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살림 싫으면 정략 결혼이라도?
▲ 자유선진당(위)과 친박연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세 숫자는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등 주요 정당이 4·9 총선의 목표로 잡은 의석 수다. ‘150’은 국회 과반수를 의미한다. 한나라당은 이 과반수에서 3석 많은 153석으로 커트라인을 겨우 통과했다. ‘100’은 국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는 숫자로 민주당의 목표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81석을 얻어 한참 미달했다. 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숫자인 ‘20’에 자유선진당(18석)과 친박연대(14석)도 미달했다.
‘150’과 ‘100’이라는 숫자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다투는 ‘격조 있고 힘 있는’ 숫자인 반면 ‘20’이라는 숫자는 생존과 직결된 숫자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면 국정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보조금을 다른 정당 수준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분기별로 지급하는 국가보조금은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는 정당이 보조금 총액의 50%를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 나머지 50%는 의석 수·득표율 등에 따라 지급한다. 5~20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은 5%만을 가지고 5석 미만 정당은 2%만 가져갈 뿐이다. 따라서 교섭단체를 이뤄야만 ‘국고보조금의 식탁’에 그나마 ‘앉을’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지난 3월 지급된 18대 국회 선거보조금의 경우 전체 313억여 원 가운데 통합민주당이 135억 1766만 원, 한나라당이 122억 4854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원내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선진당은 16억 1512만 원, 친박연대는 6375만 원을 받는 데 그쳤다.
정치자금의 절반 이상을 국가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게 한국 정당들의 현실. 원내 교섭단체를 이루는 20명 의원을 확보하기 위해 각 당이 기울이는 노력은 필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0석에서 2석이 모자란 선진당과 6석이 모자란 친박연대는 선거후 ‘20’이라는 숫자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선진당은 의원 영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친박(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 인사가 아니면서 무소속 당선된 ‘순수’ 무소속 당선자는 김광림(경북 안동) 김세연(부산 금정) 강길부(울산 울주) 송훈석(강원 속초·고성·양양) 이인제(충남 논산·계룡·금산) 의원 등 5~6명인데 이들 가운데 영입할 만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당이 충청권에서 주로 당선자를 냈기 때문에 영남·강원권 당선자들이 선진당 입당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이 때문에 선진당은 1997년 대선에 출마해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당선의 걸림돌이 된 이인제 의원의 영입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친박연대는 선진당보다 느긋한 입장이었다. 친박연대 자체 당선자 14명과 함께 박 전 대표를 추종하는 무소속연대 의원 11명이 있어 언제든지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소속연대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은 총선 후 기자회견을 통해 “5월 15일까지 복당을 허용해주지 않으면 교섭단체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친박연대가 비례대표 1번 양정례 당선자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홍사덕 전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선자들과 당직자의 서청원 대표에 대한 불만 수위도 높아져 친박연대 내부의 균열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정가 일각에서는 양정례 파문을 계기로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 간의 균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당초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는 수도권과 영남지역 표심의 성향 때문에 갈라진 것이다. 수도권은 무소속보다 당 소속 후보를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반면 한나라당 성향이 강한 영남지역에는 한나라당 외의 정당 후보보다 무소속이 선거에 유리하다. 하지만 무소속연대는 영남지역에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사람만 받겠다고 고집하기도 해서 일부 영남권 인사들은 친박연대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런 태생적 차이가 있던 만큼 친박연대가 검찰에 계속 돈 문제로 수사를 받아 금권선거 혐의가 드러나게 되면 무소속연대와 친박연대 사이에 큰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당 외 친박 인사에 대한 입장도 커다란 변수다. 한나라당 온건파 가운데서는 “친박연대는 당이어서 통합에 논의가 필요하지만 무소속연대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무소속연대고 친박연대고 간에 당분간 영입은 없다”라는 강경한 발언을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나라당 내부의 온도차도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의 결합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코너에 몰린 친박연대와 선진당의 연대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선진당은 친박연대와 연대할 경우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데다 수도권 및 영남 후보를 영입한 전국정당으로서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친박연대도 교섭단체 구성은 물론 검찰 수사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회창 총재와 서청원 대표는 2004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함께 받았던 경험이 있다.
현재로선 양정례 당선자 파동의 끝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진당이 친박연대와 선뜻 손을 잡겠느냐는 비관론이 일단 우세하다. 하지만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지 못할 경우 쥐꼬리만 한 국가보조금을 받는 데다 상임위 구성이나 국회의 국정현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우려 때문에 이들이 ‘의외의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