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상권 특검팀 덕분에 호황 누려…편의점 베스트 메뉴는 커피·담배
3월 7일 기자가 찾아간 D 빌딩에는 이사 작업이 한창이었다. 13, 14층에 위치한 기자실은 텅텅 빈 상태였다. 몇몇 관계자들만 남아 철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각 언론사 이름표가 나뒹굴고 있었다. 흩어진 서류들은 당시 숨 가쁜 현장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7일 수사 활동이 종료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치동 사무실은 한창 이사 중이다. 기자실에 있던 의자가 밖으로 옮겨지고 있다. 2017.03.07 ⓒ일요신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던 증인들이 이용했던, 지금은 구속됐지만 한 때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이용했던 3층 엘리베이터는 현재 건물 내 의자와 책상 등 가구를 옮기느라 쉴 틈이 없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구치소에 수용된 구속 피의자들은 특검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 차량을 타고 특검 사무실로 왔고, 호송 차량이 주차된 길의 뒷편에 위치한 편의점도 뉴스 화면에 자주 잡혀 보는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일요신문>은 그 편의점을 찾았다. 특검 수사 기간 동안 편의점은 특검 관계자들과 취재진들 그리고 청원 경찰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판매된 품목은 커피와 담배였다고 한다. 그곳을 방문한 시민들이 편의점 직원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여기가 바로 거기(특검 사무실)에요?”였다. 취재진들에겐 쉼터, 행인들에겐 ‘성지순례지’가 된 덕분에 편의점의 매출은 30% 가량 상승했다는 후문이다.
D 빌딩과 약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페는 기자들이 ‘뻗치기(장시간 대기 취재)’ 하기 좋은 장소였다. 이 카페는 편의점과 함께 호황을 누렸던 곳이다. 사진 기자들과 취재 기자들은 취재가 끝난 뒤 이 카페로 들어가 마감을 했고, 자리가 부족한 탓에 작은 테이블 하나를 두세 사람이 나눠 쓰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카페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의 매출도 30% 정도 올랐다고 한다.
사무실 인근에 위치한 A 식당은 특검 관계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점심시간보다는 저녁 시간인 오후 6~7시 쯤에 방문했고, 7000원짜리 설렁탕을 주로 주문했다. 결제는 특검 장부로 이뤄졌고, ‘1인 6000원’이라는 금액 제한 때문에 추가 금액 1000원은 각자의 여비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특검팀은 인근 김밥집에서 점심 식사 메뉴로 간편한 김밥을 자주 배달 주문하기도 했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모여 있던 기자실은 특검팀 수사 종료와 함께 철거되고 있었다. 2017.03.07 ⓒ일요신문
D 빌딩이 강남의 상징인 테헤란로에 위치한 만큼 그 일대는 평소에도 인파가 끊이질 않았지만, 근처의 식당 관계자들은 특검 수사 기간(90일) 동안 동네가 더욱 시끌벅적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설렁탕집과 김밥집은 물론 인근 여러 식당들은 대체로 10% 이상 매출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검팀 때문에 불황을 누린 곳도 있었다. 바로 부동산이다. 3월 이사 철이 되면 북적여야 할 부동산 중개업체에 세입자들의 발길이 부쩍 줄었다. 특검 사무실 근처에서 집회가 열린 탓이다. 특검 수사에 속도가 붙자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비롯한 보수단체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치동에 모여들었다. 밤낮 할 것 없이 집회를 열었고 “박근혜 대통령님 만세”를 외쳤다. 지난 6일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집회는 좀 더 거칠어지면서 폭언과 욕설이 오갔고, 의경 300여 명이 배치됐다. 대치동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특검 사무실 근처 식당과 카페들이 가장 ‘흥’했던 날은 지난 2월 17일,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던 날이었다. 수많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수많은 취재진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고 그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매머드급 특검’이 입주한 D 빌딩은 미르·K스포츠 재단과 최순실 씨의 자택 등 ‘국정농단’의 ‘핫플레이스’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특검팀이 자리 잡은 이 사무실은 솔로몬저축은행이 2008년 매입했던 곳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이 여기에 본점을 두고 영업을 했지만 2013년 파산했고, 지난해 12월 특검팀이 입주하기 전까지 사무실은 약 4년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는 특검팀 덕분에 D 빌딩도 생기를 찾은 듯 보였다. 근처 부동산 관계자는 “솔로몬이 안 좋게 나가면서 괜히 들어오는 회사도 없었는데 특검팀이 들어와서 이제는 이미지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D 빌딩의 관리자도 “솔로몬 나가고 난 뒤 특검팀이 들어와서 이 빌딩도 이름을 알리고 다행이다”라고 전했다.
28일 자정에 수사 활동이 종료되고 공소유지팀으로 축소 재편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치동 사무실 엘리베이터. 2017.3.1 ⓒ연합뉴스
조용했던 D 빌딩에 특검팀이 들어오며 좌충우돌 사고도 잦았다. 빌딩에는 특검팀 관계자가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와 취재진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분리돼 있는데, 특검팀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특별검사보 등 10여 명이 갇힌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소방서 출동으로 30여 분만에 구조작업을 마쳤지만, 이후에도 취재진들이 이용하는 엘레베이터가 수시로 고장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집회를 위해 빌딩을 찾은 보수단체들이 화장실 이용을 요구했고, 이를 제지하는 관리자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자주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일반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보통의 사무실들과 달리, 24시간 ‘풀 가동’하는 특검팀은 빌딩에 전기세를 추가로 더 부담했다.
박영수 특검은 특검이 출범하는 그 날부터 물 걱정 불 걱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수사가 정치적인 사안에서 분리될 수 없는 만큼 특검팀에 앙심을 품은 사람이 방화 등 테러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해당 빌딩에 의경을 배치했던 수서경찰서도 방화를 제일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은 ‘특검 수사 기간이 끝나 매출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아쉽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매출이 떨어져서 아쉬운 게 아니라 수사가 연장되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A 식당 관계자는 “속 시원히 풀리지 않은 느낌이다. (수사를)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