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의원 | ||
이 같은 맥락의 풍설은 급격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동교동계가 집권 이후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갈등을 겪어왔지만 다시 공동운명체로 묶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집권은 반드시 막는다는 게 연결고리다.
명분은 ‘냉전세력의 집권 저지’다. 정몽준 신당과 당내 후단협 소속 의원들이 먼저 손을 잡으면 ‘핵심’은 나중에 들어간다. 그 핵심은 민주당의 본류인 동교동계다. 정권재창출 시나리오는 이미 짜여져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측에서도 “청와대가 이달 말쯤에 정몽준이 1위를 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흘리고 이어 동교동계가 움직일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작금의 민주당 내분사태가 동교동계와 청와대 핵심이 짜고 치는 판이라는 게 한나라당측 정세판단이다.
지난 16일 동교동계 모임은 거사설이 증폭되는 도화선이 됐다. 후단협 일부 인사들과 자민련, 이한동 전 총리측이 정 의원측과 4자연대 신당 창당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직후에 동교동계가 모였기 때문이다.
마포의 한 호텔에서 이뤄진 이날 모임은 동교동계 의원 9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갑 대표, 김옥두 문희상 최재승 설훈 배기선 배기운 윤철상 전갑길 의원 등이다.
한 대표가 제의한 모임에서 이들은 미묘한 원칙들에 대해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사수, 노무현 후보 지지를 재확인하면서도 다음달 초까지도 노 후보의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으면 ‘후보단일화’ 문제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 후보단일화 노선에 앞장서고 있는 한광옥 위원(왼쪽)과 정균환 총무 | ||
또 민주적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된 노 후보 지지에도 이견이 없었다. 또 민주당의 개혁 완성을 위해 정권재창출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달 초순을 넘겨서도 정권재창출이 불투명하면 노 후보와 함께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모임에는 후보단일화 노선에 상대적으로 앞장섰던 한광옥 최고위원과 정균환 원내총무는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단일화’ 문제가 마지막 선택으로 남아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후보단일화란 그 명칭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노 후보 사퇴-정 후보 옹립’을 뜻한다. 동교동계가 일각의 탈당설을 강력부인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정 의원쪽으로 몰아주기를 선택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한광옥 최고, 정균환 총무는 훨씬 더 적극적이다. 정 총무는 최근 “숨통을 막을 수는 없다. 누가 누구에게 말을 못하게 하나. 그런다고 말을 못하나. 서로 얘기를 하면서 컨센서스를 모아가자는 것 아니냐”며 당내 후보단일화 논의에 쐐기를 박은 노 후보측을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석 전 의원이 최근 민주당을 탈당, 정 의원측 신당인 ‘국민통합21’에 입당한 것을 두고도 “정 총무가 배후”라는 얘기가 돌았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당 개혁그룹 의원들이 ‘정풍운동’을 벌였을 때 타깃이 된 동교동계를 엄호했다. 이후 동교동계는 신·구파를 막론하고 개혁파 리더로 김 전 의원을 점찍었다. 김 전 의원이 지난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했던 것도 동교동계의 막강한 지원사격 덕분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동교동계의 선택은 호남, 특히 광주·전남지역 민심의 향배와 궤를 같이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광주·전남지역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을 보면 노 후보 대 정 의원의 지지율은 거의 50 대 50 수준이다. 그러나 추세를 보면 한때 노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던 이 지역 민심이 정 의원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 지난 1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한화갑 대표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대항마’를 바꿀 수 있다는 정서인 것이다. 동교동계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노후보가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면 노 후보를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노 후보는 원래 김영삼 전 대통령(YS)에 의해 13대 총선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동교동계 입장에서 ‘동지애’를 느낄 구석은 없다. 승산이 없으면 당연히 버리게 돼 있는 카드다. 더욱이 대선 이후 당권 경쟁에서도 노 후보는 동교동계 입장에서 껄끄러운 대상이다. 한화갑 대표가 노 후보측의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선대위-당’의 이원화를 고집하면서 재정권을 선대위에 넘겨주지 않는 점만 봐도 양측간 갈등의 깊이는 감지된다.
민주당 탈당사태가 불꽃이 붙기 시작했던 지난 달 중순 이뤄진 것으로 알져진 한화갑 대표-한광옥 최고위원-정균환 총무 등 동교동계 3자회동은 거사설의 진앙지다. 당시 회동에서 3자는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후보단일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해 합의했다는 후문이다. 노 후보가 최근 ‘후보단일화는 물건너갔다’고 수차례 공언하고 있지만 3자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동교동계의 세 축인 한 대표, 한 최고, 정 총무가 노 후보측 선대위에 참여하지 않고 당쪽에 ‘잔류’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해준다. 물론 당사자들은 즉각 회동사실 자체를 부인했지만 분위기는 미묘하다.
동교동계가 거사를 한다 해도 그 시기는 가급적 마지막 순간으로 늦춰질 공산이 크다. 정몽준 의원 입장에서 DJ의 직계부대인 동교동계가 합류할 경우 ‘DJ의 양자’라는 한나라당의 비난공세에 노출돼서 역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측도 세력 확대를 위해 의원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동교동계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동교동계가 대선 막판에 정 의원 지지를 선언할 경우 호남표는 일거에 정 의원쪽에 쏠릴 것이다. 그러나 소위 반DJ정서에 의한 역효과는 최소화할 수 있다. 동교동계가 지금처럼 노 후보를 적극 지지하지 않고 ‘중간적 태도’를 취하는 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떨쳐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민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