변했다. 관련 사건 고소장과 수사기관 진술 내용,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대화 내용, 관련자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민감한 사건인 만큼 인적 사항은 최소화해 기재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19년에 떠돈 한 소문이다. 지방경찰청 내에서 누군가 동료 경찰끼리 잠자리를 했고, 둘이 관계를 맺는 영상이 있다는 얘기였다. 특히 어떤 사람은 ‘온라인에 올라온 걸 봤다’,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됐다’ 등의 얘기도 퍼졌다. 이 내용이 지방경찰청장 귀에 들어갈 정도로 퍼졌고 언론 보도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수사가 시작되면서 구체적인 인물과 정황이 파악된다.
동료 경찰인 A 씨와 B 씨가 성관계를 했고, 관계 전후 A 씨가 돌아누워 있는 B 씨 사진을 찍었다. A 씨는 몇 개월 뒤 동료 경찰에게 ‘내가 B 씨와 관계했다’면서 이 사진을 자랑처럼 보여줬다고 한다. 이 얘기가 와전돼 퍼지면서 성관계 영상, SNS 유포 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당시 사진을 봤던 경찰 진술 등을 종합하면 해당 사진은 온라인상에서 전송한 게 아닌 음식점 등에서 휴대전화를 잠깐 보여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경찰은 ‘어두컴컴해서 식별이 안 됐다. 사람 형체만 보일 뿐 누구 사진인지도 구별이 불가능해 보였다’면서 ‘두 번째 사진은 침대에 누워 있는 뒷모습이었고, 상의는 입고 있고 하의는 옷을 입었는지, 이불을 덮었는지 허벅지 쪽이 보였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사진이 촬영된 성관계는 2018년 8월 경찰 내부 회식 이후 벌어졌다. A 씨와 B 씨는 같은 팀이었고, B 씨가 선배지만 A 씨는 B 씨를 ‘누나’, B 씨는 A 씨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였다. 이날 회식은 1차, 2차, 3차로 자리를 옮길 정도로 길어졌고 결국 A 씨, B 씨 외 한 명이 남아 3명이 노래방까지 가게 된다. 이들이 노래방에 머문 시간은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A 씨는 술에 취해 먼저 가겠다고 택시를 탔고, B 씨와 나머지 한 명도 각자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이때 A 씨가 B 씨에게 전화를 걸고 이들은 B 씨 원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A 씨는 “술 한 잔 더 하고 싶다고 했더니, B 씨가 ‘그럼 우리 집에서 먹자’고 해서 가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B 씨는 경찰 진술 등에서 ‘A 씨가 누나 집에 가는 중이니까 편하게 누나 집에서 먹자고 했고, A 씨가 직장 내 갈등이 있어 그 얘기를 상담하기 위해 수락했다’고 말했다.
둘은 편의점에서 라면 등을 사서 원룸으로 들어갔고, 소주를 어느 정도 마셨다. 이때부터 양측 진술 내용이 엇갈린다. A 씨는 사건 초기 ‘잘 기억이 안 난다’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돼 정상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반면 B 씨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 씨에게 집으로 가라고 했더니 누나 같으면 집에 가겠느냐면서 나가지 않았다. 빨리 가라는 의미에서 방에 불을 끄고, 입고 있던 청바지 차림 그대로 누웠다. 그때 A 씨가 침대에 다가와 안으려고 하자 너 미쳤냐며 밀었다. 실랑이하다 A 씨가 내 옷을 벗겼고 강제로 삽입되는 느낌이 들어 울면서 싫다고 했다. 속옷을 입고 이불을 덮은 후 자려고 하는데, A 씨가 이불을 확 걷어냈다. 이때 나를 향해 휴대전화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그때 찍힌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이때 이후로도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2019년 6월 또 한 번의 사건이 발생한다. A 씨가 한 맥줏집에서 동기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오랜만에 동료인 B 씨를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A 씨가 B 씨에게 전화하자, B 씨가 친구 C 씨와 함께 술자리에 합석했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모텔에서 같이 투숙하게 된다. 이 모텔 투숙을 두고 사건 초기 A 씨, B 씨는 모두 ‘모텔에서 성관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2019년 11월 사진 유포 사건이 보도되면서 B 씨는 최초 성관계였던 원룸 사건을 강간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강간, 성폭력 방지 특별법(카메라를 이용한 범죄) 위반 이외에도 모텔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에게 성관계했다고 말해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됐다. B 씨는 ‘경찰이 된 지 얼마 안 됐고,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조용히 지나갈 것으로 생각해 덮으려고 했다. 경찰이 성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공감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등 당시 심경을 밝혔다.
