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올인 해도 성공 보장 없어…누구나 원하는 ‘최종병기’ 아무나 가질 순 없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썩 특출나지도 않은 외국인 투수. 지난 2년간 피어밴드의 이미지는 그랬다. 피어밴드는 2015년 넥센에 입단했다가 지난 시즌 중반 방출됐다. 외국인 투수 한 자리가 비어 있던 kt는 한국 야구 경험자인 피어밴드로 공백을 응급 처치했다. 올해 재계약을 하긴 했지만, 마땅한 다른 카드가 없어서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무대 3년차가 된 피어밴드의 올해 몸값은 68만 달러. 10개 구단 외국인 투수 20명 가운데 17위다. kt의 기대도 딱 그 정도였다.
반전이 일어났다. 피어밴드는 특급 에이스가 됐다. 개막 후 첫 3경기에서 25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1점만 내줬다. 4월 9일 수원 삼성전에서는 한국 리그 첫 완봉승도 올렸다. 창단 이후 늘 에이스 갈증에 시달려 왔던 kt 마운드에 단비가 내렸고, 피어밴드의 성장과 함께 팀 성적도 동반상승했다. 그 환골탈태의 비결이 바로 너클볼이다. 피어밴드는 지난해에도 너클볼을 실전에서 간간이 던졌지만, 구사 비율은 3% 정도에 불과했다. 올해는 너클볼의 비중이 30% 가까이 된다. 확실한 무기가 생기자 다른 구종의 위력도 더 높아지고 자신감도 붙었다. 너클볼이 피어밴드에게 새 세상을 열어줬다.
피어밴드. 사진출처=kt wiz 홈페이지
# 너클볼은 무엇인가
너클볼은 공이 날아갈 때 발생하는 회전을 최소화한 구종이다. 스크루볼, 자이로볼과 함께 현대 야구의 3대 ‘마구’로 불리기도 한다. 손가락 관절(너클)을 구부린 채로 공을 잡는 구종이라 너클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구종들과 달리 손목을 채지 않고 밀어서 던져야 회전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일반적인 구종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회전을 하면서 타자를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너클볼은 회전이 없기 때문에 기류의 저항에 차이가 생긴다. 공의 표면 위에 울퉁불퉁하게 튀어 나온 실밥이 공기와 부딪히면서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공이 춤을 추듯 날아오거나, 왼쪽으로 휘던 공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움직임을 바꾸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는 자신의 저서 <타격의 과학>에 이렇게 썼다. “너클볼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다. 그 공을 제대로 쳐본 적이 거의 없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조언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배트를 짧게 쥐고 오직 맞히는 데 집중해라. 그 공을 잡아 당겨 장타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주겠다. 그나마 너클볼은 포수도 종종 잡지 못한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스스로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라고 자부했던 윌리엄스조차 너클볼에 한해서는 패배를 인정했다. 그 정도로 너클볼은 타자가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공이자 투수가 컨트롤하기 가장 힘든 공, 그리고 포수가 가장 받기 어려운 공으로 꼽힌다.
너클볼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최초의 너클볼 투수를 논할 때도 다양한 이름이 등장한다. 20세기 초반 활약했던 필라델피아의 루 모렌과 인디애나폴리스의 에디 시콧이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창시자다. 이들은 직구와 속도가 다른 공을 던져 타자를 혼란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 너클볼 그립을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시콧은 손가락 관절을 구부린 상태로 검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공을 끼워 던지기 시작하면서 메이저리그 투수로 승격됐다. 이후 시콧의 동료 투수였던 에드 서머스가 이 구종을 진화시켰다. 엄지로 공의 균형을 유지하고 손톱을 이용해 공을 밀어 던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1880년대 투수였던 토드 램시가 너클볼을 발명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지 힘줄이 잘려 나가는 사고를 당한 램시가 셋째 손가락을 쓰지 않고 공을 던지려다 너클볼의 그립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너클볼을 전문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최초의 투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1938년 워싱턴에서 뛰었던 더치 레오나드다. 그는 너클볼의 힘을 앞세워 메이저리그 통산 173승을 올렸다.
# 유명한 너클볼러는 누가 있나
메이저리그에서도 너클볼을 잘 던지는 투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가장 유명한 선수는 단연 필 니크로와 찰리 허프, 팀 웨이크필드, 그리고 R.A 디키다. 니크로는 너클볼을 던지면서 통산 318승을 올려 1997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다. 애틀랜타는 그의 등번호 35번을 영구 결번시켰다. 야구광으로 유명한 허민 전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직접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을 배운 일화도 유명하다. 그 정도로 상징적인 존재다. 그의 동생인 조 니크로 역시 20승을 올린 너클볼 투수였다.
