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701명 재산내역 전수조사…1급 이상 81명 비상장 주식 대거 보유
120억원대의 차익을 거둔 진경준 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사건은 지난해 3월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가 발단이 돼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주식 대박’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진경준 전 검사장.
<일요신문>이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의 재산공개 대상 직위 가운데 1급 이상 및 1급 상당의 고위 공직자 701명의 재산내역을 전수조사 한 결과 전체의 11.55%에 달하는 81명이 본인이나 직계가족 명의로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내역은 지난달 23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공개한 ‘2017년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른 것이다.
이들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은 신고액 기준으로 모두 84억 6671만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는 한국금융투자협회의 한국장외시장(K-OTC)에서 거래되는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 모두 액면가로 신고된 것이어서 실제 가치는 훨씬 커질 수 있다. 지난해 ‘진경준 주식 대박’ 여파로 정부가 올해 공개된 재산변동사항에 대한 심사를 강화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진 전 검사장과 유사한 사례가 다른 고위 공직자 중 적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큰 규모로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는 고위공직자는 김임권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이다. 김 회장은 본인과 배우자 등의 명의로 혜승수산 비상장 주식 10만주와 제주혜승수산식품 1만주, 혜영수산 주식 700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액면가로는 모두 16억 7000만 원어치로 81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아울러 김 회장은 현재 혜승수산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현직 대표로 회사 경영에도 관여하고 있다. 혜승수산 홈페이지 확인 결과 김 회장이 대표이사로 기재돼 있다.
국가 공무원법 제64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공무 이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수협중앙회장은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으로 이 경우 공무원법 규정과 배치될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수협 측은 “혜승수산 대표직을 맡고 있는 건 어업인 신분이어야지만 회장직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수협중앙회가 특수법인이긴 하지만 정확히 말해 공직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회장은 비상근 명예직으로 관계부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겸직에 문제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 다음으로는 변윤성 한국석유공사 상임감사가 가장 많은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변 감사는 본인과 배우자 등의 명의로 IT업체인 피치텔레컴 비상장주식 20만 6329주와 지주회사인 피치홀딩스 주식 8만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등록했다. 액면가는 14억 3164만 5000원에 달한다. 피치텔레컴은 변 감사가 지난 1999년 설립한 회사로 그는 지난 2015년 2월 취임하면서 공식적으로 피치텔레컴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역시 IT기업 위니텍의 비상장 주식 186만 9750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액면가는 9억 3487만 5000원어치로 위니텍은 강 장관이 지난 1997년 창업해 대표까지 역임한 기업이다. 현재 위니텍의 대표는 강 장관의 남편인 추교관 씨가 맡고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겸직을 금지한 국회법에 따라 강 장관은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이 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윤택림 전남대학교 병원장은 본인과 배우자 등의 명의로 청산녹수 7만 6670주, 주식회사 이지 5만주, 에버그린모터스 1만주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등록했다. 액면가는 모두 5억 8833만 5000원어치다. 윤 원장이 7만여 주를 보유하고 있는 청산녹수는 같은 대학 전통양조과학기술연구소와 관련된 전통주 제조업체다.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영진공사와 영진운수 주식 8만여 주(3억 9805만원)를, 서문희 한국보육진흥원은 배우자 명의로 중앙일보미디어디자인 주식 7만주(3억 5000만원)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한상순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지사는 본인과 배우자 등의 명의로 인조모발원사 제품 수출업체 세림화이버의 주식을 각각 3만5000여 주, 액면가 1억 7880만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 지사 역시 기업인 출신으로 취임 전까지 세림화이버의 대표이사직으로 있다가 부인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군 장성도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김운용 제2군단장은 합동에너지 3만여 주(1억 4128만 5000원),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바이젠 2500주(2500만원), 장경석 육군항공작전사령관은 레페리 뷰티 엔터테인먼트와 Lifesite 등 7만여 주(213만원), 박종진 3야전군 부사령관은 SK건설 124주(62만원)를 본인 혹은 가족 명의로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고위 공직자 비상장 주식 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가격이 형성돼 있지 않고 내밀한 거래가 가능한 비상장 주식의 특성상 탈법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비상장 주식 투자는 자칫 공직자들의 재산 축소 신고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공직자들이 업무를 통해 해당 주식의 가치를 높이려고 외압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장유식 변호사는 “비상장 주식 관련된 고급 정보는 특권층이 접근하기 유리하고 이 과정에서 정보의 불균형이 있을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비상장 주식은 수익이 높고 위험도도 높은데 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선 고급정보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고위 공직자들에게 이 고급정보가 어떤 형태로든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진경준 전 검사장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로 올해부터 소득에 비해 재산이 지나치게 늘어난 경우 재산 취득 경위에 대해 소명을 요구하고 심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공개된 모든 공직자의 재산변동사항은 오는 6월 말까지 심사가 이뤄지며, 심사결과 등록재산을 거짓으로 기재했거나 중대한 과실로 재산을 누락 또는 잘못 기재하는 등 경우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조취가 취해질 예정이다.
정만석 인사혁신처 윤리복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공직자 소득에 비해 재산이 너무 많이 늘어난 경우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재산을 취득했는지 소명을 요구하고 심사 강화할 것”이라며 “2000만 원 이상의 비상장주식을 보유한 경우에 대해서는 어떤 경위로 취득하게 됐는지 자세한 소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공직자 재산공개로 뒤바꾼 운명…진경준 주식대박 사건 1년 진경준 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이 드러난지 1년여 시간이 지났다. 현재 구치소 수감 중인 진 전 검사장은 지난해 3월 25일 공개된 ‘2016년 정기 재산변동사항’이 발단이 돼 공직에서 퇴출된 데 이어 형사처벌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개된 진 전 검사장의 재산 총액은 156억 5909만 원이다. 진 전 검사장은 법원·검찰 등 법조계 재산공개 대상자 중에선 최고 자산가로 기록됐다. 진 전 검사장의 재산은 주로 주식거래를 통해 형성됐다. 자료에 따르면 진 전 검사장은 지난 2015년 게임회사 넥슨의 주식 80만 1500주를 126억 원에 처분했다. 진 전 검사장이 주식투자로 그해에만 37억 9853만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되며 주식 매입 과정 등을 두고 의혹이 제기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김수남 검찰총장은 같은해 7월 이금로 인천지검장을 특임검사로 지명, 진 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도록 했다. 이후 특임검사팀에 피의자로 출석한 진 전 검사장은 긴급체포됐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검찰 68년 역사상 첫 현직 검사장의 구속이었다. 결국 진 전 검사장은 8월 18일 검사장 자리에서 해임됐다. 재판 과정에서 진 전 검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그는 “친구지간에 베푼 호의와 배려가 뇌물수수로 매도됐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친구인 김정주 회장은 “뇌물이 맞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3일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진 전 검사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13년과 추징금 130억 원, 벌금 2억 원보다 훨씬 낮은 형량이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이 진 전 검사장에게 준 공짜 주식을 뇌물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해 핵심 혐의가 무죄로 결정되면서 형량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검찰 항소로 현재 서울고법에서 진 전 검사장 사건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