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고…굽고…고요 속의 고단함
랑다부 마을 90여 가구가 모두 항아리를 빚어 생계를 꾸려간다.
[일요신문] 미얀마 중서부에 있는 랑다부(Randapo)란 마을에 왔습니다. 독을 짓는 ‘항아리 마을’입니다.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바간과 가까운 곳입니다. 제가 사는 중부도시에서는 4시간쯤 걸리는 강변마을입니다. 이 마을 인근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시작되어 저는 일주일에 3일을 이 지역에서 지내고 돌아갑니다. 이른바 ‘찾아가는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양곤을 떠나 중부로 와 교육센터를 세웠지만 북부, 서부의 가난한 시골청년들은 중부의 큰 도시로도 오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깨닫고 자원교사와 함께 시골 브랜치를 만들고 찾아가는 교육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배우는 학생도 다양합니다. 한국어 기초를 배우는 고등학생, 언젠가 유학을 꿈꾸는 대학생, 한국 취업시험을 공부하는 청년 등. 오늘은 주말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의 항아리 마을을 물어물어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들어서니 강변으로 90여 호의 집들이 빼곡히 모여 있습니다. 모두 항아리를 빚고 삽니다. 오랜 세월 이 마을은 항아리를 빚어왔지만 60여 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국에 내다파는 산지가 되었습니다. 흙과 모래, 볏짚, 물 등이 이 고장에 풍부한 까닭입니다. 어린 소녀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한데 어울려 도자기 빚듯 항아리를 만듭니다. 크고 작은 물항아리, 밥 짓는 솥항아리, 흙으로 빚은 냄비 등. 빚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흙을 두드려서 만들기도 하고 도자기처럼 빚기도 합니다. 구워내는 방법도 좀 색다릅니다. 나무를 깔고 그 위에 빚은 항아리를 층층이 쌓은 뒤 볏짚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립니다. 불을 지피고 3박4일간 볏짚을 태웁니다. 그 볏짚 사이를 헤집으니 불그스레한 물항아리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이렇게 탄생한 항아리들은 강변에서 기다리는 배에 층층이 실립니다. 이 배들이 강을 따라 가까운 바간과 만달레이로 실어나릅니다. 그후 트럭으로 전국에 보급됩니다.
빚은 항아리를 나무로 두드려 모양을 만들어낸다.
작고 고즈넉한 이 마을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탓인지 외국인인 저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되어 동네를 돌다 한 공방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대대로 항아리를 빚어온 너지우 부인의 집입니다. 이 부인은 이 작업을 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소녀시절부터였습니다. 3년 전 늦은 결혼을 해서도 남편과 함께 이 일을 합니다. 오늘은 함께 사는 친정아버지와 작업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물레가 돌도록 건너편에서 도와줍니다. 조용한 마을 집집마다 고요함 속에서 항아리가 빚어집니다. 고단한 노동과 긴 침묵 속에서 하루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랑다부 마을에서 브랜치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부스타를 켭니다. 그리고 너지우 부인 공방에서 산, 흙으로 구운 냄비를 올려놓습니다. 된장 뚝배기가 생각나서 산 붉은 냄비입니다. 하지만 된장이 없으니 커피물을 끓입니다. 책걸상이 놓여 있는 뒷마당엔 양철지붕 사이로 달빛이 스며듭니다. 고요함 속에서 요즘 한국에서도 유행한다는 말들이 생각납니다. 혼밥, 혼술, 혼행, 혼사. 한국도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5년 사이 5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혼자 여행한다는 건 이해되지만 죽음조차도 혼자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참 고독한 삶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렇게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차이나를 수없이 혼자 구석구석 다녔으니까요.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 외로운 것이다.’ 우리는 고독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고독한 시간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30여 년간 이 작업을 한 너지우 부인이 아버지와 함께 항아리를 빚고 있다.
처음 이 나라에 오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해외로 나오면 날씨, 음식, 언어로 애를 먹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보다도 한국에서 마음에 안고 온 것들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다 내려놓고 왔다지만 살다보니 제 안에는 외로움, 관계의 짐, 노후의 삶이 항상 잠복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은 관계의 단절에서 온 것입니다. 인생의 짐도 관계에서 옵니다. 떠나서 산다는 것은 자유로울지라도 고독하며 평생 살아온 환경을 잊고 살아야 합니다. 혼자서 여행하는 일과 똑같습니다.
독 짓는 랑다부 마을의 가족들. 대를 이어 평생 항아리를 빚으며 산 너지우 부인과 나눈 대화를 되새겨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삽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약속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가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오지도 않은 내일 걱정을 많이 하고 삽니다. 많은 관계의 짐을 안고 삽니다. 그래서 더 고독해지고 더 심해지면 죽기까지 합니다. 비천한 관습을 지켜나가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고독감이 덜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고독’은 Solitude, Loneliness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혼자 있는 즐거움’ 다른 하나는 ‘혼자 남은 듯한 고통’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인생에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을 즐길지는 마음에 달렸습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좋습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유익합니다. 젊은이들이 방황한다고 목표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선 고독으로 고독을 이겨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