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홍준표 출마에 기대 걸어…바른정당 김종인과 개헌 고리 빅텐트 노려
전(前) 범여권이 10일 대통령 탄핵으로 크게 술렁였지만 정치권 내 혼란상은 오래 지속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우선 한국당은 인용을 대비한 대선 로드맵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바른정당은 정병국 대표와 최고위원단이 총사퇴하는 책임지는 모습으로 한국당을 압박 한편, 빠른 속도로 조기대선 체제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향후 예상되는 보수 진영 움직임을 짚어본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최종선고기일에 참석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당장은 한국당 주류세력으로 군림했던 친박계의 폐족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반반으로 관측된다. 한때 폐족을 선언한 친노의 부활을 학습한 친박계가 호락호락 무너지진 않을 것이란 논리다. 한국당 관계자는 “친박계에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하겠지만 여전히 입을 닫은 보수층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숫자가 있다”며 “두 차례 대선을 치르고 집권여당 주류가 된 친박계의 전국 조직력을 쉽게 봐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대선승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한국당 내에서도 넘어진 친박계의 뺨을 때리진 않는 분위기다. 친박계 인적청산을 주도해 왔던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조차 “다 지난 일”이라는 심정을 밝혔다. 친박계가 탄핵 불복 입장을 거두고 이구동성으로 ‘유구무언’과 ‘자중자애’를 말하는 이상 당내 적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의 관계자는 “지금은 하나가 되어야 할 시기다. 더는 탄핵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탄핵이 된 마당이니 당은 서둘러 친박계의 조직력을 활용할 수 있는 유력 대선 후보를 뽑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당은 홍준표 경남지사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송사에서 항소심 무죄를 받은 홍 지사는 최근 인 위원장, 한국당 초선 의원들과 잇따라 회동하며 대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홍 지사의 한 측근은 “조기대선까지 60일간의 시간에 출마를 준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참 어렵다”고 말했지만, 이미 홍 지사 주변부가 ‘선거 전문가’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사실은 여의도 사정에 밝은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홍 지사도 친박계의 공동 책임론이 비등하자 “국회의원을 어떻게 청산한단 말인가”라며 친박계를 포용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항소심 판결 직후 친박계를 ‘양아치‘라고 성토하며 직격탄을 날린 것에서 180도 바뀐 셈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대선 출마로 기울었다“고 해석했다.
한국당 지도부는 이미 탄핵 인용과 기각에 각각 대비해 로드맵을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탄핵 인용 사흘 뒤가 되는 13일부터 대선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인정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면 자중자애의 시간이 좀 더 길어졌겠지만 곧바로 선거대책위 체제로 전환할 것을 부정하지 않은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지도부는 탄핵 인용에 따른 추가 탈당파 단속과 탄핵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인명진 리더십’의 와해를 최대한 막아내야 한다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표를 던진 30여 명 중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추가 탈당이 있을 것이란 말이 크게 돌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 조직력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활용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홍 지사 쪽에서도 당내 세력화를 어떻게 도모할지 논의 중이라고 한다. 현재 당내에선 윤한홍 의원 외에는 자신의 세력이라고 부를 만한 의원들이 없다. 또 일각에서는 홍 지사의 대선 출마가 대법원 최종심 판결을 앞둔 ‘위기돌파형’이 아닌지도 의심하고 있어 이 부분을 어떻게 해명할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국당 유력 대선 주자로 회자했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최근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불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당 지도부도 조커로서의 황 권한대행 가능성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당이 홍 지사 출마를 지원하면서 이인제 원유철 안상수 등 기존 출마자들의 지지선언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탄핵이 기각되면 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고 밝힌 바른정당은 총사퇴의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면서 조기대선 첫 로드맵으로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탄핵소추를 주도하면서 한국당을 탈당한 바른정당 지도부가 사퇴의 명분이 없음에도 이런 카드를 내민 것은 탄핵 기각을 부르짖었던 한국당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는 압박용으로 읽힌다. 동시에 조기대선체제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려는 이중포석이란 분석이다.
특히 정병국 대표로서는 한자릿수에서 정체된 당 지지율을 극복할 확실한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에 탄핵 인용을 계기로 당을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길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바른정당 비대위원장으론 김무성 의원이나 곧 입당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 인사는 “만약 한국당이 조기대선에서 힘도 못 쓰고 와해될 경우엔 바른정당 비대위나 선대위의 수장이 향후 보수 진영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김무성 의원 주변부에서 그의 대선 재등판이나 비대위원장 수락을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석해줬다. 정 대표가 사퇴하면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 의원에게 바른정당을 안겨주는 수순이라는 얘기다.
바른정당으로서는 개헌에 호의적이지 않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양자대결도 주도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놓고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꾸준히 접촉하면서 ‘개헌’을 연결고리로 한 반문(재인) 빅텐트를 만들 수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문재인 대세론의 틈을 개헌으로 파고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김 전 대표가 탈당 직후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오찬을 함께한 데 이어 남경필 지사와도 접촉하는 것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정치권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들 대선주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권교체 동력은 탄핵으로 소멸할 것”이라는 얘기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에 따른 안보 문제와 불황 타개를 위한 경제 해법이 조기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김무성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 김 전 대표를 영입 1순위로 삼고초려할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들린다.
범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는 진영에서는 ’바른한국당‘으로의 통합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친박계 인적청산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만큼 당내 개혁에 실패하고 탈당한 바른정당과 한국당이 자연스럽게 뭉칠 필요가 있다는 배경에서다. 홍 지사도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혼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일부 한국당 바른정당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 간판을 교체하지 않고 기존 ‘새누리당’ 이름만 지운 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재통합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