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임명된 기관장 절반이 관료 출신…황교안표 ‘알박기’ 인사 의혹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난 4월 5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으로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내정하면서 밝힌 입장이다. 청와대 추천 위원은 국회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내정 후 임명장만 수여하면 임명이 완료된다.
김 정책실장의 내정이 확정되면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지난 3월 말 김 정책실장의 내정설이 알려지면서 야권과 시민단체, 이례적으로 방통위 노조까지 나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김 실장은 그동안 ICT정책 등과 관련한 성과가 높아 ‘업무형 관료’라는 평가도 있지만, 전형적인 ‘박근혜 인사’로 꼽혀왔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시절 방통위 방송진흥기획관·국제협력관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박근혜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보방송통신비서관을 지내면서 방통위 권한을 일방적으로 대폭 축소하는 등 ‘불통 관리자’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야당과 방통위 노조 등은 내정이 확정된 지난 4월 5일 성명서를 내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 파행에 일조해서 책임을 물어야 할 김 실장을 오히려 보은성 인사를 통해 차관급으로 영전시킨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 대행은 행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설득력이 낮다는 지적이다. 앞서 방통위는 조기 대선과 위원회 인사 등을 앞두고 업무 공백이 우려돼 종편 재승인 심사 등 주요 쟁점 사안을 다수 위원의 임기가 만료되는 3월에 서둘러 끝냈다. 야당 측 한 관계자는 “이번 청와대의 방통위원 임명은 ‘알박기’일 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방통위원은 정권이 교체되면 사직하는 일반적인 차관급 인사와 달리 임기 3년이 법으로 보장된다.
# 황 권한대행, 논란 속 인사 강행
2016년 기준 현재 공공기관은 총 321개로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89개, 기타 공공기관 202개로 분류한다. 대통령은 헌법 등에 따라 공기업·공공기관의 기관장, 3급 이상 정부 고위직 1500여 명, 감사 등에 대한 임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 준정부기관 등 장관이 임명하는 경우에도 청와대 등과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직무 정지 직후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범위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공공기관 인사권 행사에 대한 법조문이나 규정이 명확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선 이후 곧바로 대대적인 공공기관장 인사가 있을 예정이라 황 권한대행이 무리하면서까지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황 권한대행이 사실상 6개월 동안 집권하게 돼 행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인사권 강행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어도 미리 임명된 공공기관장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이상 억지로 내보낼 방법은 없다. 황 권한대행이 자기 사람이나 박 전 대통령 시절에 낙점된 인사를 공공기관장 자리에 심을 가능성이 있어 야권이 견제를 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황 대행은 권한대행 초기부터 인사 강행 의지를 비췄다. 지난해 12월 12일 대통령비서실 업무 보고에서 황 권한대행은 이례적으로 서열상 후순위인 인사수석비서관의 보고를 가장 먼저 받았다는 후문이다. 황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을 시작하고 처음 단행한 인사는 한국마사회장 임명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6일 정유라 씨의 독일 승마 훈련과 관련 삼성과 최순실 씨를 잇는 핵심 다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은 현명관 전 한국마사회장의 후임으로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임명했다. 한국마사회장은 차관급으로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지만, 역대 새 정부가 가장 먼저 챙겨온 자리로 통하고 있다.
# ‘관피아’ 관행 부활?
전직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퇴직 관료의 취업 제한을 강화한 일명 ‘관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후 낙하산 인사가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이런 관행이 부활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4월 6일 기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임명된 공공기관장의 절반이 관료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신문>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임명된 공공기관장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공공기관장 45명 가운데 50%(23명)가 정부 관료 출신으로 드러났다. 특히 황 권한대행 체제에서 임명된 기관장은 총 28명으로, 이 가운데 21명이 관료 출신이다.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 관료 출신 인사가 이전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사회공공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 2013년 6월 당시 295개 전체 공공기관에 정부 관료 출신이 기관장으로 간 곳은 77개(26.1%)였다. 또한 지난해 9월 말에는 315명의 공공기관장 가운데 주무부처 관료 출신 기관장은 87명(27.6%)이었다. 전체 공공기관의 정부 관료 출신 기관장 비율이 26~27%인 데 반해 황 권한대행 임명 정부 관료 출신 기관장 비율은 50%나 되는 것.
같은 기간 기관장 아래 임원 인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기간 새로 임명된 임원 55명 가운데 80%인 44명이 행정관료 출신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4월 6일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황 권한대행 체제에서 단행된 인사 범위를 넓혀 “우리 당 정책위 자료를 보면 황 권한대행은 그동안 공공기관장을 제외하고도 100여 명이 넘는 인사에게 임명장을 줬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의 인사가 편중된 것도 논란이다. 앞서의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은 대구 영남고,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대구·경북(TK) 인사다. 비슷한 시기에 인선된 오경태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장은 대구 심인고를 졸업했다. 앞서의 정치권 관계자는 “‘알박기’나 ‘친박(친박근혜)계’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올 법한 인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기관장뿐만 아니라 감사 등 주요 보직에도 전직 관료들이 알게 모르게 내려가고 있다. 계약 연장 등 드러나지 않은 수치까지 포함하면 관료 출신 인사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황 권한대행의 입장처럼, 공공기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장 공백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책 연속성과 안정을 위해서라도 내각 및 공공기관 인사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대국민 서비스 기관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부터 이미 수개월간 공석이었던 자리를 대선 이후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며 “검증된 인재를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임명했다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