허프와 웨이크필드는 그 계보를 잇는 선수들이다. 허프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활약할 때 피칭을 지도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는 못했지만, 통산 216승을 올린 명 투수였다. 텍사스 구단 자체 명예의 전당에는 이름을 올렸다. 디키의 너클볼 선생님으로도 알려져 있다. 웨이크필드는 2000년대 활약한 투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너클볼을 주무기로 사용한 투수였다. 정교한 제구력으로도 유명했고, 너클볼의 힘으로 빅리그 통산 200승을 채웠다.
현역 투수인 디키는 만 31세였던 2010년 허프에게 너클볼을 배우면서 웨이크필드의 계보를 잇는 너클볼러가 됐다. 뉴욕 메츠 소속이던 2012년 20승을 따내 1980년의 조 니크로 이후 32년 만에 너클볼로 20승 고지를 밟은 투수로 기록됐다. 그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까지 수상했다. 올해는 애틀랜타에서 뛰고 있다. 보스턴의 스티븐 라이트도 너클볼을 던지는 현역 투수다. 디키와 함께 너클볼의 명맥을 잇고 있다.
R.A 디키. 사진출처=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홈페이지 캡처
유서 깊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정도이니, 한국 야구에서는 너클볼 투수를 보는 게 더 어렵다. LG 소속이었던 김경태와 한화에서 은퇴한 마일영, SK 채병용이 너클볼을 익히고 활용했던 국내 투수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던지는 너클볼은 경기당 10개를 채 넘지 않았다. 어쩌다 하나씩 보여주면서 타자들을 현혹시키는 용도였을 뿐, 너클볼을 주무기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이들 외에는 LG와 롯데, kt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이 너클볼을 던졌던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올해부터 넥센 지휘봉을 잡은 장정석 감독도 선수 시절 너클볼로 잠시 화제를 모았다는 점이다. 장 감독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은퇴 직전 잠시 투수 전향을 준비한 적이 있다. 이때 회심의 무기로 삼으려던 카드가 바로 너클볼이었다. 중학교 때 가끔씩 너클볼을 던졌던 장 감독은 2003년 후반기에 코치와 캐치볼을 하다 “이거 잘 하면 경기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장 감독은 훗날 “꼭 한 번 용기 있게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당시 KIA에서 함께 훈련했던 선수들도 “공이 정말 꿈틀거리며 들어왔다. 이전에 너클볼을 시도했던 다른 국내 투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직구 구속이 시속 130㎞ 중반대에 머물자 결국 코칭스태프는 장 감독의 투수 전향을 만류했다. 장 감독은 결국 프로 경기에서 너클볼을 던져보지 못하고 이듬해 은퇴했다.
# 너클볼은 왜 위력적이고 왜 위험한가
너클볼이 정말로 4할 타자도 칠 수 없는 ‘마구’라면 왜 모든 투수들이 너클볼을 던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왜 너클볼을 던지려는 투수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까. 답은 하나다. 제대로 던지기가 어려워서다.
너클볼은 분명히 매력적인 구종이다. 공에 회전이 없으니 세게 던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강하게 던지다 회전이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밀어서 던져야 한다. 힘을 쓰지 않으니 팔에 큰 무리가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투수로서의 수명도 늘어난다. 너클볼의 대명사인 필 니크로는 무려 48세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이 때문에 나이를 먹고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았을 때 너클볼과 인연을 맺는 선수도 적지 않다. 웨이크필드는 1할대 타율을 기록하던 마이너리그 내야수였지만, 너클볼을 배워 투수로 전향한 뒤 메이저리그 레전드가 됐다. 허프는 팔을 다쳐 구속이 떨어지자 너클볼러로 변신해 통산 200승을 넘겼다. 디키 역시 팔꿈치 부상으로 기량이 쇠퇴했다가 30대 초반에 너클볼을 만나 다시 메이저리그 정상의 투수로 우뚝 선 케이스다.
심지어 은퇴 후 너클볼을 연마해 재기하거나 복귀하는 투수들도 나온다. 너클볼이 일명 ‘부활의 마구’라 불리는 이유다. 전성기 시절 강속구를 자랑했던 전 LA 다저스 투수 브라이언 윌슨은 부상 여파로 구속이 떨어지면서 2014년을 끝으로 방출됐다. 그러나 2년 반 동안 너클볼을 장착한 뒤 올 시즌 초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타진했다.
