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복 사업 개입은 새발의 피?...“협회장 선거, 문체부 입김 의혹 수사해야”
김종 전 문체부 2차관과 최순실 조카 장시호
[일요신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사로 지목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체육계를 전횡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구속 기소됐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접수된 고발장에 따르면, 김종 등 최순실 사단이 태권도계를 장악하려 한 의혹이 제기돼 또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특검 수사가 종료돼 ‘최순실 게이트’ 사건 수사는 다시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자 소환시기를 조율하는 등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검에 접수된 고발장을 바탕으로 최순실 사단의 국정농단 손길이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까지 뻗친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1월 박영수 특검팀에 두 차례 접수(특검 접수번호 2X, 13X번)된 고발장엔 김종 전 차관을 비롯한 문체부 및 체육계 고위인사들이 최순실 등과 공모하여 세계적인 인적네트워크와 사업권을 가진 태권도계를 장악하고 국고 3000억 원가량이 들어간 무주태권도원 이권 개입 등 국정농단에 체육계를 이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고발인은 태권도시민연대 등이고, 피고발인은 김종 전 차관과 최창신 현 대한태권도협회장이다. 최 회장은 김 전 차관과 문체부 선후배이자 대학교 동문사이로 알려졌다. 고발장에는 이미 언론에서 보도됐던 최순실 조카 장시호의 태권도복 사업 개입과 졸속운영 의혹을 받고 있는 K스피릿 태권도시범단 관련 사업 등도 자세하게 명시돼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접수된 고발장
최순실과 김종 등이 문체부를 장악하고, 최 회장을 통해 태권도계를 사조직화시키고 비선라인을 통해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수사를 촉구하는 주장이 주된 골자다. 이는 스포츠경기단체에 국가의 정치적 간섭을 엄격하게 배제하고 있는 IOC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외교망신이 될 소지마저 있다.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4개국 순방 당시 공조직인 국기원 시범단을 1주일 전에 특별한 사유없이 배제했다. 대신 불과 4개월 전에 출범한 태권도외교재단의 ‘K스피릿’이란 태권도시범단을 포함시켰다. 태권도외교재단은 등기엔 등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최 회장이 총재로 활동했다. 태권도외교재단은 2016년 1월 최순실이 설립한 K스포츠재단 소속으로 편입된 사실이 드러났고, 태권도외교재단 감독(A 교수)이 K스피릿 태권도시범단 단장을 맡는 등 태권도 비선조직으로 알려졌다. K스피릿 시범단원도 지방대학 학생들로 급조된 사실상 C급 시범단원이라는 것이 고발인들의 주장이다.
K스피릿 시범단원은 지난해 가을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태권도 관련단체로 시범단 공연 및 심판, 진행요원 등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최 회장 명의로 태권도진흥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사실상 공조직처럼 운영됐다.
최순실 사단의 태권도 장악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혹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대통령 순방행사에 파견된 태권도외교단이 실체가 없는 K스피릿 시범단 경비를 지출하고, 태권도원 훈련비용 일체를 미르·K스포츠재단에서 지불했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최순실이 조카 장시호를 내세워 국기원의 고유 권한인 태권도복 개발 사업에 관여한 점도 명시됐다. 지난해 6월 말경 문체부 담당 공무원이 국기원 측에 태권도복 개발 사업을 중단할 것을 부당하게 지시한 것으로 고발장엔 적시돼 있다. 도복 1벌당 5만 원 정도지만, 국내 수련생이 약 120만 명, 해외 수련생이 약 800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이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특검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이 주도한 ‘태권도 비전 2020’을 활용해 장시호가 더블루K 사무실에서 국기원 도복 시안을 개발한 사실이 일부 발표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태권도외교재단을 거점으로 태권도 용품사업, 공연사업, 태권도원 운영권 등에 개입한 의혹도 포함돼 있다.
또한 고발인들은 청와대와 문체부가 국기원의 설립 취지를 내세워 출범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를 단행해 왔으며, 지난해 12월 정관을 개정해 부원장을 임원에서 제외하고 사무총장 직제로 변경하는 등 조직개편과 인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전 차관이 ‘태권도 비전 2020’ 위원회에서 논의된 사업을 무리하게 변조해 특정인의 사익을 추구하고 편성된 정부예산을 외교재단 예산으로 둔갑시켜 집행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과 사전 조율 내지는 공모를 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최 회장을 통해 ‘대한태권도협회’를 장악하려 했다는 의혹인데 문체부 차관보 출신인 최 회장이 협회 회장에 당선되도록 문체부 관계자 등이 선거 지원에 개입한 정황도 수사해야 한다고 고발인들은 촉구하고 있다.
K스포츠재단은 태권도 비선조직(유사단체)을 만들어 이권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수사 중이다.
하지만 문체부 관계자는 “개인적 문제는 모르겠지만, 문체부가 조직적으로 나서 협회장 선거 및 인사 등에 개입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다만, 최순실 사단 등 문체부 직원을 포함한 비선실세 의혹 등은 이미 국회 국정감사와 특검, 검찰 등에서 많이 다뤄진 만큼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을 순 있지 않겠나”라고 해명했다.
이어 “태권도협회 관련 문제는 문체부 각 소관기관들이 담당하고 있어 전체적인 의혹에 대한 입장은 사안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태권도협회 등 태권도계에 만연한 비리나 여러 문제점 등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상징적이고 세계가 인정한 태권도가 제대로 된 경쟁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특검 수사 종료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수사를 이어 받게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방대한 수사 범위 및 성격을 감안하면 최순실 사단의 태권도농단 의혹 수사는 뒷전에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정부가 공식 법인인 국기원을 배제하고, 비선라인의 유사단체를 양성해 국가예산을 지원하면서 태권도계를 장악하려 한 의혹 등이 불거진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기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