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대 권준수 교수팀 “바둑은 골프 스윙·축구 슈팅처럼 직관력이 좌우하는 게임”
‘바둑교육의 효과’는 학문적으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채 막연히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믿음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팀이 예로부터 즐겨오던 바둑이 두뇌의 기능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 연구진에 의하여 다시 한 번 확인돼 화제다. 연구팀은 뇌 영상연구를 통하여, 장기간의 바둑훈련이 두뇌 기능을 발달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권준수 교수는 장기간의 바둑훈련이 직관적 판단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권준수 교수 연구팀은 이미 2014년 ‘바둑이 좋은 건 알겠는데 과학적 증거는 있나?’라는 의문에 ‘근거 있다!’라는 답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해내 관심을 모았었다.
연구팀은 바둑을 둔 집단과 바둑을 두지 않은 집단으로 나눠 바둑교육이 뇌 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다. 두 집단의 평균 연령은 17세였고, 평균 12.4년간 바둑을 훈련한 바둑 전문가 17명과 일반인 16명이 실험 대상이었다.
연구 결과, 바둑을 둔 집단은 바둑을 두지 않은 집단보다 정서적 처리와 직관적 판단에 관여하는 편도체와 안와전두엽 부위, 공간적 위치 정보를 처리하는 두정엽 부위가 활성화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바둑교육이 깊은 통찰력을 갖도록 돕고, 직관적 판단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지난 4월 11일 권준수 교수 연구팀은 바둑과 뇌 기능에 대한 또 하나의 연구 결과를 내놓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바로 프로기사를 비롯한 바둑 전문가의 뇌 기능을 연구해보니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
권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뛰어난 프로기사일수록 수학적 계산력보다는 오히려 직관력과 감정 자제력이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작년 3월 알파고를 무너뜨린 이세돌 9단의 승부수도 사실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수였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바둑 전문가들의 뇌는 전두엽과 시상 등을 연결하는 뇌백질의 연결성이 같은 상황에서 일반인보다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다시 말해 각도 등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런 동작에서 이뤄지는 축구 농구의 슈팅, 또는 골프의 스윙처럼 바둑 기사의 승부수도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이며 순간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연구팀 이태영 교수는 “골프나 테니스처럼 자세를 계속 머리에 그리는 것 같은 뇌기능이 바둑 기사들도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프로기사들은 감각적이고 직관인 능력보다 수리력이나 계산이 탁월할 것이라는 추측과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다.
연구팀은 계속해서 감정의 중추를 담당하는 편도체의 부피가 작은 것도 기사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감정 조절 능력이 좋다는 의미를 가지지만(불리해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한편으론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가대표 감독 목진석 9단은 “전문 기사들의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바둑 외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대인관계나 교류 등에 취약한 게 사실”이라며 사회성 부문이 취약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는 또래 집단과의 교류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준수 교수는 발표회를 정리하면서 “바둑을 통한 이러한 발견은 인간의 뇌기능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기간 반복된 수련을 통해 뇌기능이 변화할 수 있다는 기존 가설을 지지해주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이번 연구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알파고의 아버지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바둑을 보는 눈과 동일한 결과여서 눈길을 끈다. 허사비스는 뇌인지과학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한데 그는 일찍이 “바둑은 매우 직관적인 게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