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야멸차게, 일본엔 부드럽게, 한국엔 깐깐하게
올해는 지난 14일 새로운 보고서가 발간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첫 환율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6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삼은 이번 보고서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가 하나도 없다. 한국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이 ‘주시’하는 나라에 포함돼 있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상태다.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대미 수출국들은 미국 재무부가 연 2회 발간하는 환율보고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A4 용지 29장으로 된 이 보고서는 표지, 목차, 본문 27쪽으로 구성돼 있다. 작성자는 미국 재무부(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국제업무실(Office of International Affairs)로, 미국 의회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Report to Congress)으로 작성됐다. 한글 번역본은 따로 있지 않고, 미국 재무부 사이트에서 PDF 원본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본문은 △상세요약 △섹션 1 △섹션 2 △핵심용어 설명 등 네 영역으로 구분된다. 섹션 1에서는 미국 경제 현황과 주요 교역국들의 환율정책을 설명한다. 섹션 2에서는 환율조작국 선정 기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보고서는 미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 12개국을 대상으로 한다. 중국, 일본, 독일, 멕시코, 이탈리아, 한국, 인도, 프랑스, 스위스, 대만, 캐나다, 영국이다. 이들 12개국의 교역액 합계는 미국의 전체 교역에서 70%가량을 차지하고, 12개국 이외의 국가들 중 미국 교역에서 1.5%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는 없었다.
환율조작국 선정 기준은 ①미국과의 상품교역(수출+수입) 200억 달러 이상 ②외환보유고가 GDP의 3% 이상 ③환율 개입을 위해 12개월 동안 달러 보유고를 GDP의 2% 이상 매입한 경우로, 세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
# 중국엔 거친 표현, 일본엔 순한 표현 대비
이번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12개 교역 파트너 중 6개 국가가 관심국가로 선정됐다. 환율조작국 선정 기준 중 최소 하나 이상을 충족한 중국, 일본, 독일, 한국, 스위스, 대만이다.
상세요약에서 미국 재무부는 6개 국가에 요구하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각 국가에 사용된 워딩(wording)에 따라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 미국이 해당 국가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약 1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persistent), 대규모로(large-scale), 일방적으로(one-way) 위안화(RMB) 강세를 막기 위해 환율에 개입해왔다. 미국 재무부는 중국의 교역과 통화관리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very closely)’ ‘세심하게 살필 것(Treasury will be scrutinizing)’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화폐 약세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G-20 회의의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는지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고(Treasury places significant importance), 환율거래 및 외환보유고 운영의 투명성에 높은 중요성을 부여한다(Treasury places high importance)고 언급하고 있다. ‘세심하게 살피다(scrutinize)’ ‘커다란 중요성’ ‘높은 중요성’ 등 고강도의 표현을 동원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트레저리(Treasury)’는 미국 재무부(U.S. Department of the Treasury)를 말한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리 결과를 발표할 때 ‘그러나’라는 단어 한 마디로 국민들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한 것처럼, 보고서에서 주어로 트레저리가 나올 때마다 해당 국가의 가슴이 들렸다 놓였다 할 듯하다.
보고서는 일본에 대해선 다소 부드러운 입장을 취한다. 일본은 자국 내 수요부족을 겪고 있고, 수출주도 성장 대신 내수 부양에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또 일본은 5년 넘게 외환시장에 개입한 바 없다고 설명한다. ‘트레저리’는 단 한 번 나오는데,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적절한 사전 합의 후에 할 것을 기대한다(Treasury’s expectation is~)’라고 쓰여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발간된 환율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대미 무역 흑자국들을 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사진=AP/연합
# 한국·대만엔 외환시장 개입 전례를 강조
한국에 대해선 ‘촉구한다(urg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비대칭적 외환시장 개입의 전례가 있다’고 설명하며, ‘미국 재무부는 한국이 환율 변동성을 높일 것을 촉구(urges)하며, 한국의 통화 개입 여부를 자세히 모니터링(closely monitoring) 할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대만에도 한국과 동일하게 ‘촉구한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비대칭적 외환시장 개입의 전례가 있다’고 한 부분은 한국의 것과 주어만 다를 뿐 동일한 문장이다. 미국 재무부 보고서 작성자도 ‘복붙(복사하기·붙이기)’을 사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만에 촉구하는 내용은 한국보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 재무부는 ‘대만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오로지 시장질서 교란을 막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하겠다는 정책적 태도 변화를 보여달라(demonstrate)’고 촉구하고 있다. 또 ‘외환시장 개입 시 투명성을 높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독일에는 ‘세계 최대 달러 보유국’이라는 설명에 이어 특별히 요구하는 내용은 없었다. 독일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로, 유로화 거래 시장은 독일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European Central Bank)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유럽중앙은행은 2011년 이후 외환시장에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스위스는 달러 보유액이 높은 것이 주요 관찰대상국이 된 이유로 설명된다. 타국과 달리 스위스의 경우는 검은 돈의 피난처(safe haven)로, 유입되는 달러가 넘쳐난다. 이 때문에 스위스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정부가 달러를 매입해 왔다. 그 결과 오히려 스위스프랑이 강세를 나타낸다고 IMF가 밝혔음이 언급되고 있다. 주요 교역 파트너들이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국 화폐 약세를 추구한 것과 달리 스위스 화폐는 강세를 띤 것이다.
미국 재무부 보고서에 주요 관찰국으로 언급된 나라는 6개국이지만, 특히 중국, 한국, 대만의 3국이 주요 타깃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경제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한국의 외환시장 관리는 더욱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종국 비즈한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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