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 170개 단체 참여”…지금 삼성동에선 태극기 vs 태극기 세력다툼 한창
지난 3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탄기국이 연 제1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김수남 검찰총장과 노승권 특수본 본부장 등을 규탄하는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동안 태극기 집회를 이끌어 온 단체는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결정된 직후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탄무국)’로 명칭을 바꿨다.
탄무국은 일종의 ‘친박단체 연합’이다. 탄무극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 연합에는 170여 개의 친박 단체가 섞여있다. 종교단체와 산악회, 육‧해‧공‧간호 사관학교와 서울 유명 대학 출신들이 모인 구국동지회 등 다양하다.
탄무국은 소속 단체들에 각각 태극기 집회 준비 업무를 분담한다. 피켓, 현수막, 태극기를 각자 나눠 제작하는 업무가 대표적이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단체들의 이름은 각각 달랐지만, 피켓과 현수막 등의 색깔, 모양이 같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대나 음향, 장비 등은 외주에 위탁한다.
그동안 탄무국 측이 주최해온 태극기 집회에는 ‘테마’가 있었다. 대형 십자가나 유모차 부대 등이 등장하는 식이다. 정광용 탄무극 대변인은 “저예산으로 집회를 준비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며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폭죽, 가수 초청 등 행사를 못 한다.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집회에 오겠다는 특정 단체들을 앞에 세우는 것이다. 소속 단체들에서 연락이 오면 그 중에서 가장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탄핵 정국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성조기가 등장한 것에 대해서는 탄무국 측도 어떤 단체가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 탄무국의 전신 ‘박사모’
탄무국을 이끄는 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다. 박사모는 2004년에 결성된 박 전 대통령 최대 팬클럽이다. 온라인 회원 8만 7000여 명, 오프라인 회원이 18만여 명에 달한다. 탄무국의 집회 공지와 성명 등은 모두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앞서의 정광용 탄무국 대변인 역시 박사모 중앙회장으로, 그가 태극기 집회 측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박사모는 단순히 회원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조직망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 수가 수만 명에 달해도 실제 활동하지 않는 유령회원이 대다수인 여타 정치인 팬클럽과는 대조적이다. 박사모는 이러한 조직력을 토대로 지방에서 열리는 탄무국의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다. 일종의 지부, 지회다.
최근 탄무국을 주도한 박사모는 신당 창당도 준비하고 있다. 당명은 ‘새누리당(가칭)’으로, 지난 2월 5년 만에 사라진 새누리당의 부활이다. 정광용 탄무국 대변인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103명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했지만,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이를 거부했다”며 “103명의 의견을 개인적 의견이라며 수용하지 않은 인 위원장을 인정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인 위원장 개인의 사당이 됐다”고 주장했다. 탄무국‧박사모 측은 지난 15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새누리당 대구시당 창당대회’를 열었고, 오는 4월 12일 재보선에선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 엄마부대와 자유청년연합
탄무국을 주도하는 박사모와 함께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선 또 다른 대표 단체는 엄마부대와 자유청년연합 등이다. 이 두 단체는 탄무국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싸우는 태극기 부대들이다.
엄마부대는 지난해 11월 시국집회에서 여고생을 폭행한 주옥순 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로, 지난 2013년 창립해 활동을 시작했다. 온라인 홈페이지 등이 없어 활동 목표나 조직 구성 등은 알려진 게 별로 없지만,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기자회견과 세월호 유가족을 비판하는 시위 등을 진행했다.
엄마부대의 활동 무대는 비단 시위 현장뿐만이 아니었다. 정부 비판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이들은 나타나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 아무개 씨의 빈소에 주 대표 등 엄마부대 회원들이 나타나 유족의 허락 없이 가족과 분향소 사진을 찍고 이를 제지하는 유족과 자원봉사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세월호처럼 키우려고 하느냐”고 소리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
비슷한 풍경은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백남기 씨의 빈소에서도 반복됐다. 지난해 10월 주 대표는 백남기 씨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앞에 상복을 입고 나타나 “신속하게 부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엄마부대의 주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자택 복귀 전날 유튜브에 자택 복귀 사실을 알리며 “삼성동에 모이라”는 방송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지난 2월 28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엄마부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자유청년연합은 지난 2월 25일 박영수 특검의 집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박 특검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에 불을 붙이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 단체가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지난 2013년 10월 2012년 대선 당시 전국공무원노조가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남겼다며 선거개입 혐의로 고발하면서부터다.
당시 이들은 선거관리위원회도 문제삼지 않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남겨진 글 불과 3건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검찰에서 공무원노조 사무실 압수수색까지 실시해 파장이 컸다. 이후 이들은 박근혜 정권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등장해 비판자들을 온갖 혐의로 고발하고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데에 집중적인 활동을 펼쳤다.
