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대장’ 없고 ‘해바라기’만 그득하니…
▲ 서울시청 앞에 모인 촛불시위 인파와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 | ||
“결국 사람이 문제다. 우선 MB(이명박 대통령 이니셜)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없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때와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한 정치적 동지가 없다. 모두 자기 살 궁리만 한다. 그러다 보니 MB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전부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최근 쇠고기 위기 정국을 겪으면서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정국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을 때 MB 측근들 가운데 그 누구도 방패를 들고 앞에 나서서 온몸으로 막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한 “이 대통령은 지난 경선·대선 때는 힘든 일이 있으면 수시로 불러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그들이 그를 대신해 위기국면을 돌파해 주었는데 청와대에 와서 보니 그런 사람들이 없어져버려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입성 뒤 이 대통령이 가장 아쉬워한 대목이 바로 자신을 위해 맨몸으로 뛰어줄 ‘충신그룹’의 부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왜 전직 대통령들이 충신그룹을 육성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반응도 나온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장세동 경호실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최형우 김동영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박지원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문재인 비서실장이나 안희정 이광재 유시민 씨 등이 ‘흑기사’를 자처하며 현안마다 맨몸으로 대통령을 지켜낸 인물로 손꼽힌다.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스타로 만든 5공 청문회에서 온몸으로 전 전 대통령을 보호하며 죄를 뒤집어썼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전 전 대통령이 절대 신뢰하는 인물로 손꼽혀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측근그룹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통한다.
‘좌 형우, 우 동영’이라 불리던 최형우 김동영 전 의원(1991년 작고)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위대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 가운데 최고로 김동영 전 의원을 주저 없이 꼽을 정도로 그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다. 김 전 의원은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씨가 3당 합당을 한 직후 전립선암을 선고받았다. 그는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남겨두고도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기저귀를 차고 화장실을 드나들며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았던 열혈 측근이었다. 김 전 의원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서울대 병원에서 작별하는데 “총재님! 대통령이 되시는 것을 못 보고 갈 것 같아 죄송합니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뒤 “나는 김동영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라고 회고록에서 밝힌 적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박지원 의원도 ‘충성그룹’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충정맨’이다. 그는 사석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서만 임명장을 6번 받았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야당 시절 대변인 임명장부터 시작해 청와대에서 공보수석, 정책기획수석, 특보, 비서실장 등을 거쳤던 것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 말 한 사석에서 지인들이 “김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반드시 사단이 날 테니 원래 터전인 미국으로 미리 돌아가라”고 하자 “나는 영원한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니셜)의 비서실장이다. 자기가 모시는 사람과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비서실장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느냐”라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박 의원은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감옥생활을 거치며 18대 총선에 당선,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장외 경호실장’으로 통하는 유시민 전 의원이 정치적 동지를 자임하며 지금도 ‘노무현이즘’을 설파하고 다닌다. 여기에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부산파들이 끝까지 청와대를 지키며 ‘노무현 맨’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다시 이명박 대통령 문제로 돌아가 보자. 쇠고기 파동으로 청와대가 촛불의 함성으로 뒤덮였을 때 이른바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의원 중 그 누구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며 정면돌파를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의원들은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재협상을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일부 친이 그룹 의원들이 민심을 그대로 전달한 것과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비판 사이에서 어느 것이 맞다는 가치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굉장히 서운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왜 이 대통령에게는 ‘나의 사람’이 없느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대통령은 철저하게 자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2인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선 때부터 그를 보좌했던 한 특보는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아래에는 2인자가 없다. 업무별로 2인자가 있을 뿐이다. 교육문제가 있으면 자신이 믿는 교육전문가에게 일을 시키고 직접 보고 받고 직접 판단한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당신 거기에 대해 알아’ 하고 면박을 준다. 결국 종합 2인자는 없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분할통치’(divide and rule)에 매우 능했다. 이 때문에 당시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나 박종규 전 경호실장 등은 모두 중도 낙마했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비극을 가져오기도 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간 2인자 다툼의 결정판이 10·26 시해 사건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둘째, 이 대통령의 충신그룹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의 정치적 비전과 가치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반독재 민주화’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 타파와 권위주의 청산 등 기존 정치 질서의 개혁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뜻으로 뭉친 일종의 정치적 동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 충신그룹은 주군이 위기에 처하면 자신들의 안위와 상관없이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다. 주군의 몰락이 곧 그들의 몰락이라는 강한 연대의식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충신그룹에게는 그런 정치적·철학적 연대감이 희박한 편이다. 실용정치라는 일종의 우산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충신그룹의 희생을 강요할 정도의 명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통령을 위해 목숨 바쳐 뛰어줄 측근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측근들을 향해 “대선을 즈음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모두 한 자리 차지하려고 모인 권력 해바라기들”이라는 냉혹한 평가도 내린다. 지난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한 정치원로는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비겁한 정권이다. 참모들은 모두 자기 자리 지키기에 바쁜 것 같다. 대통령은 욕을 먹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토록 이상한 권력은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곁에 충신그룹이 없다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불행한 전조를 던지고 있다. 특히 향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나 오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할 경우 이 대통령은 급격한 레임덕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권 말기 유시민 의원 등이 몸으로 막아냈지만 결국 열린우리당에서 쫓기듯 내침을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보다 더 충신그룹 ‘풀’이 협소한 이 대통령으로서는 집권 후반 하산을 더욱 조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권력 진공기의 완충기 역할을 해줄 세력이 바로 이 대통령의 친위그룹이란 점에서 그들의 부재는 정권 말기 대통령의 쓸쓸한 퇴장을 더욱 부추기는 바람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치권 일부에선 지금이라도 이 대통령이 ‘친위대’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 그룹의 주축이 어떤 세력이 될 것인지에 따라 여권의 권력 구도는 또 한 번 요동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