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질 직원’ 실명 거론하며 “옷 벗길 것” 공언…일각에선 “경찰인권센터 압박용” 의심
최근 지난 2월 23일 열린 전국 청문감사관 워크숍에서 배포된 자료 중 ‘을질’ 직원으로 A 경장의 실명이 거론된 문건이 발견돼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경찰인권센터
인천남부경찰서의 한 지구대 소속 A 경장은 최근 경찰의 ‘표적감찰’ 논란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지난 3월 3일부터 7일까지 3차례에 걸쳐 22시간에 달하는 감찰조사를 받았다. 감찰관이 문제 삼은 것은 크게 4가지다. 감찰관은 A 경장이 △2015년 5월, 지구대 근무 중 책상 유리를 내려 쳐 깨뜨렸고 △동료의 조서를 대신 작성해 ‘허위공문서’를 만들었으며 △2016년 1월 공격적인 말투로 지구대 팀장에게 차를 빼달라고 말했고 △지난 2016년 말부터 페이스북 등에 경찰청 공문을 공개한 것 등을 포함해 모두 20여 개 비위 사실을 추궁했다.
하지만 A 경장은 감찰 사유부터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두 1~2년 전의 일이었으며, 일반 행실에 대한 문제임에도 당시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A 경장은 물론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일부 동료들은 감찰 조사에서 이를 반박했다. 그는 “유리 파손 건은 당시 술에 취해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던 주취자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며 책상을 쳤는데 파손됐다”며 “즉시 사과했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말투와 관련해선 “1년 전에 아무런 지적을 받지 못했는데 최근 감찰 조사에서 문제가 됐다고 들었다”면서도 “당시 지적을 받았으면 사과했을 것이다. 단순히 말투가 거슬린다는 게 감찰 사유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역시 A 경장이 진술한 것을 동료 경찰관이 그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조서에는 동료 경찰관의 서명·날인도 찍혀 있다. A 경장은 지난 3월 23일 경찰인권센터에 감찰 조사 내용과 반박을 자세히 설명했다.
# 곳곳에서 표적감찰 정황
이번 감찰 조사에서 A 경장이 ‘표적감찰’이라고 주장하는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로 지적되는 부분은 감찰 시점이다. A 경장은 지난해부터 경찰인권센터 페이스북 페이지에 불공정하거나 비합리적이라 여겨지는 경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적했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 직장협의회 구성에 대한 의견도 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게시한 글의 일부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는데, 그 직후 본격적인 감찰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A 경장은 지난 1월 1일부터 5일까지 경찰인권센터 페이스북 페이지에 ‘파마머리 금지’ 등 일선 경찰 두발단속에 들어간 인천서부경찰서의 지시 공문과 ‘과태료 실적 압박’을 주장하며 인천남부경찰서의 ‘체납과태료 징수 강화 대책’ 공문 등을 공개하며 비판 글을 올렸다. 1월 2일엔 부하 직원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자 보복성 인사 조치를 한 김경원 전 용산경찰서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처벌해야 한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김 전 서장을 총경에서 경정으로 강등시킨 경찰청의 결정이 ‘솜방망이’라는 항의가 포함됐다.
A 경장의 게시글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일부 정책이 시정되긴 했지만, 내부에선 다른 말이 들려왔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1월 4일과 5일 이틀간 ‘A 경장이 파면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또한 A 경장의 감찰과 관련해 처음으로 조사를 받은 동료가 인천남부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간 날이 지난 1월 6일, 7일로 알려지면서 표적감찰 논란에 힘이 실렸다.
감찰 조사를 받은 관계자의 숫자도 표적감찰 의혹 중 하나다. A 경장의 감찰 사유는 대부분 ‘일반 행실’에 집중돼 있는데, 이런 감찰에 30~40명의 관계자가 감찰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감찰관은 조사 중 A 경장이 관계자 조사가 ‘40명이 넘겠다’고 한 말에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다. 여기에 지난 3월 중순엔 감찰관이 직접 일선 경찰서를 돌며 A 경장의 평판을 조사했다.
지난 3월 16일엔 A 경장의 실명이 거론된 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표적감찰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경찰인권센터(장신중 센터장)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갑질 외 을질 직원도 상존, 대응 필요’라는 문장 옆에 ‘인천청 A 경장 사례’라고 적힌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지난 2월 23일 충남 아산 경찰교육원에서 열린 전국 청문감사관 워크숍에서 배포된 자료였다. 경찰인권센터는 “그 자리에서 감찰담당관이 인천남부서 A 경찰관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옷을 벗길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인권센터에 좋아요도 누르지 못한다고 밝힌 익명의 경찰 관계자가 A 경장에게 보낸 글을 A 경장이 다시 경찰인권센터에 게시했다.
이에 대해 인천남부서 청문감사관실 관계자는 “표적감찰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A 경장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과거 사례까지 나왔다”며 “여러 건을 조사하고 있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지시 불이행과 동료 간의 문제로 나눠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파면 등 징계 사유에 대해 정해진 내용은 없다.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 징계위원회 개최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실제 ‘타깃’은 경찰인권센터?
A 경장 감찰 논란이 지속되면서, 최근 경찰 내부에선 “이번 A 경장의 감찰은 사실상 경찰인권센터 압박용 감찰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경찰인권센터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장신중 센터장과 A 경장을 비롯해 일부 전·현직 경찰관들이 경찰의 부당한 정책과 불합리한 지시를 지적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를 경찰 수뇌부가 ‘상당히 불편해 한다’는 것. 대부분의 전·현직 경찰관들이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데 반해 A 경장은 실명으로 활동했고 결국 그가 감찰 대상이 됐다.
실제로 경찰인권센터에 올라온 게시글 가운데 일부는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이로 인해 비위 사실이 드러난 일선 경찰서 간부 등이 인사발령이나 징계 조치를 받았고, 일부 경찰 제도와 정책이 수정되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내부의 비위가 공개되고 논란이 거세지기도 하면서 전국 일선 경찰서에선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경찰인권센터 활동에 제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3일엔 한 현직 경찰 관계자가 A 경장에게 보낸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현직 경찰관계자는 경찰인권센터에 종종 댓글을 달았는데, 부서 과장이 그를 따로 불러 “감사실에서 전화가 왔으니 활동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이번 감찰로 경찰인권센터에서 ‘제2, 제3의 A 경장’과 ‘장신중 센터장’이 나오기 힘들 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A 경장은 “이런 과정을 보면서 현직 경찰관들이 목소리를 어떻게 더 낼 수 있겠느냐”며 “경찰은 경직된 수직구조인 데다, 내부 소통 통로가 원활하지 않다. 수십 년 전에나 용인될 만한 불합리한 정책이나 근무 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다. 경찰관들의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건데 압박만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