강간 혐의 등으로 구속된 A 씨는 진술을 바꾸기 시작해 당시 성관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또 A 씨는 진술을 바꿔 모텔에서도 성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동료 경찰에게 성관계 상황을 말하기 민망해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렸다. 음란물 유포가 아닌 강간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해 소극적이었다’ ‘모텔에서도 성관계를 가졌다고 말하면 이것도 강간으로 주장할 수 있어서 허위 진술했다’고 말했다. A 씨는 거짓말 탐지기를 요청했고 합의로 했던 성관계라고 답해 ‘진실’이 나왔다. B 씨는 거짓말 탐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A 씨는 1심에서 B 씨 주장에 대해 ‘원룸 사건 당시 B 씨가 이혼 소송 중이었지만,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또 수사 기관 조사 등에서 해당 시기 남자 친구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에 비춰볼 때 A 씨와 합의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면 도덕적 비난이나 경찰 품위 손상으로 징계처분까지 받을 수 있어 성관계가 강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강간이라면 성관계 이후 B 씨가 문제 삼지 않았고 이후에도 대화하는 등 친하게 지냈으며 문제 사건 이후에도 모텔에 간 사실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사건은 A 씨와 B 씨 진술 가운데 누구 말이 신빙성이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에서는 B 씨가 주장한 강간, 성폭력 방지 특별법 위반, 명예훼손 등이 대부분 인정되면서 3년 6개월형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B 씨가 허위 진술을 할 경우 진위가 밝혀져 무고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거짓 진술을 할 리 없다”면서 “B 씨는 ‘술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면 A 씨가 무슨 말을 떠벌릴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럴수록 태연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고 술에 만취해 원해서 모텔에 들어간 것도 아니라는 말에 비춰보면 모텔에 투숙한 사정도 이해가 간다”고 설명했다.
2심에서는 1심과 양상이 달라졌다. 여기에는 B 씨 휴대전화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A 씨는 최초 보도가 나왔을 때, ‘사진을 없애면 된다’는 생각에 휴대 전화를 바꿔서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B 씨와의 대화 내용이 없어졌다. B 씨는 ‘원룸 사건 이후 A 씨와 관계가 서먹해졌다’ 등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B 씨는 경찰의 휴대전화 제출 요청을 거부했다. B 씨는 A 씨가 구속된 이후 2019년 11월 A 씨의 이름과 메신저 대화 내용을 삭제한 뒤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1심에서는 A 씨와 B 씨 대화를 확보할 수 없어 재판부는 대부분 진술에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반면 2심에서는 A 씨 측이 수사 기록 열람 등사 신청을 통해 B 씨 카카오톡 메시지를 제출받았고 이 중에서 A 씨와의 대화 내용을 찾아 증거가 될 수 있었다.
해당 대화 내용을 확인한 2심 재판부는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사적인 연락을 지속하고, B 씨는 A 씨와의 모임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19년 6월 저녁 A 씨와 B 씨가 술자리를 갖고, 이후 모텔에도 가는 등 매우 친밀하고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됐다’고 판단했다. 또한 B 씨는 A 씨와 생일에 선물을 나누기도 했다.
2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모텔을 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 주목했다. 재판부가 다시 파악하게 된 경위를 보면 A 씨 일행과 B 씨 일행이 만난 뒤 1시간쯤 지나서 자리가 파하게 됐다. B 씨와 함께 온 C 씨는 B 씨와 함께 집에 돌아가려고 했으나 B 씨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B 씨가 A 씨에게 연락해 따로 만났다. B 씨는 A 씨에게 ‘A 씨 일행이 C 씨를 맡아 달라’고 말했다. 이후 B 씨와 A 씨는 술집 근처 모텔로 들어가게 됐다. 다음 날 아침 이들은 모텔에서 나와 같이 편의점에 들렀고 B 씨는 숙취해소 음료를 1+1로 사서 나눠 마셨다.
2심 재판부는 B 씨가 지속해서 진술을 번복한 것도 신빙성을 떨어트린다고 봤다. 재판부는 B 씨가 ‘만취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모텔에는 업혀서 갈 정도였다’고 말이 바뀌었고, 원룸에서는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반항했다’고 했다가 ‘편한 반바지로 갈아입고 있었다’고 진술 내용이 바뀌었다고 봤다. 또한 재판부는 ‘모텔에서 A 씨가 어떻게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당시 대화 내용이 밝혀지면서 ‘잘 기억나지 않아서 그렇게 답한 것’이라고 바뀌었고, B 씨는 사건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났는데 증거 기록에 따라 진술 내용이 구체화하는 등 전체적으로 진술이 오락가락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2심에서는 A 씨 강간,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이 무죄로 바뀌었다. 2심 재판부는 성폭력 특별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A 씨는 동료 경찰관인 B 씨 사진을 무단으로 촬영해, 이 사진을 다른 경찰관에게 보여주면서 성관계 사실을 자랑삼아 과시해 B 씨 인격과 사회적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면서 “B 씨는 A 씨 처벌을 원하고 있고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뿐 아니라 경찰 조직 전체 품위가 훼손됐다. A 씨는 수사 초기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폐기하는 등 행동했다”면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A 씨는 “내가 너무나 크게 잘못했고 뼈저리게 반성 중이지만 강간은 하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당시 나이 스물네 살로 세상 물정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A 씨는 파면됐고, 2021년 5월 출소했다. 2023년 7월 A 씨는 B 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반면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이 사건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됐다’면서 민사소송을 진행했고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내려졌다.
2023년 11월 경찰은 무고 혐의에 대해 불송치했다. 경찰은 ‘신고 사실에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 허위 부분이 신고한 사실을 과장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무고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재판부는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지, 전체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제출했다. 자신이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하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B 씨도 처벌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해졌다.
한편, 강서경 변호사는 "무고죄는 사실을 과장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 성립되지 않으나,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범죄사실이 인정되도록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경우 무고죄가 성립된다. 그 점에서 이 사건은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