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 보호예수 해제와 골드만삭스 보고서 등이 불 지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 2월 6일: 현대글로비스 보호예수 해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더뎠던 이유는 오너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자진 보호예수 때문이다. 2015년 2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현대글로비스 지분 13.39%(502만 2170주)를 블록딜로 매각했다. ‘블록딜’이란 거래소(KOSPI 시장)를 통하지 않고 매입자와 개별 접촉해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500만 주가 넘는 주식을 거래소에 내놓으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기 때문에 큰손과 별도의 거래를 취하게 된다. 당시 블록딜 사전 수요조사에서 경쟁률은 2 대 1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특수관계인 지분 30%가 넘는 기업에서 국내 계열사 간 거래금액이 매출액의 12%를 넘으면 과징금 등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기아차가 생산한 부품·완성차를 운송하므로 그룹 물량이 상당하다. 결국 정 회장 부자는 지분 30%를 초과하는 주식을 처분해야 했다. 현재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6.71%, 정 부회장은 23.29%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 처분과 동시에 정 회장 부자는 자신들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 30%에 대해 2년간 자진 보호예수를 결정했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에 반영돼 있는데, 오너 일가가 처분 의도를 내비치면 주가 폭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호예수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2년간 발목 잡는 족쇄가 됐다. 다른 그룹들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나서는 동안 현대차그룹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지배구조 개편 관련 어떤 시나리오를 취하더라도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정 회장 부자는 현대글로비스 주식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 3월 17일: 현대자동차의 로열티 수취 공시
3월 17일 현대차의 공시 하나가 지배구조 개편설의 물꼬가 됐다.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현대글로비스로부터 2017년 연간 브랜드 사용료 명목으로 각 89억 4900만 원, 50억 원을 수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금액은 각 사 매출액의 0.03~0.05%로 추정된다. 증권가에서는 130억여 원 외에 현대차가 전체 계열사로부터 받을 브랜드 사용료는 약 2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그간 그룹 광고 집행 시 계열사별로 갹출하던 형태에서 현대차가 비용을 집행하고 계열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 것이 명확하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변화로 설명하고 있다. 현대위아 등 기타 계열사들로부터도 로열티를 수취하게 되지만 50억 원 넘는 경우 공시대상이므로 이를 밝힌 것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건설은 브랜드 공동소유자로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기아차의 경우는 현대차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룹 통합 광고 시에만 비용을 배분하는 방식이 계속 적용된다.
현대차의 로열티 수취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으나, 이는 며칠 후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현대차 관련 리포트에서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잠정 지목한 계기가 됐다.
# 3월 20일: 골드만삭스 “현대차가 지주사 된다”
최근 현대차 주가 상승에 불을 붙인 리포트다. 3월 20일 골드만삭스는 ‘지배구조 개편 경로가 명확해진다: 엄청난 잠재력이 드러날 것’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주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기존의 증권가 분석에 비하면 파격적인 분석이다. 그간 제기된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가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현대차를 지목한 이유로 △지배주주 입장에서 인센티브가 높고 재무적 여력이 크고 △배당을 늘릴 대량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룹 내 로열티 수취가 가능한 유일한 회사라는 점을 들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78%,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3.88%를 보유하고 있다(이하 2016년 3분기 사업보고서 기준). 현대모비스 입장에서 손자회사뻘 되는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보유하고 있다. 손자뻘 회사가 할아버지뻘 회사를 소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차를 정점에 세우면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3.88%를,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보유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2016년 3분기 현대차 분기보고서 기준).
현대모비스 대신 현대차가 중심이 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정몽구 회장만 현대모비스 지분 6.96%를 갖고 있다. 기존 증권사 시나리오에는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현대모비스 주식을 사는 것이 유력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현대차가 지주사가 될 경우 정 부회장은 아버지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 지분 5.17%를 상속받고 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상속세를 납부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주식 현물로 납부한다고 해도 상속 이후 정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국민연금공단을 제외한 개인으로서는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다만 지주회사 설립에 드는 비용이 관건이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김진우 애널리스트가 3월 22일 발표한 ‘현대차그룹, 예고 없는 지배구조개편과 시나리오 점검’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할 경우 드는 비용은 오너 일가 1.5조 원, 현대모비스 2.5조 원이 소요된다.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할 경우는 오너 일가 2.7조 원, 현대차 5.0조 원이 필요해,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하는 것보다 2배가량의 비용이 든다. 윤태호·김진우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현대차보다는 현대모비스의 인적분할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대해 “증권사 분석 보고서에 일일이 답변을 내놓진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증권가는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크게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전환 △현대차를 지주사로 전환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각각 인적분할 후 3사 지주사 합병 △정 부회장 글로비스 지분 매각 후 현대모비스 주식 매입 등 4가지로 보고 있다. 각각의 방식에 장단점이 있어 현대차그룹이 어떤 선택을 할지 뚜렷한 윤곽이 나오진 않았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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