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프랭크가 암환자로서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그만의 남다른 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딸이 임신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꼭 보고 가겠다는 의지가 인간으로서는 하기 힘든 사투를 벌이게 만들었다는 것.
▲ 예일대 출신 미녀스타 브룩 실즈가 아버지 프랭 크 실즈(오른쪽)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있다. | ||
브룩 실즈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주 큰 의미였다고 한다. 브룩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브룩은 아버지가 최근 몇 년 동안 암과 투병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을 가장 먼저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해 프랭크가 살고 있던 플로리다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 갔을 정도로 아버지에게 희망을 주려고 애를 썼다. 그때만해도 프랭크는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다. 프랭크는 딸의 임신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1년 12월 브룩은 한번의 뼈아픈 유산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
딸의 임신 소식은 병마와 싸우는 아버지에게 큰 힘이 되었다. 프랭크는 매일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의 아기가 태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프랭크는 하루종일 딸의 임신 사실만 생각했어요. 그는 갑자기 기운을 차렸으며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어요. 그는 딸의 아기를 안고 이마에 키스를 하고 싶어했어요.”
브룩 실즈 역시 자신의 임신이 아버지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적어도 자기의 아기를 안아본 후에 눈을 감더라도 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브룩은 매일 매일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제발 아버지가 자신의 아기를 보게 해 달라’고, 그리고 ‘그 아기가 아버지의 고통을 조금은 덜게 해 달라’고. 브룩은 아버지에게 보다 구체적인 희망을 주기 위해 아기의 이름을 미리 ‘로완’이라고 지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브룩의 꿈은 더 큰 슬픔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출산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떠남으로써 곧 다가올 기쁨을 함께 나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다.
“브룩은 큰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곧 태어날 아기 때문이라도 힘을 내보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 드리고 싶어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만큼 브룩에게 있어서 큰 존재였어요. 안타깝게도 브룩이 꿈꿔 온 일이 이제 일어날 수 없게 됐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브룩이 기쁨의 눈물과 함께 슬픔의 눈물도 많이 흘릴 것 같습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