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로 나선 변호사는 우리 남성들이 모두 힘을 합쳐 청와대에 유폐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구출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촛불과 태극기는 젊음과 늙음 그리고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의 대립이었다. 늙은 변호사인 나는 자동적인 분류대상인 것 같았다.
촛불 시위를 지지하는 젊은 변호사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지키자는 체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정희 대통령 부녀를 왕으로 모시는 인식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 말에 나는 내면의 의식을 먼저 살펴보았다. 50년 세월 저쪽으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소년은 구호물자로 보내온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를 먹었고 외국소년이 보낸 헌옷을 입고 자랐다. 서울은 판자 집 투성이에 깡통을 든 거지들이 득실 거렸다. 그런 지옥 속에서 나타난 메시아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일용할 양식이 해결되고 경제발전의 물결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보다 훌륭한 성군 같았다. 불운하게 돌아가신 훌륭한 군왕에 보답하려면 공주인 딸을 보살펴야 한다는 잠재의식도 없지 않았다.
젊은 변호사들은 내게 그동안 보수여당은 안보와 공동체 그리고 헌법을 지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선 때 북한에 돈을 주고 휴전선에서 총을 쏴달라고 부탁한 사건은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안보를 버린 반국가적 행위였다고 했다.
공동체를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양극화시킨 것과 권력의 사유화를 답습해서 재벌한테 돈을 털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이 행위는 자유민주주의헌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했다. 그들은 대통령도 공무원일 뿐이라고 했다. 세월호라는 큰 사고가 터졌는데 최종 책임자인 공무원이 근무지를 이탈해서 집에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징계탄핵사유가 아니냐고 했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나 특검에는 출석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기변명과 거짓말 그리고 은근히 태극기 시위대를 선동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영국도 불란서도 시민혁명은 왕을 감옥에 보내고 이루어졌다면서 우리도 그 시기가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젊은 변호사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나의 사고도 어떤 틀 속에 들어있었다. 저질의 탐욕과 부패한 보수의 잘못도 컸다. 이제 감사했던 박정희의 시대가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력으로 막을 내리고 있는 걸 느낀다. 젊은 세대 중에는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진짜 지옥 같은 시대에 살았던 우리 세대는 그늘 속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보내려는 국가의 손길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파랗게 날이 선 양 세력의 부딪침에서 불꽃이 일고 있다. 6·25 전쟁으로 전국토에 피바람이 일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는 나라사랑과 법치로 한 단계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