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 전 중앙일보 기자, ‘태조 왕건의 천안 역사문화콘텐츠화 시론’서 주장
천안지역은 왕건이 직접 세운 ‘도시’로서, 그 역사·문화·자원적 중요성을 인식해 도시브랜드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천안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조한필 전 중앙일보 기자는 학술진흥지인 ‘한국중세사연구’에 ‘태조 왕건의 천안 역사문화콘텐츠화 시론’을 실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남한에서 왕건을 역사문화적으로 기억해야 할 제1지역은 천안”이라며 “천안이 고려 태조 왕건을 기념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역설했다.
17세기에 제작된 ‘동여비고’. 가운데 ‘천안’이라는 지명과 우측 상단 ‘왕자성(王字城)’, 좌측상단 회고정(懷古亭)이 표기돼 있다.조한필 제공
# ‘천안’, ‘성거산’, ‘유량동’ 지명에 남은 왕건의 흔적
그는 논문에서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을 비롯해 태조산, 성거산, 유량동, 부대동 등 지역에 남아있는 여러 지명과 그에 얽힌 설화가 천안과 고려 태조 왕건과의 깊은 인연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천안’의 탄생이야기는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 기록돼 있다. ‘천안’이라는 지명은 왕건이 서기 930년 ‘천안도독부’를 설치하며 지어진 것이다. 조한필 씨는 “천안은 ‘하늘이 편안해진다’ 또는 ‘천하가 편안해진다’는 뜻으로, ‘천안(天安)’은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의지를 담은 지명”이라고 해석했다.
16세기 지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천안 시민들이 즐겨찾는 ‘성거산(聖居山)’은 왕건이 수헐원(현 직산읍 수헐리)에서 이 산을 보며 “산신이 있는 곳”이라며 지은 이름이다. 또한 천안 동남구의 ‘유량동(留糧洞)’은 고려시대 군의 식량기지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 천안은 ‘왕업을 일으킨 땅(興王之地)’
특히, 동남구 태조산과 유량동 일대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왕건의 군사시설 ‘왕자성(王字城)’과 정자인 ‘회고정(懷古亭)’에 얽힌 설화는 천안이 왕건의 고려건국의 핵심 지역임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후백제와 남쪽으로 맞닿아 있는 천안에 군사시설을 설치하고 병력을 길렀다. 이때 군사를 훈련하기 위해 쌓은 보루가 ‘왕자성’이다.
이 왕자성 안에 있던 연병장이 ‘고정(鼓庭)’인데, ‘북을 치며 군사를 훈련하는 넓은 마당’이라는 뜻으로 현재 천안시 서북구 ‘부대동’의 지명 유래가 됐다.
당시 천안지역의 수령이었던 성원규(成元揆)는 고정(鼓庭) 안에 있던 정자가 낡아 크고 웅장한 새 정자를 지었다.
그는 고려말기 문인인 이곡(李穀)에게 새 정자의 이름을 부탁했고, 이곡은 이 정자를 ‘회고정(懷古亭)’이라 불렀다. ‘왕건의 대업을 회고한다’는 뜻으로 고려 건국의 발판을 이룬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곡은 고려말기 신진사대부였던 목인 이색(李穡)의 아버지다.
이곡이 남긴 ‘회고정기(懷古亭記)’에는 당시 성원규가 ‘회고정’을 지으며 “이 곳(천안)은 왕업을 일으킨 땅(興王之地)으로, 태조의 신궁(왕건 사당)이 있는 곳”이라 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한필 씨는 당시 성원규가 천안을 ‘왕업을 일으킨 땅(興王之地)’으로 칭한 것으로 볼 때, 천안이 명실상부한 고려 건국의 핵심 지역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6월 천안 목천읍 동리의 전원주택 텃밭에서 출토된 얼굴상. 조한필 씨는 이 얼굴상이 ‘왕건 추정 청동상’으로 보고 이 지역이 왕건 사당이 아닌 왕건의 모습을 동상으로 형상화해 모신 ‘진전사찰(임금의 어진을 봉안, 향사하는 처소)’이 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출토품과 관련, 오는 9월 천안시는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조한필 제공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왕자성과 고정, 그리고 왕건 사당이 모두 왕자산 밑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 문인들은 천안을 ‘왕업을 일으킨 땅’으로 여기며 왕건 사당에 참배하고, 왕건과 연관 지은 글을 짓곤 했다고 전해진다.
왕건 사당은 고려 초에 세워졌으며 고려 말까지 존재했다.
현재 왕건 사당, 회고정, 왕자성 등은 천안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사학자들은 조선이 ‘고려 흔적 지우기’를 위해 모두 없앤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천안시, 왕건의 역사문화콘텐츠 개발 나서야”
조한필 씨는 비록 눈에 보이는 유적은 없지만 고문헌의 기록과 지명의 유래, 설화 등으로, 천안은 고려 건국(興王之地)에 큰 의미를 갖는 지역이었음을 인식할 수 있으며 마땅히 이를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왕건의 길·왕건 공원 조성 ▲왕건기념관 조성 등 유형콘텐츠와 ▲왕건 행차 퍼레이드 ▲왕건 스토리텔링 등 무형콘테츠로 나눠 제안했다.
그는 우선 천안 동남구의 유량동과 태조산공원까지 뻗어있는 ‘태조산길(도로명주소)’을 ‘왕건의 길’로, 태조산공원을 ‘왕건 공원’으로 개명하고 이곳을 왕건콘텐츠의 핵심지역이자 거점지역으로 조성하자고 제시했다.
아울러 길과 공원에는 왕건이 천안도독부를 설치하고 후백제를 정벌하던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안내판과 왕건기념관을 설치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천안과 고려시대의 연관성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천안도독부가 설치된 음력 8월 8일(양력 9월 8일) 전후로 왕건 행차 퍼레이드를 개최하자고 했다.
그는 “천안시가 왕건의 역사문화자원적 중요성을 절감하고, 그의 역사문화콘텐츠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며 “고려사 연구자, 콘텐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천안시 왕건콘텐츠위원회 설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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