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페이스북
[일요신문] 역사학자 전우용이 최근 논란이 된 역사강사 설민석의 ‘민족대표 33인 폄훼’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17일 전우용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족대표)33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인 태화관에서 낮술 먹고 독립 선언했다는 유명 한국사 강사의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보이기에 재미삼아 한마디 얹는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33인이 탑골공원 현장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지휘하지 않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데 대한 비판은 운동 당시부터 있었지만 이는 관점이 문제니 굳이 따질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우용은 설민석의 발언과 관련해 “그런데 태화관을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고 한 건 명백한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요리장기’ 즉, 기생이 시중드는 요릿집이 처음 생긴 건 1898년으로 추정된다. 1900년에는 현재의 서린동에 혜천관이, 1903년에는 현재의 일민미술관 자리에 명월관이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이어 “기생이 시중드는 요릿집이 생긴 배경은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1902년 ‘고종황제 즉위 40년 망육순 칭경예식’ 공연차 지방에서 올라온 기생들이 행사가 무산된 뒤에도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뒤로 그런 요릿집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겼다”고 설명했다.
전우용은 “명원관은 1914년 당시 이완용 소유였던 옛 순화궁을 빌려 지점을 냈다. 이 집 안에 태화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태화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태화관의 유래를 전했다.
또한 그는 “당시 요릿집들이 음식과 섹슈얼리티를 함께 팔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룸살롱과 비슷하다 볼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는 명예는 ‘별별색주가’나 ‘내외주점’에게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우용은 “(태화관 같은)요릿집은 룸살롱이라기보다 ‘피로연장’이나 ‘회식장소’의 원조였다”며 “당시 요릿집은 결혼식 피로연장, 회갑연장, 신문사 망년회장, 사회단체창립총회장 등으로 널리 이용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화관을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고 한 것도 터무니없는 주장이고, 기생 시중 받으며 낮술 먹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상상력도 과도한 주장이다”라고 비판했다.
전우용은 해당 글을 작성한 이유에 대해 “평범한 한국사 강사였다면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워낙 젊은 층의 역사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고 하니 짚어둘 지점이 있겠다 싶다”고 밝혔다.
주성연 기자 jooee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