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은 탄핵 및 검찰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줄곧 주장했다. 최순실 씨의 사리추구는 몰랐다고 했고, 최 씨한테 속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것의 증거라도 되는 양 자신은 단 한 푼의 뇌물도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
또 뇌물죄의 직접 고리인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은 문화융성이라는 국가적 과제 수행의 일환이었고, 기부금은 다 재단에 남아있다고 했다. 수사 검사 앞에서 ‘내가 430억 원의 뇌물을 받으려고 대통령이 됐단 말이냐’며 흥분해 실신 직전까지 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은 이전 대통령들의 뇌물사건과는 겉모양은 다르다. 과거엔 대통령이 보자고하면 기업인들은 돈 보따리를 싸들고 청와대로 갔다. 그 돈은 그대로 대통령 비자금 계좌로 들어갔다. 당시 어느 대통령은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았더니 맘이 놓여 사업도 잘된다고 하더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 돈이 많게는 수조 원, 적어도 수천억 원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이 그것에 비할 때 433억 원은 푼돈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리추구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몰랐으므로 죄가 없으려면 모를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게 형법 16조(법률의 착오) 규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알아챘을 일이고, 그런 주의의무는 대통령에겐 당연 의무에 해당된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에 더하여 “최 씨를 조심하라”는 쓴소리를 멀리함으로써 청와대 비서진은 최 씨 문제에 입을 닫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로써 자신에게는 ‘불통’의 벽만 쌓였다.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또 두 재단 같은 성격의 사업은 이전 정부에서도 해온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사업은 기본적으로 정부 예산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런 기부가 형태만 달리했을 뿐 이전 대통령들의 수뢰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게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뇌물의 기준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져 있었다. 그것을 박 전 대통령은 몰랐다.
일부라도 정부 예산이 들어가면 정부의 간여로 개인의 사리추구는 어렵게 된다. 청와대가 전경련에 압력을 가해 조성된 기금의 운영에 정부나 전경련이 간섭할 근거는 없었다. 그 이유를 최 씨는 물론 최 씨 사건을 고발한 고영태 씨는 더 잘 알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만 몰랐다.
탄핵 이후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대통령이었음을 새삼 알게 됐다. 그녀는 혼자서는 머리를 빗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사저로 온 이후 매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날 아침까지도 미용사를 불러들였다. 구치소에 와서야 머리 손질쯤은 내 손으로 하고, 변기도 더러는 남과 같이 쓰기도 하는 것을 알게 된 게 안타깝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