다만 너클볼을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오직 너클볼에 초점을 맞춘 채 훈련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타자가 치기 어려운 수준의 너클볼을 던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프는 수제자인 디키에게 너클볼을 가르치면서 “내가 너클볼을 던지는 데는 하루가 걸렸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지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제구가 된 너클볼은 아무도 못 치지만, 실수로 공에 회전이 2회 이상 걸리는 순간 볼 끝이 밋밋한 직구로 둔갑한다. 사실상 ‘배팅볼’로 전락하는 셈이다. 니크로는 선수 생활 초창기부터 너클볼을 던졌지만, 그 공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통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그렇다고 10년을 꾸준히 던지면 성공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공의 특성 자체가 ‘불규칙성’에 기인하기 때문에 애초에 ‘제구’한다는 표현 자체가 아이러니다. 너클볼 투수들은 대체적으로 볼넷이 많다. 투수들이 굳이 너클볼 연마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무엇보다 너클볼을 받아줄 수 있는 포수가 있어야 한다. 투수들이 너클볼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이유와 동일하다. 공이 얼마나 휘어 들어올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포수들 역시 자꾸 공을 뒤로 빠뜨리게 된다. 피어밴드는 “지난해에도 너클볼을 던지고 싶었지만, 받아줄 포수가 없었다. 올해는 장성우, 이해창과 스프링캠프부터 훈련을 많이 했다”고 했다. kt 주전 포수 장성우는 포수로서의 기량이 무척 뛰어난 선수다. 롯데 시절 옥스프링의 너클볼을 받아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사생활 문제로 인해 경기에 뛰지 못했다. 올해 처음으로 피어밴드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피어밴드의 너클볼이 천군만마를 만난 것이다. 웨이크필드 역시 보스턴 시절 공격력이 뛰어난 주전 포수 제이슨 배리텍 대신 백업 포수 덕 미라벨리를 전담 파트너로 삼았다. 미라벨리는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을 받아내는 능력 덕분에 스스로의 선수 생활도 연장할 수 있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자이로볼은 존재하는가 “만화에나 나오는 얘기” 너클볼과 스크루볼(슈트)은 보기 드문 구종이지만, 어쨌든 실체는 충분히 확인됐다. 그러나 자이로볼은 다르다. 그야말로 야구 만화에나 나올 법한 전설의 ‘마구’로 남아 있다. 자이로볼은 2000년대 중반 ‘괴물’로 이름을 날리던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 덕분에 유명해졌다. 마쓰자카가 실제로 자이로볼을 던지느냐 못 던지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자이로볼은 공의 회전축과 진행 방향이 일치하는 구종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직구인 포심 패스트볼은 공이 날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회전하고, 커브는 공이 날아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러나 자이로볼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옆으로 회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총알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형태다. 타자가 바라볼 때 나사처럼 옆으로 빙글빙글 돌며 날아온다는 의미에서 ‘회전하는’이라는 의미의 접두어 ‘자이로(gyro)’가 붙었다. 일본의 과학자 히메노 류타로와 야구 코치 데즈카 가즈시는 1995년 발표한 <기적투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자이로볼의 이론적인 원리를 소개했다. 이들은 자이로볼을 구현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로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자이로볼은 회전축이 지표면과 직각을 이루기 때문에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구속이 늘어나며 홈플레이트까지 공이 살아서 들어가는 장점이 있다. 공기의 저항이 적으니 중력에 의한 공의 낙폭도 더 커진다. 말하자면 직구보다 빠른 스피드에 변화구보다 더 큰 폭으로 움직이는 엄청난 공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맹점은 있다. 인간의 몸으로는 던지기가 힘들다. 역회전공인 스크루볼과 던지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손목을 바깥쪽으로 더 심하게 비틀어야 한다. 스크루볼 자체도 이미 육체적으로 부상의 위험이 큰 구종인데, 자이로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오른손 투수의 경우라면, 팔을 거의 180도 가까이 비틀어 던지면서 공을 릴리스하는 순간 손바닥이 3루 쪽으로 향해 있는 각도여야 자이로볼의 회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손목과 팔꿈치는 물론 어깨와 골반까지 모두 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히메노 박사와 데즈카 코치는 “자이로볼은 누구나 던질 수 있는 공”이라고 했다. 실제로 와타나베 슌스케, 호시노 도모키, 가와지리 데쓰로, 우메스 도모히로 같은 투수들이 자이로볼을 구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구 관계자들은 그 구종을 변종 슬라이더로 판단했다. 마쓰자카의 자이로볼도 마찬가지다. 마쓰자카는 서클체인지업을 던질 때 팔을 안쪽으로 크게 비틀었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서클체인지업보다 회전이 빨라지고 무브먼트가 많아졌다. 히메노 박사는 이 공이 바로 자이로볼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마쓰자카는 “자이로볼을 일부러 던지려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마쓰자카가 2007년 보스턴에서 거액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이 논란에는 더 불이 붙었다. 결국 미국 스포츠 전문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마쓰자카의 투구 전반을 상세히 분석하고 “마쓰자카의 자이로볼은 없다”고 선포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다양한 야구 전문가와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뒤 “자이로볼은 체인지업이나 고속 슬라이더, 혹은 스크루볼의 변종”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