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제공자·소비자 모두 한국인 ‘부끄러움은 교민 몫’
이번에 불거진 사건으로 이런 일부 남성들의 행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 국가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의 ‘성매매 관광’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던 필리핀 현지 수사당국이 직접 성매매에 철퇴를 가했기 때문. 성매매를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이들은 현지 언론을 통해 실명이 전부 공개되고, 경찰 수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장면까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내에 전해졌다. “해외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들키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소위 ‘성매매꾼’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데 충분한 충격이었다.
지난 4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필리핀 성매매 관광 한국인 9명의 체포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세부데일리뉴스> 등 필리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4일 오전 1시 30분쯤(현지 시각) 필리핀 세부에서 성매매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한국인들은 모두 40~50대의 남성 9명이다. 이들은 세부 라푸라푸 시(市)의 한 호텔에서 필리핀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있다가 단속 대기 중이던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 가운데 신 아무개 씨, 박 아무개 씨 등 2명은 불기소 처분됐으며 나머지 김 아무개 씨 등 7명만 성매매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경찰의 급습이 이뤄졌을 때 신 씨와 박 씨의 곁에는 성매매 여성이 함께 있지 않아 기소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경찰에 붙잡히게 된 스토리가 기막히다. 최근 필리핀에서는 강경 정책으로 인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71)이 마약과의 전쟁을 넘어서 성매매 등 강력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특히 필리핀 국내에서 성매매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일부 한국인 관광객과 이들을 유혹하는 필리핀 현지 교민들의 해외 성매매 카르텔이 그 주요 타깃이 됐다. 필리핀 수사당국은 필리핀 사회에서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한국인 마피아(Korea Mafia)’가 성매매 등 주요 범죄의 배후에 있다고 지목, 강도 높은 수사와 범죄 근절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필리핀 성매매 관광의 주요 제공자와 소비자가 모두 한국인으로 지목되면서, 필리핀 국립수사국인 NBI(National Bureau of Investigation)와 세부지역 여성위원회 PWC(Provincial Women‘s Commission)가 공조를 통해 필리핀 성매매를 중개해주는 한국 웹사이트를 포착, 필리핀 성매매 패키지의 판매 루트를 알아냈다. 이 웹사이트는 세부에 있는 한국인 교민들이 일명 ‘여성 공급책’을 맡고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BI는 이번에 붙잡힌 9명이 이 사이트를 이용해 인당 필리핀 돈으로 25만 페소(한화 약 574만 원 상당)를 지불하고 ‘섹스 투어’를 신청한 것을 확인, 잠입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들은 하루 2000페소(한화 약 4만 5000원 상당)를 받고 사흘간 이들의 성매매 투어에 동참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약속된 장소를 방문한 당일, 대기 중이던 수사관들이 호텔을 덮치면서 9명의 한국인들이 현장에서 체포된 것이 이번 사건의 전말이다.
필리핀 현지 언론 ‘선스타 세부’에 한국인들이 필리핀 성매매 체포 관련 기사가 올라 왔다.
NBI 측은 이번 수사를 성공적으로 평하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점을 “한국의 성매매 관광 패키지 판매 웹사이트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수의 필리핀 언론에 따르면 NBI는 이 웹사이트에 대해 “가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점을 운영자에게 명확하게 밝혀야 하며 운영자가 직접 한국인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철저하고 은밀하게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필리핀 당국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웹사이트를 통해 패키지를 신청하게 되면 자신의 관광에 함께할 필리핀 여성을 고를 수 있다. 사이트 내 갤러리에서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선택하면 업체 측에서 그 여성을 보내는 식이다.
웹사이트 운영자와 세부 현지의 성매매 카르텔의 주요 조직원으로 알려진 이들은 세부에 거주하는 3명의 한국 교민들이다. 이들은 각각 ‘앤디’ ‘초이’ ‘킴’으로만 알려져 있으며 사건 당일 도주해 현재 수배 중이다. 이 가운데 ‘초이’로 알려진 남성이 성매매 관광 패키지 웹사이트를 직접적으로 운영한 카르텔의 우두머리인 것으로 필리핀 수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있었던 현지 성매매 여성들은 모두 10명으로 이들 가운데 4명은 미성년자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더욱이 NBI는 이들이 ‘인신매매’를 통해 성매매 카르텔로 넘겨진 것으로 파악, 강도 높은 확대 수사를 계획하고 있다. 만일 이 여성들의 인신매매가 사실이라면, 불기소인 2명을 제외하고 기소 의견으로 넘겨졌던 나머지 7명은 현지법으로 성매매 혐의뿐 아니라 2012년 개정된 반(反)인신매매법과 관련해서도 처벌받을 수 있게 된다.
이미 불기소됐던 2명은 지난 7일 귀국했으며, 나머지 7명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들 가운데 2명은 충남 보령 소재의 한 공기업 차장과 과장급 직원으로 알려졌으며, 나머지는 같은 지역 식품업체 대표와 음식점 대표 등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지역 내에서는 “학연을 떠나서 공기업 직원과 지역 내 업체 대표들이 함께 고가의 ‘성매매 투어’를 즐긴 것은 접대성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관련 공기업 측은 직원들에 대해 무보직 발령 조치를 내리고 귀국 후 경찰의 수사 추이를 지켜본 뒤 징계 조치할 방침을 밝혔다.
현지 교민들은 “부끄러움과 착잡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지난 2월에도 부산시 산하 공단의 간부와 직원 등이 ‘필리핀 황제 관광’을 떠났다가 경찰에 적발됐던 바 있다. 필리핀 현지 언론도 2월의 이 사건과 현재 사건을 맞물려 “한국의 필리핀 내 성매매가 날이 갈수록 극심해져 가고 있다”며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필리핀 교민은 <일요신문>과의 통화를 통해 “필리핀 내 한국인들의 성매매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관광객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나. 새 대통령 아래서 마약, 도박, 성매매 등 강력 범죄에 대한 처단이 엄격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은 일대로 벌여놓고 공관과 교민 사회가 뒤치다꺼리를 해주길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들이 다 시키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4년 전에도 세부에서는 4명의 한국인들이 현지 성매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던 바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현지 감옥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