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맨의 귀환’… 거물의 ‘뒷방’ 연다
▲ DJ 정권 당시 ‘얼굴 없는 실세’ 조풍언 씨. 현재 개인 비리로 구속 중인 그의 수사 결과에 따라 초대형 권력형 비리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15일 조풍언 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대우정보시스템의 대주주인 조 씨가 2006년 3월 203만 주(약 101억 원) 규모의 대우정보시스템 전환사채(CB)를 액면가 5000원에 제3자에게 배정해 회사에 365억여 원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를 적용했다.
주목되는 점은 이 CB를 사들인 ‘글로리초이스차이나’(글로리초이스)라는 중국계 회사의 정체다. 글로리초이스는 당시 대우정보시스템 CB를 전액 인수한 뒤 지난해 11월 13일 주식으로 전환, 대우정보시스템의 지분 34.5%를 취득해 최대 주주가 됐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글로리초이스의 등장으로 홍콩법인 KMC인터내셔널사(KMC)를 통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71.59%를 보유해 1대 주주로 군림하던 조 씨는 2대 주주로 내려앉게 됐다. 지난해 말 대우정보시스템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글로리초이스(34.1%), KMC(28.1%) 외에 대우조선해양, 한국정보통신학원, 동아일렉콤, 오렌지신용금고 등이 주요 주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검찰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의 소송으로 KMC 보유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넘겨주게 될 위기에 처하자 조 씨가 사실상 자신의 회사인 글로리초이스를 이용해 CB 발행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우중 전 회장 | ||
당시 검찰은 조 씨가 되판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매각대금 중 일부가 김우중 전 회장의 아들에게 유입된 사실과 조씨가 99년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입 외에도 대우 계열사 중 수익성과 채무구조가 탄탄한 회사들을 골라 인수 작업을 진행했던 정황을 들어 이 돈의 실소유자와 최종 귀착지를 밝히는 데 주력했으나 결론을 내진 못했다. 조 씨는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사들였을 즈음 동시에 아도니스 골프장과 대우통신 TDX 사업부분 인수에 나서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킨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김우중 전 회장과 조풍언 씨 등을 상대로 낸 647억대 대여금 청구 및 주주권 확인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며 법원에 의해 KMC가 보유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은 사실상 김우중 전 회장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당시 조 씨는 BFC로부터 KMC에 송금된 자금에 대해 “김 전 회장이 (나를 통해) 러시아 투자자로부터 미화 7500만 달러를 빌려 사용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변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조 씨가 한 달 만에 항소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져 그 배경을 두고 의문을 낳았다. 항소를 포기한 것은 그동안의 주장과 달리 KMC 등 명의로 사들인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이 김 전 회장의 것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현재 검찰은 조 씨가 KMC 명의로 보유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이 김 전 회장의 소유인지, 조 씨가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CB를 저가 발행했는지 등을 추가로 수사 중이다. 검찰은 당시 CB를 사들인 글로리초이스에 대해서도 사실상 조 씨 소유의 회사로 결론짓고 조 씨가 대우정보시스템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CB를 발행해 자기 소유의 회사로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 ||
2001년 3월 502억 원에 삼일빌딩을 매입한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는 주소지가 홍콩 헹샨센터 23층으로 되어 있으나 실체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당시 미국 내 한인언론인 <선데이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삼일빌딩은 내가 주도해 12명의 투자자를 모아 매입한 것이며 이때 설립한 회사가 ‘스몰록 인베트스먼트’였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삼일빌딩 매입자금의 출처 역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조 씨가 삼일빌딩을 당시 시세보다 60억 원 가까이 싸게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특혜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조 씨는 DJ정권 말기인 2002년 10월경부터 국내 사업을 정리하면서 이 빌딩을 매각하려고 내놓았는데 만약 팔렸다면 2년 만에 200억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뛰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삼일빌딩의 매입자금 역시 김우중 전 회장 측으로부터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 씨는 미국 내에도 캘리포니아 컨트리 클럽 등 3개의 골프장과 고급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있다. 무기중개상으로 큰돈을 쥐었다지만 수천억대의 골프장 매입 자금 역시 출처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조 씨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향후 검찰 수사로 조 씨가 굴려온 거대자금의 출처와 정치권 로비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이번 사건은 초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번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조 씨는 김 전 회장 혹은 옛 권력 실세의 재산 대리인일까, 아니면 ‘의혹의 제물’이 된 피해자일 뿐일까. 검찰이 내놓을 수사결과에 벌써부터 세인들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