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칼 빼들라’ 차기 권력 눈치 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인해 파면됐다. 지난해 12월 3일 우상호, 박지원, 노회찬 의원 등 의원 171명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이 234인의 찬성을 거쳐 탄핵심판이 청구된 지 석 달여 만이다. 탄핵소추안에 따르면 박 씨는 뇌물죄와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의 혐의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형사소출 면책특권을 내세워 계속된 특검과 검찰의 조사를 피해왔다.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온 박근혜 전 대통령. 일요신문DB
특검이 넘긴 국정농단 의혹 사건 수사결과 99쪽은 검찰 특수본으로 넘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특권인 형사소추 면책권을 잃었다. 일반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검찰이 어떤 식의 수사를 진행할지 시민들의 눈이 쏠리고 있다.
일단 검찰은 끝까지 간다는 입장이다. 다음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권가도에 가장 앞선 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거센 경선 도전 속에서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특검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우리도 이를 이어서 끝까지 수사에 매진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검찰은 일단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충성을 하기보다는 검찰 조직의 영속성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문 전 대표가 늘 검찰 개혁 등을 강조했는데 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수사가 미진하면 ‘검찰 개혁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영향력을 잃는 게 검찰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좌담회’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 권력기관 개혁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제어하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겠다”며 “세계에서 유례없이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일반적인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원칙적으로 기소권과 함께 기소와 공소유지를 위한 2차적·보충적 수사권만 갖도록 하겠다.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정권 초기부터 국민들의 염원에 힘입어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고 경찰 수사권 독립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법상 모든 수사의 최종 책임자는 검사다. 검사는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기소독점권 등을 가진다. 경찰 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는 형태다. 하지만 대부분 사건은 경찰이 처리하고 있어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돼 왔다. 검찰은 경찰권이 남용될 여지가 있고 형사소송 구조의 붕괴 등을 이유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 이유 뒤로 검찰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검찰의 영향력 약화’다. 검찰 측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빼앗기면 조직 전체가 반 토막 날 수밖에 없다. 수사권 독립을 외치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게 검찰은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박근혜 수사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특검 파견 검사 8명이 바로 해체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도 공소 유지 때문이다. 다만 수사가 언제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60일 안에 대선이 치러지는 탓이다.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 대선 이후에 수사가 진행된다는 예측이 무게를 얻는다. 검찰 내부에서도 대선 끝난 뒤 수사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과 특검의 대면 조사를 모두 거절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검찰의 소환 조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제수사권 발동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일반인 취급하며 수사하기엔 지지세력의 눈치를 어느 정도는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울지 여부와 공개 수사 계획, 구속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검찰 측은 ‘정치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검찰 측 관계자는 “일반인 신분이지만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수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모든 내용은 국격과 관계된 일이다. 강제수사권을 발동하고 공개적인 수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검찰 포토라인에 박근혜를 세울 것인지는 예단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영역을 넘어섰다”며 “정치의 영역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야가 합의해서 가장 좋은 방향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다만 대선이 바로 있어서 대선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는 전방위적인 수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계산기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내부에서도 인용 뒤 “바로 수사하자”는 의견과 “대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끝난 뒤 하자”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런 개혁 없이 현재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는 차기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 검찰 윗선은 머리가 많이 아플 것이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 검찰의 명운이 걸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화 없이 큰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게 검찰의 목표라면 지금이 가장 큰 풍랑일 수 있다”고 전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