지난 2014년 9월에는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이 단식농성 중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 일베(일간베스트) 회원들과 함께 피자, 치킨 등을 시켜 먹는 ‘폭식 투쟁’ 퍼포먼스를 강행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2015년 11월에는 민중총궐기 집회 후 고(故) 백남기 씨가 중태에 빠지며 정부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자유청년연합은 다른 보수 시민단체와 함께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최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을 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경찰은 한 위원장에게 29년간 적용되지 않던 ‘소요죄’까지 적용시켰다. 이듬해 10월 자유청년연합은 백남기 씨가 사망하고 부검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자 ‘유족이 적극적 치료 대신 소극적 연명 치료만 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고발했다.
# 삼성동 앞 친박단체 ‘분열’
지난 3월 12일 박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복귀된 이후 앞서의 단체 등을 제외하고 눈에 띄는 친박단체는 ‘가칭 박근혜지킴이 결사대(박근혜 결사대)’와 ‘월드피스자유연합(자유연합)’ ‘우리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대사모)’ 등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자택 복귀 이후 시위 과정에서 각 단체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지난 3월 14일 오전 오전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박 전 대통령 지지자 150여 명으로 구성된 ‘박근혜 결사대’는 지난 3월 13일 발족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박 전 대통령의 기본권 사수와 신변 보호가 목적으로 발족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박근혜 결사대는 과격·폭력 시위를 주도한 탄무국과 박사모 등과는 관계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문제는 발족 직후부터 발생했다. 지난 3월 13일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엔 다수의 친박 단체가 모여있다. 집회 신고는 ‘결사대’가 했지만 ‘자유연합’ ‘대사모’ 등 여러 친박단체들이 합세한 것.
그러나 몇몇 단체들이 “종북 척결” 등과 같은 공격적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공격적인 시위를 이어가다 내부에서 균열이 생겼다. 집회를 주도한 결사대는 각각 단체의 이름을 뺀 채 ‘결사대’라는 이름으로 비폭력 침묵시위를 이어가자고 주장했지만, 다른 단체들은 각각의 이름을 내걸고 집회를 열기를 원했다.
3월 14일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로 보이던 한 여성이 경찰관을 폭행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결사대는 다른 단체들에게 “야간집회는 결사대 회원만 허락하겠다”고 통보했고, 대사모와 자유연합은 “결사대가 집회를 독점한다”고 반발했다. 결국 이들은 “지지자 단속을 강화하자”고 합의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자유연합이 ‘결사대’가 아닌 ‘자유연합’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다 결사대의 반발을 산 것. 서로 언성을 높이다 자유연합은 결국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단체 간의 갈등으로 자택 앞 집회가 무산된 친박단체들은 다른 장소를 찾아 집회 투쟁을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향후 삼성동 친박집회는 결국 두 개로 나뉘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결사대를 제외한 단체들은 ‘대통령복권국민저항본부’가 박 전 대통령 자택과 가까운 주유소 근처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사대는 ‘결사대’라는 이름으로 침묵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이명박 때문에…박근혜-박사모 등 돌릴 뻔 지난 2월 23일,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 ‘친이계(친이명박)’ 인사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 내정되면서, 박사모가 크게 반발하고 나선 적이 있는데, 여기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사모는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키기 위해 맹공을 펼쳤는데, 공격의 대상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박 전 대표와 경쟁하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었다. 당시 박사모는 소속 회원들에게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 총동원령’을 내렸다. 당시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에 관한 모든 기사를 각종 사이트에 퍼나르라’ ‘모든 기사에 의견을 표시하라’ ‘수시로 박사모 카페에 접속해 상황을 예의 주시하라’ 등의 지침이 담겼다. 이런 무시무시한 지침이 내려진 이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귀중한 표를 절대 줄 수 없다” 등 이 전 시장을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관련 의혹 검증을 위해 이 전 시장을 대질 신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막강한 박사모에 맞서는 이명박 전 시장 측에도 비슷한 팬클럽이 있었다. ‘MB연대’라는 이 커뮤니티는 한 해 전 ‘나라사랑 이명박’ 등 이 전 시장의 팬클럽 6곳이 통합해 출범한 곳으로, 나중에는 동참한 팬클럽이 20곳까지 늘어나며 박사모 못지 않은 세를 형성했다. ‘MB연대’는 ‘박사모’와는 조금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박사모의 공격에 직접 맞대응을 하지 않고, 대신 사회봉사 활동, 이 전 시장의 미래 비전 알리기, 이 전 시장의 공약 학습하기 등의 활동을 전개한 것. 나름의 ‘포지티브’ 전략이었다. ‘총동원령’과 ‘비상사태’ 발령으로 전방위적 맹폭을 가하는 박사모와 맞대응 대신 ‘포지티브 전략’을 취한 MB연대 간 승부의 결과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승리였다. 그런데 박사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일도 발생한다.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와의 경선에서 패한 후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유세에 나서겠다”고 결정하자, 이에 반발해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선후보캠프에 합류했다. 이후 박사모 회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고 일부 팬클럽 회원들이 정 회장에게 맞서 ‘호박가족’이라는 팬클럽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도 호박가족을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하며 호박가족에 힘을 실어줬다. 현재까지도 박 전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은 호박가족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음에도 현재 박사모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정광용 회장도 “박사모는 여전히 박 대통령의 팬클럽으로 박 대통령을 향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