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식 일방통행 ‘정면 충돌’ 부르나
▲ 이명박 대통령의 편향 인사가 소장파의 반발을 사면서 여권 내부가 뒤숭숭하다. 사진은 재산 공개 후 뭇매를 맞고 있는 곽승준 박재완 이종찬 김중수 박미석 이주호 청와대 수석(왼쪽부터).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한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인사가 ‘주군’에게 던지는 쓴소리다. 그의 얘기는 현재 여권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여러 가지 권력 갈등은 일견 심각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그 상처가 곪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수위원회 활동과 총선 공천 갈등에 이어 벌어지고 있는 여권의 권력 투쟁 제2라운드를 따라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청와대 참모진들은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무기능 보완 요구와 비서진 재산 공개 파문을 ‘청와대 흔들기’로만 인식하고 있다. 이런 권력 핵심부의 안이한 현실 인식은 권력 갈등을 풀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해답을 찾기보다는 더 큰 문제들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정권 출범 두 달 만에 왜 이명박 정권은 끊임없이 권력 갈등에 노출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각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부에선 대체적으로 현재의 권력 투쟁 연원을 대선 승리의 ‘논공행상’을 잘못한 데 따른 ‘편중된 인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인사는 “재주는 곰이 넘었는데 돈은 자기 주인도 아니고 옆집 주인이 와서 날름 가져간 꼴”이라는 비아냥 섞인 말도 내뱉는다.
여권의 전략전문가 A 씨는 이명박 정권의 권력투쟁 문제를 노무현 정권 초기와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 초기 ‘386 세력’과 ‘부산파’를 비교적 공정하게 배려해 인사 잡음을 피해간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재오-정두언 그룹’보다 ‘이상득 그룹’ 위주의 편향 인사를 해 현재의 권력투쟁이 촉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A 씨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는 데 공을 세운 양대 그룹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대변되는 ‘부산파’와 이광재 의원이 이끄는 ‘386그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 이광재 의원을 국정상황실장에 임명했고 문재인 전 비서실장을 민정수석에 임명한 바 있다. 당시 386세력이 이념 논쟁과 정책 수립 등을 이끌었다면 부산파는 대통령 측근 세력 관리 등의 보좌 기능을 맡았다. 이는 양측이 여권 내부에서 필연적인 권력 투쟁을 하게 되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견제와 감시를 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여기에서 주목해볼 점은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두 세력이 집권 공신으로서 권력의 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비교적 공평하게 요직을 나누어주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초기 적어도 인사문제에 관한 한 극심한 잡음이 나오지 않은 것도 집권 공신들을 비교적 공정하게 배려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A 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의 권력 관리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 여권 집권의 양대 공신은 이재오-정두언 그룹(강한 개혁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386 세력과 흡사)과 이상득 국회 부의장으로 대표되는 원로그룹(정권의 안정적 관리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부산파와 비교됨)이 있을 수 있다. 대선 승리의 공헌 여부를 따지면 이재오-정두언 그룹이 당내 경선 승리의 1등 공신으로서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재오-정두언 그룹’이 이명박 정부 초기의 인사 문제와 관련해 불이익을 당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면서 그 불만이 권력투쟁으로 변질돼 계속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 이재오(왼쪽), 정두언 | ||
이런 점들을 놓고 보면 최근의 여권 권력투쟁이 인사 편중에서 비롯됐고 그것의 1차 책임은 이 대통령의 권력층 관리 실패와 편중 인사에 기인했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일련의 여권 권력투쟁에 대해 한 발치 물러서서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일단 정두언 의원 등이 주장하는 청와대 정무 라인 교체 주장에 대해 “그럴 생각이 없다”라며 선을 긋고 있다. 또한 최근 불거지고 있는 비서진 재산 공개 논란에 대해서도 “참모진을 끝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인사 문제로 밀릴 경우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불신을 초래하는 데다 이 대통령 인사 스타일도 웬만한 결점이 없다면 아랫사람을 믿어주는 편이기 때문에 당분간 인사에 관한 한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의 권력투쟁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대통령이 청와대 집중의 권력 운용 방식을 선호하지만 결국 의회권력(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과의 타협만이 현재의 권력 갈등을 풀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비록 최고 권좌에 올랐지만 그 배경에는 ‘MB(이명박 대통령 이니셜) 브랜드’만 있는 게 아니라 10년 동안 절치부심했던 한나라당이라는 또 다른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집권 공헌도와도 관련이 있다. 대선이 있기 몇 달 전 한 외신이 “한나라당 후보라면 개가 나와도 당선될 것”이라는 극단적 예상을 한 것도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의 집권이 아니라 보수층을 선호하는 여론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여당에도 일정한 권력 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이러한 정치적 인식을 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사전에 미리 정리를 하지 않으니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 아니냐.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라며 재산 공개 파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장파들이 재산 공개 직후 당장 여권 파열음을 의식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여론 흐름에 따라 대대적 공세에 나설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번 청와대 비서진 재산 공개를 두고 세간에는 “재산 공개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이 강남 땅부자들 보고 열 받으라고 하는 것이냐.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는지가 중요한데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산 공개를 뭐 하러 하느냐. 그리고 대한민국에 부자들밖에 인물이 없느냐”라는 상당히 냉소적인 시각이 많다. 이런 여론 흐름 때문인지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수석 몇 명의 교체를 생각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에 최근 일부 청와대 실세 비서진들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 위에 올라 경우에 따라 청와대의 인적 쇄신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동산 투기 논란의 장본인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물러나게 한 뒤 그 자리에 박재완 정무수석비서관이 옮겨가고 신임 정무수석에 소장파를 중용할 것”이라는 구체적 인사 개편안도 흘러나오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