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년 12월18일 대통령선거를 마치고 이희호 여사와 함께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 | ||
김 대통령과 설송 스님에 얽힌 이야기는 마치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김 대통령이 설송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10월20일이다. 당시 국민회의 총재였던 김 대통령은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남궁진 의원 등 측근들을 대거 대동하고 현불사를 찾았다. 이날은 현불사에 추계대제가 있는 날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화환을 보냈고, 자민련에서는 김용환 주양자 부총재가 현불사를 찾았다. 김종필 총재는 ‘산천초목 실유불성’(山川草木 悉有佛性)이라고 쓴 액자를 보냈다.
설송 스님을 만나기 하루 전인 1996년 10월19일 현불사를 찾은 김 대통령은 저녁 예불에 참석한 후 신도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태백에 있는 한 호텔에 묵었다. 김 대통령은 다음날 다시 현불사를 찾아 설송 스님과 단둘이 만나게 된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이때 설송 스님은 김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신이 당선된다. 내가 목숨을 걸고 보장한다.” 당시는 DJP 연대라는 말도 없었고, 오히려 물밑에서 ‘DJ 필패론’이 제기될 때였기에 설송 스님의 확고한 예언은 김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시 김 대통령은 누구의 소개로, 무얼 믿고, 설송 스님을 찾아 경북 오지의 깊은 산속까지 들어왔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명승희씨와 고준환 교수이다. 명씨는 지난 대선 때 민주광명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가 막판에 등록을 포기했던 사람이다. 한때 무속인 심진송씨가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던 그녀는 당시 현불사 신도였다.
명씨는 무궁화중앙회 총재를 맡아 어버이날이면 동교동에 찾아가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게 꽃을 달아주는 등 진작부터 ‘동교동’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DJ 대통령 만들기’에 열심이던 그녀는 설송 스님에게 DJ가 집권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설송 스님은 ‘DJ가 현불사에 와서 부처께 예를 갖춘다면 당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명씨는 이런 이야기를 현불사의 법사로 있던 고준환 교수에게 전한다. DJ를 만나게 해줄 테니 잘 이야기를 해 DJ가 현불사에 오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고 교수는 동아투위 사건으로 해직된 뒤 경기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1996년 봄, 명씨가 잡아준 약속에 따라 고 교수는 서울 여의도에 있던 국민회의 당사 총재실에서 김 대통령과 독대했다. 20여 분간의 대화에서 고 교수는 DJ에게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과 설송 스님이 어떤 사람인가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며 현불사를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 김 대통령이 설송 스님을 찾아오기까지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어쨌든,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부터 DJ는 설송 스님을 ‘스승의 예’로 모셨다고 한다. 수시로 청와대에 초청해 식사를 함께한 것은 물론이고 전화 통화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보기관에서도 설송 스님에게 관심을 가졌고 웬만한 정치인들은 한 번쯤은 현불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설송 스님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설송 스님은 DJ가 대통령이 된 뒤 두 가지를 권유했다고 한다. 하나는 청와대의 이름을 ‘백양관’(白兩館)이나 ‘양백관’(兩白館)으로 바꾸어야 대통령 말년이 편안하다는 것과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들을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 설송스님이 있는 현불사 경내에는 김대중 대통령 의 방문을 기념해 지난 99년 비석이 세워졌다. | ||
DJ가 대통령이 된 뒤 주로 현불사를 찾은 사람은 한화갑 의원이었다. 한 의원은 틈날 때마다 설송 스님을 찾았다. 설송 스님 또한 한 의원을 ‘화갑이’라고 부르며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편하게 지냈다. 현불사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망월동을 방문해 영•호남이 화합하는 모습을 연출해 냈던 것도 설송 스님과 김 대통령, 한 의원의 남다른 관계가 없었으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한때 설송 스님은 한 의원의 고향인 전남 신안을 찾은 적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설송 스님이 차기 대통령은 한화갑이라고 예언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 의원 진영에서도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에 앞서 이런 소문에 기대를 거는 흐름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의원 진영에서는 설송 스님을 ‘큰스님’이라 부르며 극진히 모셨다. 설송 스님은 김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햇볕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한 의원이 찾아와 의견을 구하자 이렇게 답해 주었다. “꿈에 보니 DJ가 벽을 무너뜨리더라. 남북 왕래가 될 것 같다. 왔다 갔다 하는 것만 해도 큰 역할을 한 것이지만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이 잡아야 한다. 그러나 시덥지 않은 사람에게 정권을 넘겨주면 더 혼란이 온다.”
1999년 5월21일 현불사는 경내에 김 대통령의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 과거 김 대통령이 현불사를 방문했을 때 영령보탑에서 상서로운 빛이 나왔고, 이것은 김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김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씨도 설송 스님을 여러 차례 만났다. 1996년 김 대통령이 처음 현불사를 찾았을 때도 동행했던 그는 2000년 가을 설송 스님이 몸이 불편해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찾았을 때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설송 스님이 입원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치권 인사들 여러 명이 병문안을 다녀가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현불사 신도였던 삼촌 노병상씨의 권유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 경남고 동창생의 권유로 1987년과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설송 스님을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자는 어떠했을까. 노 당선자는 한 번도 현불사를 찾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11월, 노 당선자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한 번 현불사를 찾았다고 한다.
설송 스님은 2000년 5월, 취재차 찾아온 기자에게 ‘차기 지도자’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었다. “왕목(王木)이 죽으면 그곳에서 싹이 나오지 않고 전혀 다른 데서 왕목이 나온다.” 이산 언론인